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솔 남서호 박사의 상담심리 코너 // [20세기의 비극(왜 스탈린과 히틀러는....)]
레닌이 죽으면서 스탈린을 제거하도록 그 유서에 남겼다. 그의 재능은 인정되지만 포악함이나 용서할 줄 모르는 성격을 걱정해서였다. 불행히 때가 늦었다. 스탈린은 이미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누구도 그를 축출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를 따르지 않는 사람을 무차별 투옥, 처형함으로써 소련의 비극, 아니 20세기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스탈린의 정치이념이나 사상 이전에 그의 난폭한 성격 탓이었다. 그의 고향 조지아(그루지아)에 가보니 그는 어릴 적 구두 수선공인 아버지에게서 심한 매질을 받으며 자랐다. 학자들은 그의 난폭한 성격은 이유도 없이 걸핏하면 매를 맞고 자라야 했던 환경 탓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식하고 하찮은 구두 수선공 루가쉬빌리는 가혹한 구타에 의해 그의 아들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길러낸 것이다.
그는 교회를 없에버리고 피의숙청을 시도했다
예술가가. 꿈이었지만 아들을 아버지의 난폭한 매질로 인해 끝내 흉측한 독재자로 변신케 한 히틀러의 생애도 너무나 꼭 같다.
조물주는 훈육의 언덕, 엉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이걸 잘 활용해야 한다. 꾸중하고 벌하고 하는 건 일차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왜냐하면 부모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외출금지, 용돈 깎는 일 오락금지, 싫은 일 시키는 것, 체벌, 혹은 때리는 일까지 이런 것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학교 선생에게 그런 권리를 일부 위임하긴 했지만 이것 때문에 마찰이 일어나는 경우가 특히 요즈음은 적지 않다.
이런 것들이 남용, 오용되는 경우라면 '작은 스탈린'의 위험성도 물론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식 교육에 관한 한 체벌권은 부모가 갖는 결정적인 수단이다. 손 한번 안대고 잘 자란다면 이것만으로도 그 가정은 큰 축복이다. 실제로 그런 착한 애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선 부모의 이 권리 행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의 개성이나 성격, 그리고 위반의 정도나 성질에 따라 적절한 방법을 써야 한다. 반성을 재촉하는 뜻이요, 재발을 방지하는 의미에서다.
결론은 선택적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단 거기엔 조건이 있다.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스탈린 아버지처럼 돈벌이가 시원찮았다고 돌아와 아들에게 분풀이를 한다면 이건 교육이 아니다.
아버지가 회사 일이 잘 안될 때, 엄마가 남편에 불만이 있을 때 죄 없는 아이들을 들볶는다. 하찮은 걸 갖고 야단을 치거나 매질을 한다. 그러고 한참 있노라면 영 기분이 찜찜하다. 후회가 되고 아이 보기 미안하다. 아이가 야단을 맞아야 할 일인지, 아니면 문제가 있는 것인지를 잘 감별해야 한다.
부모에게도 인간적인 고민이 있고 짜증날 일도 많다. 하지만 억울하게 당해야 하는 아이들 입장에선 그런 부모의 심경을 헤아릴 여유는 없다. 또 그런 나이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꾸중의 효과는커녕 반감만 생긴다.
아이들은 영리해서 제가 한 짓이 과연 이 정도의 야단을 맞아야 할 일인가를 나름대로 평가할 줄 안다. 당장에는 안 되지만 제 방에 돌아가 앉았노라면 억울한 기분은 차츰 가시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 억울한 기분이 영 가시지 않고 이게 모두 부모 자신의 문제 탓으로 돌린다면 아이의 반감만 키워 놓은 셈이다.
즉, 체벌은 잘 사용하면 ~사 례에 큰 유익을 가져다주지만 그렇지 않으면 큰 심리적 상처를 남겨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