늙은 은퇴자의 점심 시간
쭈글쭈글한 얼굴, 하얗게 센 머리칼, 손등의 살가죽이 아주 엷어진 늙은 은퇴자---,
지금은 혼자인 그도 때가 되면 점심 식사를 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으로 점심을 때워야 하나.
늙은 은퇴자는 냉장고를 열고 기웃거리다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아파트 입구의 편의점을 찾는다.
주머니에 연금이 들어오는 낡은 카드 지갑이 들어 있기는 하다.
편의점에서는 햄버거도 팔고, 도시락도 팔고, 샌드위치도 팔고, 컵라면도 팔고, 된장국밥도 팔고, 미역국밥도 판다
도시락은 종류가 꽤 많다
모두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려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다.
그중에는 물을 붓고, 뜨겁게 데워 먹는 음식도 있다 컵라면이나 된장국밥, 미역국밥 등 말이다
늙은 은퇴자는 이 도시락, 저 도시락을 두 손으로 들고 가격을 비교해 본다.
도시락 중에는 예산 사람 백종원의 사진이 들어 있는 것도 있다.
어떤 도시락에는 돼지고기 반찬이 들어 있고, 어떤 도시락에는 소고기 반찬이 들어 있다.
볶은 김치와 소시지는 모든 도시락이 다 들어 있다.
서울을 떠나 살고 있는 그는 문득 생각한다.
서울은 직장에 다니는 젊은이들에게 물려 주어야지.
늙은 은퇴자들은 기꺼이 서울을 비워줘야지 놀고 먹는 사람까지 서울에서 복닥거려서는 안 되지.
그는 또 생각한다.
늙은 은퇴자들이 복닥복닥 살고 있어 서울은 집값이 비싸지.
그들이 서울을 비워주지 않고
이 나라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기이지.
그래도 늙은 은퇴자가 살고 있는 이 중소 도시에서의 일상은 좀 쓸쓸하다.
사람들 만나기가 너무 힘드니까.
함께 점심을 나눠 먹을 사람들조차 많지 않으니까.
전자레인지를 돌려 뜨겁게 데운 도시락을 까 먹으며
늙은 은퇴자는 이런저런 잡지 나부랭이 따위 뒤적거려 본다.
무슨 가슴 뜨거운 글이라도 만나고 싶은 것인가.
아무리 말보다는 글이 먼저인 시대라지만
알 수 없는 잡지 속의 글들을 향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는 일뿐.
지금은 이런 글을 시라고 하는구나.
한때는 시인으로 제법 명성을 얻기도 했던 얼굴이 쪼글쪼글한 이 늙은 은퇴자!
눈 감고 저 혼자 중얼거린다.
왜 사람들은 서울을 떠나지 못할까.
혈혈단신 당신!
오늘은 좀 외로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