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장 에브라임 수풀 전투 및 압살롬의 죽음
구속사적 개관
본장은 제 15-18장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압살롬 반란 사건 기사의 절정 부분으로서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마침내 에브라임 수풀 가운데서 접전(接戰)한 사실과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다윗 군대의 압살롬 반란군 대항 준비(1-5절), 에브라임 수풀 전투에서의 다윗 군대의 승리(6-8절), 반란 주모자 압살롬의 비참한 최후(9-18절), 압살롬의 죽음에 관한 두 전령의 보고 및 다윗의 슬픔(19-33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신정 왕국(神政王國)의 질서를 파괴하고 사울 이후 다시금 인본주의적 왕정을 추구했던 압살롬이 당시의 정치 ․ 군사적 상황으로는 절대 유리하였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은, 결국 역사의 주권자는 오직 하나님 뿐이며 그런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정이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 또한 다윗도 신정 왕국의 대표자로서의 자신의 신분을 망각하고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압살롬의 반란 사건과 같은 끔찍한 시련을 려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금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 때에 환난 가운데서도 악인들의 손에서 끝까지 보호함을 받을 수 있었던 사실에서도 큰 구속사적 교훈을 얻는다. 즉 이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엄정(嚴正)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죄인이 회개할 때에는 곧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윗과의 언약(7:14,15)을 어김없이 이행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함도 발견하게 된다.
한편 본장을 보면 다윗은 압살롬 반란군 진압 성공에 대한 관심보다 오직 반역자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의 생사(生死) 여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5절). 더욱이 압살롬 반란군 진압 사실을 두 전령을 통해 보고를 받았을 때에도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대적을 파하셨다는(28절) 사실에 대해 기뻐하기보다는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며 압살롬의 이름만을 연거푸 외쳐댔다. 이처럼 왕권을 찬탈하고 아비를 죽이려 했던 그 죄만을 생각하면 죽어 마땅한 그였지만 다윗은 순수한 아비의 사랑 때문에 그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이 이렇게 슬퍼한 이유는 자신의 범한 범죄의 악영향으로 압살롬도 범죄한 것으로서 결국 압살롬의 범죄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죄책감과 일찍이 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 아비로서의 실책에 대한 후회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 우리는 죽어 마땅한 죄인인 압살롬에 대해서 이같이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 보인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피조물이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근본적으로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들인 우리들을 위하여 독생자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대속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신 하나님의 구속사적 사랑은 다윗이 아무리 자식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보였다 할지라도 도무지 비교할 수 없으리라(롬 5:8; 8:32).
외울 말씀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다윗의 압살롬 대항 준비
1 이에 다윗이 그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천부장과 백부장을 그 위에 세우고
2 그 백성을 내어 보낼새 삼분지 일은 요압의 수하에, 삼분지 일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동생 아비새의 수하에 붙이고 삼분지 일은 가드 사람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백성에게 이르되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3 백성들이 가로되 왕은 나가지 마소서 우리가 도망할지라도 저희는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우리가 절반이나 죽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라 왕은 우리 만 명보다 중하시오니 왕은 성에 계시다가 우리를 도우심이 좋으니이다
4 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선히 여기는 대로 내가 행하리라 하고 문 곁에 서매 모든 백성이 백 명씩 천 명씩 대를 지어 나가는지라
5 왕이 요압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하니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모든 군장에게 명령할 때에 백성들이 다 들으니라
에브라임 수출 전투
6 ○ 이에 백성이 이스라엘을 치러 들로 나가서 에브라임 수풀에서 싸우더니
7 거기서 이스라엘 무리가 다윗의 심복들에게 패하매 그 날 그 곳에서 살륙이 커서 이만에 이르렀고
8 그 땅에서 사면으로 퍼져 싸웠으므로 그 날에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에 죽은 자보다 많았더라
압살롬의 최후
9 ○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털이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저가 공중에 달리고 그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11 요압이 그 고한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뇨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12 그 사람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가 들었거니와 왕이 당신과 아비새와 잇대에게 명하여 이르시기를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13 아무 일도 왕 앞에는 숨길 수 없나니 내가 만일 거역하여 그 생명을 해하였다면 당신도 나를 대적하였으리이다
14 요압이 가로되 나는 너와 같이 지체할 수 없다 하고 손에 작은 창 셋을 가지고 가서 상수리나무 가운데서 아직 살아 있는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니
15 요압의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 압살롬을 에워싸고 쳐죽이니라
압살롬의 기념비
16 ○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 하니 저희가 이스라엘을 따르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17 무리가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던지고 그 위에 심히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두 전령의 보고 및 다윗의 슬픔
