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욱-旅窓筆滴-미얀마편
미얀마 여행기
15. 파간(Pagan/ 바간:Bagan).
1992,1.쓴 것(脫稿)을 2009.02.재편집.
空慧
파고다 1,200여개가 남아있는 옛 왕도


만달레이 서남쪽 90마일(145 km)지점에 있는 옛 파간왕도(王都).
찬란했던 불교문화의 성도(聖都)가 몽고의 말발굽에 짓밟혀 폐망
한 이래 700년간 역사 속에 은둔(隱遁: secluded)했던 작은 마을.
지금은 4,150㎢에 약 2,000개의 크고 작은 파고다만 남은 한적한
마을이다.
파간의 시장마을이라고 할 낭우(Nyaung U)를 비롯하여 떼떼(Tuti)
민카바우(Myinkaba/Anurada)등 주변에 18개 마을 있으며, 옛날에는
이런 주변 마을에 있었던 파고다를 합하여 5,000가 있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파간 반경 42㎢ 내에 약 400만개 파고다가 있었다고 한다.
파간의 약사(略史)를 갈음(바꾸어 대신)하면;
1,800년 전인 2세기경 다무다리왕(Thamudarit: AD 107-152)이
주변 19개 부족마을을 통합하여 바짝 마른땅(the Parched Land)
이라는 뜻의 따타데사(Tassadessa)라는 촌락국가(村落國家)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그 34대 손인 핀비야왕(Pyinbya: 846-878)이
849년 12성문과 성곽을 축성하여 처음으로 도시를 형성하였다.
그 42대 손인 아노라타왕(Anawrahta: 1044-1077)이 타톤(
Thaton: Doo Tha Htoo)에 도읍한 몬족(Mon)등 여러 군소부족
들을 통합하여 처음으로 왕국을 건설하였음으로 그를 버마(미얀마)
제1왕조인 파간왕조(Pagan/ Bagan dynasty)의 태조(太祖)로 정사
(正史)에 수록하고 있다.
아노라타왕은 바마르족(Bamar)이며, 바마르족은 티벳에서 온 퓨
(Pyu)족을 받아들여 이라와디강변을 따라 정착하여 세력을 굳힌
부족이다.
당시 파간에는 토속신앙(土俗信仰: Domestic Religion)과 더불어
힌두교(印度敎: Hinduism)가 성행하고 불교(佛敎:Buddhism)가
유입된 것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를 부흥
시킨 것은 아노라타왕(王)이 스리랑카(Sri Lanka /Ceylon: 斯里
兰卡)와 친선을 맺은 후부터였다.
그는 소승불교(小乘佛敎: Hinayana Buddhism) 즉 남방국가에서의
상좌불교(上座部佛敎: Theravada Buddhism)의 경전(經典)을 입수
하기 위하여, 1057년 타톤에 도읍한 몬족(Mon)을 공략하여, 경전
(經典) 부여(賦與: lend)를 거절한 마누하왕(王: Manuha)을 포로로
하였다. 그 후 1071년 스리랑카(당시 실론: Ceylon)에서 32필(匹)의
코끼리에 파리어(Pali)로 된 경전 삼장(三藏: tipitaka) 32편(篇)을
실어왔다.(※Pali는 인도어의 1종이며, 전장(前章: 13)에 설명하였다)
그 후 그는 쉐산도 파고다(Shwesandaw pagoda)를 제일 먼저
축조하고 이어 쉐지곤 파고다(Shwezigon Zedi/ pagoda)를 축조
하여 파간왕국을 소승불교국가로 만들었으며, 국세(國勢)가 융흥
(隆興)하면 할수록 그 만큼 파고다 수도 늘어났다.
↑ Pali(파리어:語)
↑ 쉐산도 파고다, 파간
↑ 쉐지곤 파고다, 파간
12~13세기경에는 인도를 비롯 시암(siam: Thailand) 크메르 왕국
(Khmer kingdoms: 현 캄보디아) 등지에서 승려와 학생이 불교를
수학하러 유학을 왔었다.
