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 가득했던 새벽과 달리 낮은 포근한 봄날이다. 아이들과 만나는 7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인데, 아직도 주변이 훤한걸 보면, 깜깜했던 이시각의 겨울날과 대조적이다. 곧 여름날이면 환한 저녁에 아이들과 수업이 진행되겠지.
징검다리는 건넌다. 불빛으로 가득했던 강물에 가로등불 대신, 아직은 남은 햇살을 담아내고 있다. 상담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차가 밀렸던 모양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아이들과 조우하고, 곧바로 오늘 함께 나눌 내용을 돌아가며 읽었다.
이명석의 "기타도 스쿠터도, 저지르지 않으면 달릴 수 없다."라는 10쪽도 되지 않은 짧은 글이다. 이미 유명해진 저술가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좌충우돌했던 젋은 날의 기록을 담고 있어 읽어내는 아이들에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이다. 저자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2개월 동안, 기타를 배울지와 운전면허를 배워야할 지를 놓고 고민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둘 다 포기했던 기억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결국 지금까지 그렇게 좋아하는 재즈를 기타로 제대로 치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고 있고, 여행을 갈 때, 특별히 유렵여행에서 렌터카 여행을 친구에 의존해야 했던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가장 나쁜 선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선택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장고끝에 악수를 둔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최악이라는 주장이다. 인문계, 이공계? 미팅한 여자친구에게 지금 전화를 아니면 주말까지 기다렬볼까? 수많은 선택의 연속가운데 선택없이 주저 앉지 말라고 말한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마다 "LA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할 거에요.", "뉴욕가서 미디어학을 공부할거에요." 이런저런 고심들이 많았지만 결정하지 않고 주저 앉았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96년이 생각났다. LA에 있는 파사데나에서 김세윤 교수를 통해 '입학허가서'를 받고, 근처에 머무를 숙소와 지원까지 약속받고서도, 두려움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버렸던. 다시 공부하러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돌아왔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기회들은 저지르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다루고 있다. 한강변에 나가서 스쿠터를 배우려고 했던 저자. 고등학생들이 다수라 머뭇거리던 그의 주변으로 아드 지긋한 노인분들이 눈동자를 초롱이며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서 저자는 문득, 주저앉았더 시절을 추억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 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고의 악수는 그냥 포기하는 일이라는 교훈은 여전히 내게도 유효한 이야기다. 글을 읽고 줄거리와 느낌, 교훈들을 쓰게하고 차례로 나누었다. 간략하게 기록되어나온 글이지만, 저자의 의도에 맞게 아이들 나름의 각오들이 담겨있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밤.
인문학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이어지는 식탁. 나는 공부보다 식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식구(食口)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 단지 물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따스하게 스미는 훈훈한 마음일 것이기에. 오늘은 비빔밥이다. 빠지지 않았던 고기 대신 푸른 채소여서 감사했다. 밥맛이 꿀맛이다.
식탁이 치워지고 나서 아이들과 차례로 팔씨름을 했다. 져줄까 하다가 나도 오기가 발동해서, 모조리 이겨버렸다. 너무했나. 좀 져줄걸. 아이들이 차례로 방으로 흩어졌다. 정창호선생님과 이어지는 대화, 가끔씩은 아이들과의 공부시간 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오늘도 이런저런 옛 이야기부터, 아이들, 가족들이야기까지 나누며 교감이 깊어져간다. 바깥날은 쌀쌀해져가는데, 마음은 오늘도 포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