19 ○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가로되 청컨대 나로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20 요압이 저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날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21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고하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컨대 아무쪼록 나로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음질하게 하소서 요압이 가로되 내 아들아 왜 달음질하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23 저가 아무쪼록 달음질하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가로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서니라
24 ○ 때에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파수꾼이 성문루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보니 어떤 사람이 홀로 달음질하는지라
25 파수꾼이 외쳐 왕께 고하매 왕이 가로되 저가 만일 혼자면 그 입에 소식이 있으리라 할 때에 저가 차차 가까이 오니라
26 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음질하는지라 문지기에게 외쳐 이르되 보라 한 사람이 또 혼자 달음질한다 하니 왕이 가로되 저도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7 파수꾼이 가로되 나 보기에는 앞선 사람의 달음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왕이 가로되 저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오느니라
28 ○ 아히마아스가 외쳐 왕께 말씀하되 평강하옵소서 하고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여 가로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양하리로소이다 그 손을 들어 내 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29 왕이 가로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아히마아스가 대답하되 요압이 왕의 종 나를 보낼 때에 크게 소동하는 것을 보았사오나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30 왕이 가로되 물러나 곁에 서 있으라 하매 물러나서 섰더라
31 ○ 구스 사람이 이르러 고하되 내 주 왕께 보할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2 왕이 구스 사람에게 묻되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하되 내 주 왕의 원수와 일어나서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다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본문 & 자료노트
원어연구-18:3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
'주의하지 아니할 터이요'는 히브리어로 '로 야시무…레브'( )인데 이를 직역하면 '마음에 두지 않는다'이다. 여기에서 '주의'에 해당하는 단어는 '레브'( )인데, 그 뜻은 신체적인 '심장'(왕하 9: 24)이란 일차적 의미와 더불어 보편적으로는 '마음'(왕상 3:9)이란 뜻을 갖는다. 이는 히브리인들이 추상적인 용어를 구상적인 용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며, 인간의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생각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주의한다는 것은 마음에 깊이 새기어 조심히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하지 아니할 터이요'는 '로야시무'( )이다. 이것은 부정어 '~이 아니다'를 뜻하는 '로'( )와 돌을 '세우다'(삼상 7:12)를 의미하는 '야시무'의 합성어이다. 여기에서 '야시무'의 원형은 '숨'( )인데 주된 의미는 '놓다'(set, 미 4:4), '고정하다'(fix, 창 24:47)이다. 즉 이는 한 장소에 정착하는 것을 의미하며. 확고 부동함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 또한, '숨'은 경계를 '정하다'(시 104:9)란 의미도 지닌다. 이처럼 '숨'은 확실성과 불변하는 강한 의지를 표명할 때에 쓰인다. 따라서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압살롬 군대의 모든 관심이 다윗 왕에게만 쏠려 있음을 요압이 주지시켜 주고 있다.
이와 같이 요압은 다윗 왕의 중요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알고 있었으므로 무모하게 전쟁에 임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이와는 반대로 압살롬은 왕의 지위에만 관심이 있었고, 아버지로서의 다윗 왕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반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은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서 삶의 자세와 행동이 달라진다. 따라서 바울은 성도들을 향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빌 2:5) 선포하였다.
도표-18:1-4 다윗의 군대 조직
삼하 23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18:3 섬기는 자의 자세
민 18장 자료노트 참조
풍습-18:9 히브리인들의 머리와 턱수염
삼하 14장 자료노트 참조
보감-18:12,13 성도의 올바른 순증 자세
신 27장 자료노트 참조
난제해설-18:18 압살롬에게는 아들이 없었는가?
본절에는 압살롬이 살아있는 동안 자기를 위하여 비석을 세웠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14:27에서는 분명히 압살롬에게 세 아들과 딸 하나가 있으며. 그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는 것까지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두 구절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은 어떤 이유에서 파생된 것인가? 압살롬은 왜 자기의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다고 말했는가? 그러면 이제 위 질문에 대한 궁금중을 해결해 보자.
1. 14:27과 18:18에 대한 견해
14:27에 대해서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압살롬이 아이를 얻기 전에 먼저 18:18 처럼 비석을 세우고 후에 아들을 두었다는 견해이다. 또 하나는 압살롬이 다윗에게서 반역을 꾀하는 동안 하나님의 의로우신 손에 의해 아들들이 멸절당해 버렸으므로 기념비를 세울 당시에는 실제로 아들이 없었다는 견해이다. 이 두 가지 견해 중에서 어딴 것이 타당한 것일까? 그러면 다시 14:27로 돌아가 보자. 압살롬에게 세 아들이 있다는 기록에서,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아들들의 이름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는 어떤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인가? 이에 대해 여러 주석가들은 공통적으로 세 아들 모두가 어렸을 때에 죽었다는 결른을 내리고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압살롬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으나 아들이 모두 일찍 죽었다. 또 그 후에 새로운 아들이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후대에 알릴 희망이 없게 된 압살롬이 변칙적인 방법으로 자기 이름을 남기고자 비석을 세웠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14:27과 18:18의 기록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사실임을 알 수 있다.
2. 교훈
압살롬은 자신이 살았을 동안에 이미 본문과 같은 글귀의 비문을 세웠다. 그것은 마치 상수리나무에 머리카락이 걸려 요압에 의해 살해되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예견이나 한 듯한 비석이었다. 참으로 아비를 배반하고 그 아비의 부인들을 범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본서의 기자도 이런 의도에서 압살롬의 비문에 대해 소개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 전반에 걸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재삼 확인하게 된다.