일설에는 미얀마 불교의 황금기가 캰시타왕(Kyanzitthar: 1084-
1113)때부터이고. 미얀마 문자가 만들어진 것도 이 시기라고 주장
한다. 미얀마 문자가 몬족 문자를 기반하여 만들어진 것은 사실
이고 또한 불교문화의 발달이 스리랑카(당시 실론: Ceylon)에서
부터 유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미얀마 불교의 융흥기(隆興期)와
요람기(搖籃期)의 판별은 사가(史家)의 몫이니 굳이 여기서 천착(
穿鑿)할 필요가 있으랴.....
230년간 융흥했던 파간왕국은 1283년 파간왕조 11대 나라디하파티
왕(Narathihapate: 1255-1287)때 몽고(蒙古: Mongol)의 침략을
받아 쿠빌라이 칸(忽必烈: Kublai Khan: 1215~1294)에 의해
패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파간의 중국어 표기는 蒲甘(포감)이다.
외침(外侵)에 대한 2,000필(匹)의 코끼리와 군졸 4만의 힘으로는
빗발치는 몽고군의 화살을 피하기에 너무나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한 치 한 치 땅을 빼앗기면서도 그들은 몽고군 말발굽에 굴하지
않기 위하여 부녀자까지 자진하여 파고다를 부수어 방벽을 쌓기도
했다. 전란으로 부서진 파간의 축조물이 1만개에 달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몽고군의 침략 후에도 파간왕국은 불교 선진국
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샤뮤니왕(Sawmunnit: 1325-
1369)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젔다.
- ♡ -
이 역사 깊은 버마 제1왕조 파간왕국의 도읍지(都邑地)를 보기
위하여 만달레이에서 육로로 메치레(Mektila)를 경유하다가,
재미있는 광경을 보고, 잠시 발을 멈췄다. 시굴마을 길가시장은
떠들썩하지 않고 조용하였고, 지나가는 드럼통 물수레는 살수차
(撒水車)가 아니고 물장수였다. 길가에서 마을 주민들 여럿이
냄비를 흔들며 모금행사를 하기도 하고, 사탕수수즙(汁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 파간 가늘길 메치레(Mektila)의 물장수
↑ 나무 자전거 타는 아이
(74~5년 전 우리나라 경기도 지방에도 저것과 유사한
외바귀 나무 수례(one wheel cart)가 있었는데, 작은
나무바퀴가 달린 기둥에 발판을 딛고 아이가 서있으면
뒤에서 손잡이를 다른 사람이 잡고 밀었는데, 추석
명절 날 저녁 놀이 였다. 그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장장 6시간, 파간 지방에 당도하니 끝이 안 보이는 황야(荒野)에
이름 모를 가시나무와 선인장 사이로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무수한 파고다들이 마치 유령(幽靈)의 집처럼 스산하게 산재해
있었다.
정확한 사료(史料)가 없지만 현재 이 파간지방에는 사방 약 십오리
(4.2㎢)에 약 2,000기(基)의 파고다가 남아 있다고 한다.
우선 이라와디강(Irrawaddy/ Ayeryawady R) 기슭에 있는 최신식
방갈로식 호텔인 딴데 호텔(Thande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식당은 작지만 음식은 순 포르투갈(Portuguese)식 양식이었다.
아마도 벵갈만(Bengal B)에 연해있는 아라칸족의 다냐와디왕국
(Dhanyawadi kingdom)을 후원하여 버마에 세력을 굳히려던
포르투갈이 영국이 버마를 삼키기 전까지 이곳까지 손을 뻗었던
것이라고 집작해 본다. 내일부터 이곳 탐방 길에 오를 예정이다.
↑ 파간 이라와디 강 풍경
↑ 파간의 딴데 호텔(Thande Hotel)
(앞은 이라와디강, 멀리 다비뉴파고다가 보인다.)
Ps:
-쿠빌라이 칸(Kublai Khan): 몽고 제국의 제5대 칸(汗: Khan)이며,
원(元)나라의 세조(世祖)이며 34년간 재위했다.
-일부 사진은 17년 전 analogue 동영상화면을 복사한 것이라 화질이
좋지 않고, 일부 image source는 web site임을 양해바랍니다.
♪: L'Amore E' Una Colomba(사랑은 비들기 처럼)-Marisa San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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