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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힘이되는좋은글]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도인을 만났다

작성자약수터|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 두 도인을 만났다

 

이천칠년 십이월 팔일 토요일 점심시간 나는 광화문 뒷골목의 한 식당에서 소설가 정을병씨와 만나고 있었다. 그가 죽기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이 인생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고 있어요. 젊은 시절하고는 달리 나이 칠십이 넘으니까 힘드네요. 한참을 쉬다가 쓰곤 해요.”

“어떤 내용을 소설에 담으려고 하십니까?”

내가 물었다.

“내가 평생 추구해 왔던 어떤 깨달음이나 정신세계를 담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쓸 가치가 없어요. 재미로 한다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왜 책을 읽겠어요? 아무리 교회를 다니고 성당을 다니고 중이 되어 평생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어떤 근본적인 깨달음의 맛을 모르면 전부 헛수고이고 엉터리죠. 저도 문학을 하면서 칠십이 넘은 지금까지 어떤 근원적인 것에 도달하려고 애써왔어요. 그런데 평생 추구한 깨달음의 마지막이라는 게 아직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아요. 농사로 치면 밭을 갈고 씨를 뿌린 셈인데 마지막으로 삽질을 해서 물을 한번 들이면 될 것 같거든요. 그런데 이 물을 들이는 방법은 그 어떤 선생도 책도 가르쳐 주는 게 없단 말이예요.”

나는 그가 단순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다. 이십대 초 그는 신학대학을 다니다 그만두었다. 정식 종교에서 탈퇴하고 자유롭게 신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세상 속에서 도(道)를 찾는 독특한 수행자 같았다. 그는 문학을 우상으로 삼고 그 제사장이 되려고 했다고 했다. 평생을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면서 글과 독서를 통해 진리를 탐구했다. 스스로 지옥으로 내려가 고통의 체험을 했다. 오일육 혁명후 강제노동을 시키는 현장에 참여해서 그 고통을 글로 그려냈다. 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고 감옥생활도 했다. 아들과 아내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독거노인으로 노년의 절대적 외로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명상하면서 정신세계를 탐구하고 있었다. 문학은 진리를 담는 그릇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오랜 시간을 명상에 몰입했다고 내게 말했다.

“어떤 신비체험을 겪으셨어요?”

내가 그에게 물어보았다. 성경 속 예언자들을 보면 하늘 문이 열리고 어떤 존재가 보이는 경험들을 한다. 불경을 보면 열반의 순간 느끼는 환희가 묘사되어 있었다. 평생 정신세계를 탐구한 그는 어땠을까 궁금해서 물은 것이다.

“빛과 소리를 느낀 적이 있어요. 눈을 감고 있는데 녹색하고 황색 빛이 보입디다. 그리고 징 소리 같은 걸 들었어요. 정수리 쪽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이 스물거렸어요. 뭔가 들어오기 직전 같은 느낌이 들었죠. 뭔가 체험을 하면 평생 만들어 온 그릇인 소설에 담으려고 했어요. 깨달아도 주위에 전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죠.”

그는 정신세계라는 숲속에 들어가 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나 잎을 줏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을 넘어서는 그것들은 말할 수 없고 쓰여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어떤 걸 직접 느끼고 싶다고 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그 근원에 도달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무렵 살아있는 도인이라고 불리던 김흥호 박사의 강연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역시 평생 유불선 기독교를 넘나들면서 수행을 한 존재였다. 마지막 깨달음에 대한 그의 인식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때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아는 게 아니야. 되는 거야. 계란이 병아리가 되는 체험을 하는 거지. 병아리가 계란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어미 닭을 볼 수가 있어. 그리고 어미 닭의 품에 직접 안겨봐야 하는 거야. 깨달음은 경험인 거야. 그런 근본 경험이란 정말 중요한 거지. 철학은 생각하는 세계고 종교는 되어보는 세계지. 근본 경험의 세계야”

혼자 사는 노인이었던 정을병 선생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스스로 조용히 삶을 마감했다. 도인이던 김흥호 박사님도 저세상으로 옮겨갔다. 두 분은 이 세상의 껍질을 깨고 나가 그 분을 보고 그 품에 안겨 있을 것 같다. 나도 칠십 고개를 훌쩍 넘겼다. 하늘나라에 있는 두 분에게 마지막 순간 무엇을 세상에 전해주고 싶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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