도표-18:2 다윗에게 충성한 이방인들의 실례
이름: 특 징
1. 아히멜렉:
1) 헷 사람(삼상 26:6)
2) 다윗의 하길라 기습 때 도와 줌
2. 우리아:
1) 헷 사람(삼하 11:6; 23:39)
2) 다윗의 30용사 중의 하나, 다윗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죽임 당함
3. 잇대:
1) 블레셋인(삼하 15:19; 18:2)
2) 압살롬을 피해 도피 중인 다윗과 고난을 같이함
4. 후새:
1) 아렉 사람(삼하 15:32)
2) 아히도벨의 모략으로부터 다윗을 구함
5. 소비마길:
1) 암몬 족속(삼하 17:27)
2) 피신 중인 다윗과 그 일행에게 음식을 대접함
6. 바실래:
1) 암몬 족속(삼하 17:27)
2) 다윗을 공궤하고 후에 다윗의 보답도 정중히 거절함
7. 셀렉:
1) 암몬 족속(삼하 23:37)
2) 다윗의 30용사 중의 하나
보감-18:3,4 지도자와 백성 간의 상호 의무
1. 사랑함(요 13:34,35)
2. 덕을 세움(롬 14:19)
3. 용서함(롬 15:7)
4. 권면함(롬 15:14)
5. 인자하게 함(엡 4:32)
6. 불쌍히 여김(엡 4:32)
7. 겸손함(빌 2:3)
8. 가르침(골 3:16)
9. 존경함(삼하 18:3)
10. 마음을 같이함(삼하 18:4)
11. 신뢰함(잠 3:11)
12. 우애함(롬 12:10)
13. 서로의 잘뭇을 바로잡아줌(갈 6:1,2)
14. 서로의 짐을 나눔(갈 6:2)
15. 복종함(엡 5:21)
16. 거짓말을 않음(골 3:9)
17. 위로함(살전 4:18)
18. 비방하지 않음(약 4:11)
19. 대접함(벧전 4:9)
20. 봉사함(벧전 4:10)
인물연구-18:1, 다윗
삼상 16장 자료노트 찰조
보감-18:5 성숙한 신앙인의 15대 특징
수 14장 자료노트 참조
인물연구-18:9-18, 압살롬
삼하 13장 자료노트 참조
풍습-18:16 나팔과 전쟁의 함성
민 10장 자료노트 참조
지도-18:6 에브라임 수풀 전투
보감-18:9-15 반역의 결과
수 23장 자료노트 참조
신학용어-18:28,31,32 성경적 복수
민 31장 자료노트 참조
도표-18:9-18 다윗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
사 건
1. 밧세바가 낳은 첫 아기가 죽음(12:15-18)
2.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범함(13:7-14)
3. 압살롬이 이복 형 암논을 살해함(13:23-29)
4. 압살롬이 아비 다윗에 대해 반역함(15:1-17:29)
5.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김 당함(15:1-16:23)
6.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을 범함(16:20-23)
7. 요압이 헤브론을 살해함(18:9-18)
8. 세바가 다윗에 대하여 반역함(20:1-22)
9. 요압이 아마사를 죽임(20:4-10)
삽화-18:18, 압살롬의 비석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다하여 스스로 세운 기념비이다. 이는 예루살렘 동남목에 위치한 기드론 골깍기의 동쪽 언덕에 있는데, 언덕의 암반(巖盤)을 네모지게 깎아 그 위에 세운 것이다. 이 비의 높이는 15m로서, 아랫 부분은 475, 윗부분은 원통형 동체에 뽀족한 지붕으로 덮여 있다.
오늘날에는 이 비석의 모양이 마치 이집트의 왕관처럼 보인다는 이유로 아라비아 사람들은 이를 '바로의 모자'라고도 부른다. 또한 유대인들은 정치적 야망 때문에 아비 다윗 왕에게 반역을
죄하였고. 결국 전투를 벌이다가 젊은 나이에 죽었던 압살롬의 불효를 생각하여, 이곳을 지나칠 때면 이 비석을 향해 돌을 집어 던진다.
보감-18:31-33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사랑
1. 자신에게 반역한 아들이지만 소중히 여김(삼하 18:5)
2. 자식에 의해 위험에 처해진 동안에도 오히려 걱정함(삼하 18:4,5)
3. 자식이 지은 죄는 미워하되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음(신 32:6)
4. 자신을 버리고 도망간 아들이지만 평안하기를 원함(삼하 13:38,39)
5. 왕이라는 신분과 체통도 잊을만큼 자식의 죽음을 슬퍼함(삼하 18:33)
6. 자신의 생명보다 자식의 생명을 더 귀중히 여김(삼하 18:33)
18:1-8 다윗군의 승리
전장 마지막 단락에서 우리는 다윗과 압살롬의 군대가 서로 대치하므로 조만간 일대 격전이 불가피하게 되었음을 보았다. 본장은 그러한 예상대로 격전이 벌어져 다윗군이 승리하고 압살롬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데 대한 언급이다. 그 가운데서도 본문은 다윗군이 압살롬군과 싸워 대승(大勝)을 거두는 장면이다.
그런데 본문은 다윗 군대의 승리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 즉 다윗 군대의 승리는 다윗의 뛰어난 용병술(1,2절)과 다윗을 중심으로 자기 생명도 아끼지 않고 싸울 것을 결의한 군사들의 단결된 힘(3,4절)이 결합되어 얻어진 것이다(6-8절). 물론 전쟁은 사람의 수와 무기 등에 의해 그 승패가 크게 좌우되기는 한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초현대적 병기에 의해 치러지는 현대전이 아닌, 사람과 사람들이 맞붙어 싸우는 전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병사들의 정신력이다. 오늘날에도 군대에서 정신 무장 및 군인 정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다윗의 군사들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다윗 왕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서 생명까지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록 전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미 승리를 담보받고 있었다고 하겠다.
한편 다윗은 압살롬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도피 생활을 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받으면서도 압살롬의 안부를 걱정했다(5절). 더욱이 압살롬은 아비 다윗을 죽이려 했으나 다윗은 어떻게든 압살롬을 살리려 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태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저주하기보다 그들의 영혼을 염려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해준다(눅 23:34). 그런데 마찬가지로 우리클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불효와 패역을 저지른 압살롬의 안부를 걱정하는 다윗의
사랑과 같이 무조건적이고 끝이 없으시다(렘 31:3; 요일 4:11,12).
18:1 함께한 백성을 계수하고. - 이 구절은 다윗이 단순히 군사의 수를 센 것이 아니라 군대의 조직을 정비하고 전투하기에 효율적으로 재편성한 것을 의미한다(Wycliffe). 아마도 헤브론이 전국적으로 모병을 실시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이 기간 동안 다윗은 전열을 정비한 듯하다. 한편, 여기서 쓰인 '함께한 백성'은 다윗을 보좌하던 신복들 뿐만 아니라, 다윗이 도피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마하나임에 있는 동안 그에게 모여든 모든 용사들을 가리키는데(Jamison), 이와 관련하여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는 그 군대의 수가 약 4천명에 이르렀다고 했다(Matthew Henry).
