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란의 시대, 당신은 ‘유정란’의 생명력을 가졌는가?
인공지능(AI)이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창의성마저 넘보는 시대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전문가 수준의 보고서가 뚝딱 나온다. 바야흐로 지식과 정보의 대홍수이자, 역설적으로 '영혼 없는 콘텐츠'가 무한 복제되는 때다. 이 거대한 기술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득 박승윈(세황) 씨의 페이스북 글귀 하나가 마음을 붙잡았다.
"무정란보다 유정란이 비싼 건 병아리를 낳을 수 있는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걀도 생명력이 있어야 가치가 높듯, 사람 역시 생명력을 품어야 가치 있다는 투박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격언이다. 이 비유는 오늘날 초지능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생명을 태동시킬 '유정란'인가, 아니면 그저 겉모습만 그럴싸한 '무정란'인가.
껍데기만 남은 생산성 중심 사회
지금 우리 사회는 극단적인 효율성과 생산성만을 쫓고 있다. 인공지능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루는지, 남들보다 얼마나 빠르게 결과물을 도출해내는지가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척도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화려한 수식어와 완벽한 논리로 무장한 AI의 결과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스스로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는 무정란에 불과하다.
진짜 문제는 인간마저 스스로를 무정란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오직 자신의 이익과 효율성만을 계산하는 인간은 기계와 다를 바 없다. 기술 발전이 인간 소외와 디지털 격차를 벌려놓는 지금, 우리가 회복해야 할 가치는 기계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다. 인간이 기계와 차별화되는 유일한 분기점은 바로 타인과 세상을 향해 맥박 치는 생명력에 있다.
감사와 공감, 미래를 품는 인간 고유의 힘
AI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의 '유정란적 생명력'은 거창한 지식이나 권력이 아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감동하며,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다. 기계는 감사를 출력할 수는 있어도 감사를 느낄 수는 없다. 약자를 돕는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는 있어도, 소외된 이웃의 손을 잡으며 눈물 흘리는 공감의 온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진정한 지적 가치는 나눔으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디지털 기술과 AI에서 소외된 시니어들이나 이주 배경을 가진 이웃들에게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치고 AI 리터러시를 나누는 활동이 대표적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를 넘어, 그들의 삶에 사회적 주체로 살아갈 생명력을 불어넣는 숭고한 과정이다. 이렇듯 작은 감동과 베풂이 모여 또 다른 사람의 가치를 깨우는 연쇄반응, 이것이야말로 유정란이 병아리를 깨우는 일과 같은 우주적 신비이자 인간만의 독점적 권리다.
디지털 약자를 품는 따뜻한 기술 생태계로
독일의 철학자 한스 요나스는 인류가 기술의 비대해진 힘에 걸맞은 '책임의 윤리'를 가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제 우리는 'AI가 인간을 대체할 것인가'라는 소모적 공포를 넘어, 'AI를 통해 어떻게 인간성을 확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진정 가치 있는 사람은 기술의 최정상에서 홀로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기술과 온기를 나누어, 우리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줄 아는 사람이다. 기술이 차가워질수록 인간의 연대는 더 뜨거워져야 한다. 우리 안의 감사와 공감 세포를 깨워 이 사회를 따뜻한 유정란의 품으로 안아줄 때다. 초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