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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오전반

김기현, 김희림.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서평 [정국환. 온라인. 월요일. 오전반]

작성자정국환|작성시간20.08.03|조회수117 목록 댓글 0

김기현, 김희림.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서평

 

이 책은 신앙생활에 필요한 10가지 주제를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해서 편지형식을 빌려서 질문하고 대답한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희림은 뛰어난 상식으로 일상에서 스치는 궁금증을 잘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김기현목사는 아들과의 공통의 상식에 기반해서 학습한 내용을 때로는 선문답처럼 제시함으로 정답보다는 공부할 과제를 남기며 다음 대화를 기약한다. 이 책은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라며 방황하며 집을 떠나는 아이의 투정이 아니라 그 집 안에서 각가지 공간과 도구에 대한 사용설명서를 물음으로 오롯이 공간을 사용하고 가정이 주는 힘을 누리고자 하는 아이의 궁금증과 아빠의 공간활용서이다.

 

, 인간, 기적, 기도

하나님은 악의 본성이 아닌 사랑으로 악에 응답하셨다. 또한 우리가 그 대답이 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묻는 존재로서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만 파악된다. 인간은 파스칼의 말처럼 비참함과 위대함이 양립하지만 하나님은 동일한 성품으로 말도 안되는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신다. 이는 기적처럼 우리의 이성이 이해하기도 신뢰하기도 힘들겠으나 자연법칙을 인정하듯 수용함으로 하나님의 방문을 묵도할 수 있다. 인간의 모든 한계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동하는 여지를 제공하며, 우리는 기도로 하나님의 일에 신비롭게 참여할 수 있다.

 

종교다원주의, 성경, 예정

편파적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배타적일 정도로 하나님만 섬기는 것을 문제삼아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 불만을 자신들의 신들에게 돌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는가. 신을 획일화시키는 현상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성경을 보는 관점과도 연관이 있다. 우리는 성경의 요구에 반응해야지 시대의 요구로 성경을 해석하는 오류에 주의해야 한다. 그 성경은 예정과 자유의지를 동시에 기록하고 고통에서 구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가 고통 받는 자의 친구가 되기를 말씀하고 계신다.

 

, 과학, 천국

돈은 그냥 돈이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돈이라는 리처드 포스터의 , 섹스, 권력의 주제 등에 적용점이 크다. 성경은 돈의 신적 위험성에 경고하면서도, 돈이 하나님의 사역에 순종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향상시키는 선한 면도 언급한다. 과학을 보는 눈도 그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과학은 과학일 뿐이다. 창조세계를 다루며 기독교와 조화를 이루지만 일치하지는 못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읽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천국의 사회적 기능처럼 이 세상에 대한 위안, 대안, 반역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통치와 함께 할 것이다.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는 먼저, 아들과 아빠의 이상적인 대화 장면을 큰 선물로 주었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저녁 830분이면 큰 일이 없는 한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을 재웠다. 이를 통해 내가 믿는 바는 자녀들과 어떤 공통된 소재가 있어야 대화가 가능하며 부모는 그 연결고리를 유지하고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희림 군의 상식과 김기현 목사의 신학적 자료는 누구보다도 자녀를 위해 성경교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와 근거를 되새기게 했다.

 

다음으로 희림 군의 박식하지만 피상적 상식에 본질을 채우는 김기현 목사를 통해서 말씀 교사의 역할을 봤다. 나의 상식을 부끄럽게 만드는 희림 군의 넓은 지식은 분명 스스로의 노력과 부모의 안내 덕이 아니었을까. 조기 교육이 필요하다며 바로 이러한 인문학일 것이다. 이들의 대화는 아이러니 하게도 현실 교회의 미숙한 성인 성도들을 상기시켰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 전문가의 삶을 산다. 그리고 그 지식의 수준과 정도는 다르기에 누군가에게 상식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처음 접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현대의 교인들은 성경의 의도로 자신의 삶을 살피기 보다는 자신의 전문성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섣부름이 강하지 않은가 싶다. 성경 교사로서 학습을 사명으로 해야 함은 그 성도들에게 본질의 물음을 던지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끝으로 재물에 대한 가치관을 되새기게 했다. 자비량 선교사로서 처음 사역을 시작할 때에 후원이 끊어지면 사역도 거기까지라고 결단하며 시작했던 세월이 15년이 지났다. 그간에 많은 캠퍼스 개척을 했지만 여전히 물질과는 상관없는 삶의 연속이다. 그러나 돈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을 사는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내 삶은 격려를 받고 다시 몸을 추스르게 된다.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보다도 더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소명의 퇴색일 것이다. 그 소명을 목숨과도 같이 여기며 주님 뒤를 따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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