천부장과 백부장을…세우고. - 이것은 요즈음으로 하면 군대 조직을 사단과 연대, 대대 식으로 구분했다는 말이다. 즉 천부장은 천 명 정도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자이며, 백부장은 백명 정도의 병력을 지휘할 수 있는 자이다. 특히 신약 시대에 와서 로마 군대도 이러한 편제에 따랐으며(행 10:1; 23:10-17), 구약의 모세 시대에는 재판을 위해 조직되었다가 전쟁 시에는 군대 조직 편제의 기능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출 18:21-26). 아마 다윗은 두 세 개로 군병력을 나눔으로써 아군의 피해를 줄임과 동시에 다방면(多方面)에서 효과적인 공격을 하기 위하여 이러한 제도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18:2 잇대의 수하에 붙이고. - 이 구절은 잇대가 요압과 아비새와 함께 군(軍) 지휘관으로 기용되었음을 나타내 주는데 이것은 극히 이례적인 조치였다. 왜냐하면 통상 군장은 왕의 측근이나 이스라엘인이 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방인 잇대를 군장(軍)으로 임명한 것은 그가 잇대를 크게 신임하였다는 증거이다. 물론 그것은 잇대가 다윗에게 보여준 충성의 결과이다(삼하 15:21). 한편, 우리는 다윗과 잇대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는 바, 그 교훈은 다음과 같다. ① 성도는 하나님께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입술로 자신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을 시인(고백)하여야 하며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② 이러한 고백에 하나님은 더 많은 사명을 허락하사. 당신의 선한 사업을 세우도록 역사하신다(마 10:32; 눅12:8; 롬 10:9; 빌 2:11; 요일 4:15).
나도 반드시 너희와 함께 나가리라. - 이 구절은 다윗의 참된 지도자로서의 자세를 보여 준다. 즉 다윗은 신하들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솔선수범하였다. 특히 히브리어 본문의 표현은 다윗의 강한 의지를 더 확실하게 나타내 준다. 즉 '나가리라'는 말 앞에 절대 부정사 '야초'( )가 덧붙혀져 다윗의 단호한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다. 한편 지도자로서의 다윗의 이러한 자세에서 우리는 바로(Pharaoh) 앞에 담대히 섰던 모세(Moses)를 연상하게 한다(출 5:1-3; 6:1). 이처럼 지도자는 어느 상황에서든지 굳세고 강건하여 담대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자세의 근원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그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종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대하 20:20; 막 11:22; 눅 8:50).
18:3 왕은 나가지 마소서. - 여기서 우리는 다윗에 대한 신하들의 깊은 사랑을 보게 된다. 다윗의 신하가 다윗의 출장을 적극 만류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①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윗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러하기에 그가 죽을지도 모르는 '조건' 자체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② 그들은 적(敵)에게 더 이상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압살롬이 바라는 것이 군사의 패배가 아니라 다윗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들은 적들에게 조금의 기쁨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Matthew Henry). 이처럼 다윗의 신하들이 다윗을 뜨겁게 사랑했음에 비해, 압살롬의 신하들은 압살롬의 교만함을 오히려 부추겨 그를 전장터에 출장하게 하였다(삼하 17:11,14, Matthew Henry). 따라서, 이러한 충성심의 정도를 보아서도, 이미 이 전쟁의 승리는 다윗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다윗과 그 신하들 모습에서 성도는 사단의 세력과 영적 싸움을 할 때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즉 사단이 기뻐할만한 그 어떤 조건조차 허락해서는 안되며, 특히 싸움에 나서고자 할 때는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겠다.
18:4 너희가 여기는대로 내가 행하리라. - 이 구절은 다윗이 백성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보여준다. 물론 다윗이 출장을 하지 않고 성에 남아 있다고 해서 전혀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장기화될지도 모르는 전쟁에, 군사를 새로이 파견한다든지 식량을 보급하는 등 후방을 든든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이러한 다윗의 역할을, 즉 그의 자리를 '봉사의 자리'라고도 설명한다(Matthew Henry). 반면 압살롬은 자신의 맹위(猛威)를 드러내고자 스스로 군사 앞에 섰으나 도리어 이것이 멸망의 주요 조건이 되었다. 이처럼 겸허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만, 오만한 자는 스스로 멸망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잠 16:18).
18:5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 이 부분이 공동 번역에서는 '압살롬이 아직 철이 없으니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라고'고 되어 있다. 즉 자식을 생각하고 사랑하여 보호해 주려는 아버지로서의 다윗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이와 같은 다윗의 명령에는 자식과의 전쟁에 임함에 있어 자신의 군대가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과 아들 압살롬에 대한 용서의 마음, 그리고 아직도 압살롬을 자기의 왕위를 빼앗으려는 반란자의 우두머리가 아닌 철없는 소년으로 생각하는 등의, 군주로서의 자신감과 아비로서의 자애(慈愛)가 동시에 담겨 있다 하겠다.
