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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아이들

고백록8권 에세이-박인서

작성자박인서|작성시간23.08.23|조회수39 목록 댓글 0

악의 나무에 기대어 사망의 그늘에 앉아서

 최근 나에게는 소원이라 부를 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오로지 믿음과 경험 만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다지 성경과 세상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세상과 엮이지 않으며 인생의 경험과 그로 인한 믿음 만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만나고 싶었다. 물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등에 기독교인이라면 할 수 밖에 없는 행위는 하더라도 그로 인한 그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그 사람의 인생이, 행동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었다. 어느 날은 내 미래 배우자가 그러했으면 하는 마음에 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성경에 대해 의심하고 세상이 말하는 여러 것들(과학, 철학, 세계관, 여러 주의)과 더불어 생각하는 것은 건강하고 그래야만 한다. 또한 그 사람이 개인적인 경험과 (성경을 보는)시선으로만 하나님의 대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분명히 위험하다. 세상과 자신에 대한(성경에 반대되는 것) 반박 없이는 믿음이 유지 될 수 없다. 여러 문제들을 모른 체하고 살아간다면 분명 인생에 어느 부분에서 문제들과 대면하게 된다면 사람은 분명히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의 인생이 온통 기적과 이적으로 채워져 절대 흔들리지 않을 믿음을 가지고 있어 어떤 질문에도 믿음이 바뀌지 않으며 세상과 대면하여 수많은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대한 반박을 들어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그런 사람을 나는 원하였다.

 

 목사님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 믿음의 결핍이 있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순간 멍 해졌다. 나는 그런 것 같아요.”라는 말 밖에 하지 못하였다.

 

 나에게 믿음이 없는 것도 아니며,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며 그로 인한 믿음도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고 경험에 대한 확신이 없으며 당연히 그로 인한 믿음도 확신이 없다. 더 나아가 8권을 읽으며 나는 일어나는 것을 미루는 자이며 뒤에서 부르는 헛된 소리에 이끌려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보였다.
 
나에게는 믿음은 있지만 정확히 자리 잡지 못하고 세상과 하나님의 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세상의 것에 자빠지며 내 안에는 온전히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한 결핍이 생겼다. 고백록 1권 에세이에서 나는 어거스틴이 세상을 보는 시선으로 나도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하였다. 분명히 그도 결핍에서 나온 바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결핍을 내가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내 마음속의 이상을 그려내고 사람들을 이상에 맞추어 짜내어 나의 우상으로 삼았다.

 , 나는 악의 나무에 기대어 내 의지의 쇠사슬을 나무에 단단히 묶은 체 사망의 그늘에 앉아 저 멀리 무화과나무에 앉아있는 어거스틴과 수많은 신학자들, 내가 만들어낸 이상의 형태들을 보며 죄인이라는 것 이상으로 그들을 높이며 다른 사람들과 구별을 두고 그들을 곁에 두고 싶다는 헛된 마음을 품으며 나의 결핍을 더 들어냈다.

 

 세상의 죄에서 나오는 쾌락과 시온의 믿음에서 나오는 쾌락을 둘 다 맛보기를 원했으며, 세상의 묶여 있으며 믿음의 결핍을 채우려 했으니 얼마나 악하고 미련한 짓인지 드디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곧 내 믿음의 결핍은 이제는 그저 결핍이 아닌 나의 이중성으로 두 가지 의지 선택의 기로에서 악을 택하며 동시에 나타날 수 밖에 없는 선의 결핍에서 그저 이상을 우상화 시킬 뿐 절제에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 큰 죄이다.

 

 한 사람을 통한 죄를 한 사람을 통하여 사하여 주시는 누구보다 선하게 계획하시고 바로 이루시는 하나님이니 선인이 악인이 되는 것을 허용하셨듯 악인이 선인이 될 수 있게 허용하시고 선인이 악에 빠져 악을 찬양하기를 허용하심 같이 악인이 선에 빠져 선을 찬양하기를 허용하심이 놀랍다. 또한 각 사람이 악에 빠지는 것을 허용하시니 각 사람의 믿음도 허용하셨다. 각 사람마다 그 형태가 다르니 내가 다른 형태를 이상화 시켜 우상 만들 필요가 없고 각 사람마다 다른 믿음의 형태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 놀라움을 찬양해야 하며 나에게 제일 필요하고 좋은 믿음의 형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함이 마땅하다.
 
다른 믿음의 형태는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 빅토리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두친구의 믿음의 형태가 어거스틴에게 도움을 주고 어거스틴의 믿음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또 그 수많은 사람은 펴져 나가 각각의 믿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말할 뿐이다.

 

 사무엘의 믿음도 바울의 믿음도 다윗의 믿음도 베드로의 믿음도 어거스틴의 믿음도 다 그 형태는 다 다르지만 하나의 사실은 다르지 않으니 그 믿음의 기원이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것이고 하나는 마음으로 주입된 하나님의 내적인 역사하심으로 인한 것이다.

 

악의 나무에 기대어 사망의 그늘에 앉아 세상의 쾌락에 박수치고 있는 나를 본 단 한 분이 작고 작은 나를 위하여 말씀을 준비하시니 먼저 찾아오신 역사하심으로 인해 다시 믿음의 격려를 하신다.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라.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이음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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