18:6 에브라임 수풀. - 이 지역이 어느 곳을 의미하는지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즉 ① 요단 서편의 에브라임 경내(境內)에 있는 무성한 숲을 말한다는 견해(수 17:15-18, Eerdmann, Keil). ② 마하나임에서 가까운 요단 동편의 수풀을 의미한다는 견해(삼하 17:24-27, Grotius, Stenry, Grobe). 위의 두 견해 중 두번째 견해가 더욱 타당한 바,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성경 기록에 압살롬의 군대나 다윗의 군대가 요단 동편으로 건너왔다는 기록은 있으나(삼하 17:22,24), 다시 서편으로 건너갔다는 기록이 없다. ② 전장터의 거리가 마하나임에서 가까왔다는 사실(Thenius). 즉 아히마아스가 승전 소식을 마하나임까지 '뛰어서'(19-23절) 전달할 수 있었을 만큼 근거리였다. ③ 전투에서 승전 후, 다윗군이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다시 마하나임으로 회군(삼하 19:3) 한 사실(Ewald). 즉 전장터가 요단 동편이었음을 암시한다. 만약 서편이었으면 예루살렘으로 갔을 것이다(본장 자료노트의 지도 참조).
18:7 이스라엘 무리가…패하매. - 여기서 이스라엘 무리는 압살롬 군대를, 또 다윗 신복은 다윗 군대를 말한다. 그런데 특히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점은 다윗 군대의 수가 압살롬 군대의 수보다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겼다는 점이다. 이렇게 다윗이 승리하게 된 원인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① 다윗 군대의 뛰어난 조직력과 지도자의 우수한 지도력 때문이다(Lange). ② 다윗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원인을 통하여 우리는 악한 세력에 승리하기 위해서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단련시켜야 할 뿐더러 하나님께 의지하여야 함을 알게 된다.
18:8 사면으로 퍼져. - 여기에 쓰인 '퍼져'(푸츠)라는 말은 '흩어지다', '뿔뿔이 흩어버리다'(scatter)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다(창 10:18; 11:4; 민 10:35; 시 68:1; 왕하 25:5; 겔 34:5; 즉 13:7). 즉 패배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압살롬의 군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해 주는 부분이다.
수풀에서 죽는 자가…많았더라. - 이것은 압살롬 군대가 다윗 군대와 전투하다가 패한 것이 아닌 수풀 지역의 지리적 여건 때문에 패한 것임을 의미한다. 혹자는 이 수풀 지역이 늪, 가시덤불, 계곡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말한다(Keil). 결국 반역도 압살롬은 다윗군의 효율적 공격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그 결과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천연의 각종 무기(늪, 가시덤불, 벼랑 등)에 의해 전멸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18:9-18 압살롬의 죽음
앞 단락에서는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군대를 쳐부수고 대승을 거둔 사실을 살펴보았다(1-8절), 그에 이은 본문은 다윗에게 반역의 기치를 들었던 압살롬의 최후를 보여 준다. 즉 압살롬은 전투에서 패배하여 노새를 타고 도망가다가 그가 자랑하던 머리털(삼하 14:26)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결국 요압의 손에 죽임당하고 만다(9-15절). 뿐만 아니라 그의 시체는 웅덩이에 던져지고 돌무덤이 쌓아졌으니 죽어서까지 비참한 처지를 면치 못한다(16-18절). 이러한 본문은 교만한 인간의 자랑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를 잘 보여 준다. 즉 압살롬은 그가 자랑하던 머리털 때문에 죽임을 당했고, 그가 자신의 공적을 자랑할 목적으로 세운 비석이 도리어 자신의 처량한 죽음을 나타내는 묘비가 되고 말았다(18절). 이처럼 하나님은 악인의 자랑거리를 오히려 수치와 멸망의 무덤으로 만드심으로써 스스로 부끄러움을 당케 하신다(잠 11:2,3). 그러나 반면에 하나님께선 비록 범죄하여 징계를 당하였으나 그로 인해 더욱 겸손해지고 진정한 신앙심을 회복한 다윗을 다시금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여 주셨으니 압살롬의 경우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한편 이러한 압살롬의 죽음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그 시작과 과정 속에서 계속하여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심판을 필연적으로 초래케 하였다. 즉 간음과 살인이라는 패역한 범죄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된 압살롬의 반역은 내내 반인륜적이며 비신앙적인 모습을 드러내었다. 뿐만 아니라 신정 왕국이스라엘의 왕 될 자에 대한 결정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히 인본주의적이며 탐욕적인 방법으로 왕이 되려했던 압살롬의 반역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한 도전 행위가 아닐 수 없었다. 여기에 바로 이 반역 사건의 필연적인 실패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18:9 압살롬이 다윗의 신복과 마주치니라. - 여기에 쓰인 '마주치다'란 말은 '서로 정면으로 부딪치다'의 의미인데, 본절에서는 다윗의 신복들이 압살롬을 잡으려고 수색하다가 맞닥뜨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우연히 다윗의 신복들과 마주쳤음을 의미한다.
압살롬의…그 상수리 나무에 걸리매. - 이 구절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자의 최후를 드러내 준다. 다윗의 심복과 마주친 압살롬은 황급히 상수리나무 숲으로 도망쳤고 결국 상수리나무에 그의 머리털이 걸려서 비극적인 그의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의 머리가 상수리나무 사이에 끼었는지, 아니면 그의 탐스런(삼하 14:26) 머리카락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렸는지 확실치 않다. 왜냐하면 히브리 원문에는 '머리'(로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요세푸스(Josephus)는 압살롬의 그 숱이 많고 긴 머리털이 나무에 걸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나무에 달려 죽은 자가 갖는 저주의 의미가 성경에 분명히 나타나 있는 바(신 21:23), 압살롬이 하나님에게 얼마나 저주를 받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한편 '압살롬의 죽음'에 대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은 악인의 자랑거리(압살롬의 머리카락 및 왕권을 상징하는 노새)를 도리어 수치와 멸망의 도구로 사용하신다(시 34:21; 잠 26:1-8; 사 40:6-8; 벧전 1:24, Lange). ② 하나님은 압살롬을 나무에 달리게 하여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쓸모없는 악인의 전형으로 나타내셨다(민 16:29,30).
18: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고하여. - 다윗의 군대(軍隊) 중 요압의 수하에 있던 한 병사가 압살롬이 당한 처지를 요압에게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전쟁에서 적장(賊將)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에 임하기 전 다윗의 간곡한 명령을(5절) 알고 있는 이 병사는 죽이지 않고 보고만 하고 있는 것이다.
18:11 은 열 개와 띠 하나. - 이것들은 공적을 세운 군인에게 주어졌던 일종의 훈장이었다. 즉 '은'이라 함은 화폐라기보다 군복에 다는 훈장이었으며(Lange), '띠'는 그 사람의 명예를 드러내주는 것이었다(사 22:21; 눅 15:8).
18:12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압살롬을 해하지 말라. 병사는 전쟁에 참가한 군사로서, 압살롬을 죽임으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있다. 오히려 마땅히 왕의 명령(5절)을 따라야 할 요압이 그렇지 않음을 보고 강한 반발까지 보이고 있다. 히브리 원문(chethib)을 보면 본문(Masoretes)보다 병사의 각오를 훨씬 생생히 느낄 수 있다. '저는 싫습니다. 설령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Pulpit Commentary).
18:13 내가…해하였더면…대적하였으리이다. - 이 구절은 병사가 요압에게 한 말로서, 요압의 간사한 성품을 진술하고 있다 하겠다. 즉 병사는 자신이 압살롬을 해하였다면 요압은 분명히 다윗에게 자신을 고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요압의 간사한 성품을 익히 알고 있었던 듯한 이 병사는 지혜롭게 행함으로 요압의 기회주의적인 계략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18:14 지체할 수 없다. - 이 말은 결과적으로 '압살롬을 죽여야겠다'는 요압의 단호한 의지 표현이라 하겠다. 그런데 요압이 이처럼 왕명을 거역하면서까지 압살롬을 죽이려 한데는 다음 몇 가지의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① 여론에 편승한 영웅 의식. 당시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백성이나 정부군의 대다수는 내심 압살롬을 죽여야 한다고 여겼을 것이다. ② 압살롬이 살아있을 경우 다윗 왕의 부성애(父性愛)와 우유부단(優柔不斷)한 성격이 한데 얽혀 지금까지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빚어지는 여러 가지 정치적 혼란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의도. ③ 훗날 그가 아도니야 옹립에 가담한 것으로 보아(왕상 2:28-34), 이때부터 준비했을 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음. 만약 그렇다면 압살롬을 반드시 죽여야 했을 것임.
작은 창 셋. - 여기서 '창'이라 번역됨은 70인역(LXX)을 따른 것인데, 그러나 여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뒤따른다. 왜냐하면 원어(쉬베트)는 일반적인 '창'의 형태라 할 수 있는 끝이 예리하게 뾰족하고 날카로운 고대의 화살이나 창, 그리고 쇠꼬챙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보잘 것 없이 길이가 긴 '막대기'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단번에 압살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없었다. 때문에 세 개씩이나 가지고 갔으며 결국 자신의 막대기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 후에 자신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를 지녔던 열 명의 병사들로 하여금 쳐죽이게 하였던 것이다.
18:15 병기를 맡은 소년 열이…죽이니라. - 여기서 병기 맡은 소년 열 명이란 요압의 무기를 들고 다니던, 즉 요압의 직속 부하들로서 항상 요압의 곁에서 모든 시중과 병기를 관리하는 군졸들이다. 삼상 14:6 주석 참조. 이와 같은 요압의 군졸들에 의해서 압살롬이 죽게된 것은 명백한 왕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며, 나아가 다윗과 그의 가문을 우습게 여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 무도한 요압을 통해서라도 반역자 압살롬을 처형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18: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로 그치게 하니. - 압살롬의 죽음은 실제적으로 반란 종식을 의미했다. 이제 더 이상의 피 흘림은 무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한 요압은 나팔을 불어 전쟁이 끝났음과 그리고 승리하였음을 선포하였다(Keil, Lange). 요압의 이러한 조치는 비록 그가 기회주의적이고 결함된 인격의 소유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정치적 수단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단면이라 하겠다.
18:17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 이것은 큰 반역자나 불순종한 자에게 수치를 나타내기 위해 행하여졌던 조처였다. 특히 이러한 행위는 아간과(수 7:26) 아이성의 왕에게(수 8:29) 행하여졌던 조처이기도 하다. 또한 패륜아를 돌로 쳐죽이라는(신 21:21) 율법에 따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돌무더기에 파묻힌 압살롬을 통하여 우리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교만한 자의 종말이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 된다.
18:18 압살롬이…비석을…세웠으니. - 이 구절은 압살롬의 자녀가 이미 조사(早死)하였기 때문에(본장 자료노트 '압살롬에게는 아들이 없었는가?' 참조) 압살롬이 스스로 자신의 명성을 오고 오는 세대에 전하기 위하여 자의(恣意)로 세운 기념비에 관한 언급이다. 여기서 우리는 압살롬이 생존시 상당한 명예욕의 소유자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도 사무엘서 저자는 살아 생전 이와 같은 그의 오만함과 그의 비참한 죽음을 대비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교훈받게 하려고 본 구절을 삽입한 듯하다. 따라서 성도들은 교만한 자의 최후가 이처럼 비참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달아 겸손한 생활을 하여야 하겠다(마 12:41; 눅 18: 13, 14; 고전 1:19-23; 빌 2:5-8). 왕의 골짜기. 이 곳은(the King's Valley)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을 파하고 돌아올 때에 소돔 왕과 살렘 왕 멜기세덱이 그를 영접한 '사웨골짜기' (the Valley of shaveh)라고도 불리는 곳이며(창 14:17),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약 4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로도 볼 수 있다(Josephus).
18:19-33 전승 소식을 접한 다윗
앞 단락에서는 다윗군이 압살롬군에게 대승을 거두고(1-8절) 압살롬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므로(9-18절) 15장에서부터 시작된 압살롬의 반역이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보았다. 그에 이은 본문은 그 같은 전투 결과를 보고받은 다윗의 엇갈린 감정 상태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즉 다윗은 전쟁의 승리를 전한 아히마하스의 보고로 인해 큰 기쁨을 얻은데 이어(19-30절), 압살롬의 죽음을 전한 구스 사람의 보고를 받고서는 깊은 비탄에 잠기고 만 것이다(31-33절). 여기서 우리는 전투의 결과를 전하는 두 사람의 자세에 주목하게 된다. 먼저는 아히마하스의 자세이다. 즉 그는 비록 늦게 출발했지만 다윗에 대한 뜨거운 충정으로 구스 사람보다 먼저 도착하여 승리의 소식을 전했다(23, 28절). 그러나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짐짓 모르는 척 했다(29절). 이는 아마도 압살롬의 죽음 소식으로 인해 다윗이 충격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반해 구스 사람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보고했다(32절). 때문에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심히 슬퍼하고 상심하기는 하나(33절) 마침내는 압살롬의 죽음이 저의 불의의 대가임을 인정하고 정상을 되찾는다(삼하 19:8). 이상에서 우리는 비록 아히마아스의 충정을 높이 사기는 하나 그가 진실을 알리기를 주저한 데 대해서 그 잘못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아히마아스의 염려는 하나님의 공의보다 인간적 우려를 앞세운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이해심을 잃지 않는 가운데서도 항상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공의에 입각해 행동하여야 한다(행: 4:19).
한편 압살롬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은 깊은 슬픔에 빠진다(33절). 비록 압살롬이 자신에 대해 반인륜적인 반역행위를 했다 할지라도 어쩔 수 없는 아들이었기에 아버지로서 아들의 죽음을 놓고 슬픔을 억제키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으로 다윗이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이라는 그러한 모든 비극이 자신의 범죄로 인한 대가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운명 공동체인 이스라엘 내에 피비린내 나는 분열과 싸움이 있었다는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이었다.
18:19,20 네가…전하지 못하리라. - 이것은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윗 군대의 승리를 마하나임에 있는 다윗에게 알리려 하는 것을 요압이 막는 언급이다. 이같이 요압이 아히마아스를 제지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다. ① 아히마아스는 다윗에게 좋은 소식만을 알려온 심복이었으므로, 압살롬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알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 아히마아스가 달려오는 것을 다윗이 볼 경우, 좋은 소식만을 기대할 것이고(27절), 따라서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닌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에게 더 큰 충격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② 일전에 다윗이 사울을 죽인 자를 처형했던 일례에 (1:1-16) 비추어 볼 때 이번에도 압살롬의 죽음을 전하는 아히마아스를 죽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18:21 구스 사람에게 고하라 하니. - 이 구절에서 언급된 '구스(Cush)'는 오늘날의 수단(Sudan)과 이집트의 남부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서 흔히 '이디오피아'로 알려진 곳이다(민 12:1 주석 참조; 대하 14:9-15; 행 8:27-39). 따라서 구소 사람은 다윗 군대의 군인, 으로서 노예 신분이었을 것이다. 한편 요압이 전령을 아히마아스가 아닌 구스 사람으로 택한 까닭은 ① 구스 사람이 다윗 왕의 노예이므로 아무런 부담없이 압살롬의 죽음을 전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며(Rust) ② 다윗이 멀리서 뛰어오는 구스 사람 전령을 보는 순간 불길한 징조를 충분히 짐작하여 아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을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Grotius).
18:22 이 소식으로 인하여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 지금까지 좋은 소식만을 전해왔던 아히마아스에게 '이번 일로 인하여는 너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라는 요압의 말이다. 반란의 우두머리인 압살롬을 죽인 소식은 전체 다윗 진영에 정말 환희의 소식이지만 자식을 정말로 사랑하였던 다윗에게는 엄청난 충격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아히마아스의 요구를 재삼 만류하고 있는 장면이다.
18:23 들길로 달음질하여…앞서니라. - 여기서 '들길'은 '요단 계곡의 길'을(창 13:10-12; 19:17,25,29; 신 34:3; 왕상 7:47) 뜻한다(Keil, Lange, The Interpreter's Bible, Wycliffe). 특히 이 길은 평평한 평지의 길이었으므로 아히마아스가 구스 사람보다 더 늦게 출발하였으나 마하나임에 도착은 더 빨리 할 수 있었다. 한편 구스 사람은 에브라임 수풀에서 마하나임에 이르는 직선 길을 택한 것 같다. 이 길은 마하나임과 가까웠지만 길이 험해서 빨리 뛸 수 없었다(Hertzberg, Wycliffe).
18:24 다윗이 두 문 사이에 앉았더라. - 이 구절에서 '두문 사이'라 함은 '요새화된 성읍의 외문과 내문'을 말한다(Keil, Hertzberg). 이처럼 다윗이 침실이나 거실 또는 집무실이 아닌 성문까지 나와서 서성였다는 것은 그가 전쟁터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18:25,26 혼자면…소식이 있으리라. - 다윗의 이러 왜냐하면 한 판단은 어느 정도 정확한 판단이었다. 전장에서 다윗 군대가 패배하였다면 아마 여러 패잔병들이 오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은 한명의 전령을 보고서 승리의 확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Matthew Henry).
18:27 아히마스의 달음질과 같으니이다. - 이 구절은 파수꾼이 멀리서 달려 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소리지르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두 가지를 새삼 알게 된다. ① 파수꾼은 자기 직분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즉 성문에 출입하는 자들의 모습을 잘 관찰하여 눈에 익혀 두었다는 말이다. 때문에 멀리서도 뛰어오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② 아히마아스는 평상시에도 언제나 분주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즉 일상 생활에서 활동적으로 일하였기에 멀리서도 그의 모습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 두가지 사실을 통하여 우리 신앙인은 그 맡은 사명을 잊지 말아야 함과 또한 우리 자신의 삶에 보다 성실하고 충실되게 살아야 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알아 보시고, 그의 나라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신다.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 오느니라. - 이 구절은 아히마아스에 대한 다윗의 인식이 좋음을 보여 준다. 특히 여기서 쓰인 '좋은 사람'이란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때문에 다윗은 아히마아스가 전투를 피하여 도망하리라곤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아히마아스가 달려온다는 파수꾼의 보고는 다윗에게 있어서 곧 승리했다는 보고나 다름없었다. 한편, 아히마아스가 다윗으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도록 한 것에는 일상생활에서 아히마아스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었는지 반영한다 하겠다. 따라서 우리 성도 역시 우리 이웃으로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일상 속에서 항상 노력하여야 한다.
18:28 평강하옵소서. - 이 말은 원어로 '솰롬'( )인데, '평화', '번영', '행복', '안전', '건강' 등을 기원하는 유대인들의 인사말로 쓰이는 단어이다. 이같은 인사는 단지 안녕만을 기원하는 의미가 아니라, 인사를 나눈 개인과 공동체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전히 충족되어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인사이다. 아마도 본절의 아히마아스가 소원한 것은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해 평화가 깨어진 다윗가(家)의 여러 상황들이 잘 수습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여겨진다. 삼상 25장 자료노트, '히브리인의 인사법' 참조.왕을 대적하는 자들을 붙여 주셨나이다. 여기서 '붙여주셨나이다'(사가르)라는 말은 '닫다', ‘차단하다', '감금하다'의 의미를 지닌 말로서(창 19:6,10; 수 6:1; 욥 3:10; 시 17:10; 사 24:10; 렘 13:19) 압살롬의 군사들을 하나님께서 도무지 싸우지 못하도록 무기력하게 조치하셔서 아군(我軍)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18:29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 - 한 나라를 통치하는 왕으로서 전쟁의 승패를 알리는 전령에게 전황(戰況)과 더불어 부하들의 안부를 물어 보는 것이 이치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생사에 더욱 큰 관심이 있었다. 이것은 다윗이 그만큼 아들을 사랑했다는 증거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에 선포한(삼하 12:10) '심판의 칼'이 거두어지기를 바라는, 그의 애끓는 심정을 토로한 것이라 하겠다.
나를 보낼 때에…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였나이다. - '압살롬이 잘 있느냐'라는 말 속에 담겨져 있는 다윗의 심정을 파악한 아히마아스가 압살롬의 죽음을 바로 말하지 못하고 변명하고 있는 장면이다. 아히마아스는 이제야 비로소 요압이 이 고통스러운 소식을 자신에게 맡기지 않으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22절). 아무튼, 이처럼 아히마아스가 변명을 함으로 인해 그는 진실을 저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결국 이것은 신앙인다운 모습을 저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진실이란 모든 상황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신앙인의 행동 원리이기 때문이다.
18:30,31 구스 사람이 이르러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 아히마아스보다 늦게 도착한 구스 사람이 같은 내용의 보고를 하고 있는(28절) 장면이다.
18:32 그 소년과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 재차 '압살롬이 잘 있느냐'고 묻는 다윗의 질문에 답하는 말로서 압살롬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죽었음을 분명히 보고하고 있는 모습이다(Lange). 한편, 다윗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즉각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압살롬의 죽음을 보고하는 구스인을 통해, 우리는 신앙인의 한 표본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그 보고로 인해 죽을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그는 비천한 노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히마아스처럼 망설이거나 거짓말하지 않은 이유는, 본문에서 보다시피, 압살롬의 죽음을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서 일어난 한 사건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는 다윗의 감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보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겠는가?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 여기서 '마음이 심히 아파'(라가즈)의 의미는 '격분하다', '전율하다'(사 64:2; 욜 2:1; 렘 33:9)라는 의미로서, '어떤 감정으로 인하여 일으키는 동요'를 가르킨다. 즉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아주 격렬한 전율에 사로잡힐 만큼 슬퍼 탄식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 다윗의 이와 같은 절규는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심정이 담겨져 있으며, 또한 밧세바를 강제로 빼앗으므로 시작된 자신의 범죄 때문이라는, 심한 자책감의 표현일 것이다. 즉 암논을 잃었을 때(13:28,29)와는 달리 이제 압살롬을 잃고 보니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10)라는 나단의 말이 상기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슬픔에는 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아버지의 본성적 비탄(욥 1:20). ② 자신의 범죄가 가져온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고통(시 38편)이 함께 담겨 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에 대한 애정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 즉 그는 한 아들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왕이었다. 때문에 다윗은 아들보다는 나라를 더 염려했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나라의 공직에 있는 성도로 하여금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침없이 공동체 전체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처신하는 것이 바른 길임을 깨닫게 한다(마 6:33). 압살롬이 아무리 자신의 아들일지라도 반역자이므로 그에 대한 슬픔의 심정은 속으로 삭히고 전쟁에 참가하여 죽거나 다친 일반 이스라엘 백성의 안위를 더 걱정했어야 마땅했다. 그렇지 못했던 것이 다윗이 후에 정치를 하는데 다소나마 장애가 된듯하다(왕상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