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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오전반

그물을 내린다는 것, 배를 버려두고 따른다는 것

작성자윤현석|작성시간20.10.05|조회수223 목록 댓글 0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누가복음 5장 1~11절에 나오는 구절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자 베드로가 그물을 내렸고 그물 가득히 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그물과 가족을 던져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모태신앙으로 기억의 시작점부터 말씀을 듣고 자라왔지만, 성경 말씀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위 구절이다.

 

부둣가에 가면 정박한 많은 어선들을 볼 수 있다. 어선들을 살펴보면 깃발과 장신구 들을 배에 걸어 놓았는데 안전과 만선을 바라는 민간 신앙적인 표현이다. 민족, 나라 또는 시대에 상관없이 모든 어부들은 만선을 꿈꾼다. 하지만, 어부에게 물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 기적인가? 물고기를 많이 잡은 것은 기적이 아니다. 어부의 삶에서 한번씩 찾아오는 행운이며 노력에 대한 댓가이다. 잡은 물고기로 크게 잔치 벌여 예수님께 대접한번 할 일인 것인데 왜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배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일까?

 

학교에서 수온약층이란 말을 배웠을 것이다. 물이 깊이에 따라 온도변화가 발생하여 층을 이루는데 낮에는 표면층이 햇빛을 받아 따뜻해져 수온이 상승한다. 하지만 수심이 깊어질수록 햇빛은 닿지 않아 깊은 곳의 물을 차갑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위층의 따뜻한 물은 아래층 차가운 물을 조금씩 데워주며 오후쯤이면 수심 깊은 곳까지 따뜻해진다. 반면, 날이 어두워지면 표면층부터 식어가며 한밤 중이되면 낮과는 반대로 수심 깊은 곳은 따뜻해지며 표면층은 차가워진다.

 

어류는 온도에 민감하다. 실험에 따르면 0.01℃의 온도 차이도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낮 시간에는 따뜻하고 먹이가 많은 표면층을 따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밤이 되면 물이 상대적으로 따뜻한 수심 깊은 곳에 모인다. 다시 날이 밝아지고 표면층이 따뜻해지면 물고기는 표면층으로 이동하는데 특히 수심이 얕아 금방 데워지는 물가로 이동을 하게 된다. 확률적으로 물고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를 옛 어부들은 경험적으로 알았고 베드로는 같은 이유로 한밤 중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다.

 

청바지나 이불을 손빨래 해보면 천이 물을 먹으면 엄청 무거워지는 것을 경험하는데 그물도 마찬가지다. 수십미터 되는 곳까지 내릴수 있는 그물은 혼자서 끌고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에는 재질들이 좋아져 가볍고 강한 그물들이 많지만 이마저도 물을 머금게 되면 무거워진다. 옷도 귀한 시절에 그물로 쓰는 재질은 얼마나 험하고 무거웠을까 미루어 짐작하며 그때 그물을 내린다는 것은 함께 일할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작업이며 노동 강도를 생각해볼 때 밤이라는 시간동안 그물을 내리고 올리는 횟수가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어선 선장과 선원들은 본인들이 잡는 어획량만큼 가져간다. 고기 못잡는 실력없는 선장 밑에는 사람들이 모이질 않고 사람이 없으면 물고기도 못잡는다. 고기가 잘 잡히는 자리에 대한 정보는 마누나도 자식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선장들 사이에 있다. 마찬가지로 밤새 베드로가 그물을 내린 자리들은 자신의 경험과 쌓은 지식을 바탕으로 결정해서 내린 자리인 것이며 못잡는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를 넘어선 먹고 사는 문제인 것이다.

 

반면, 예수님이 그물을 내려라고 명하신 그 시간대는 이미 해가 뜬 후라 물 깊은 곳에는 물고기들이 거주할 수 없는 환경인 것을 베드로는 알고 있었음에도 그 말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다. 아마도 배 위에서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영접했을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검증하고 싶은 마음이 었는지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물을 내렸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밤새 그물질로 지친 사람들을 다독여가며 물을 잔뜩먹은 무거운 그물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며 호기심에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님은 분명하다. 물고기가 가득한 그물을 올릴 때 그가 느낀 것은 기쁨보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견고한 세계관이 무너지는 두려움에 가까운 감정이었을 것이다.

 

대학교 2학년 어장학 강의시간에 강의를 듣다 문득 위의 말씀구절이 왜 기적인지에 대해 깨닫고 혼자 은혜 받았던 것 같다. 말씀을 듣고 자랐기에 내 안에 믿음이 있는 것은 확신한다. 하지만 베드로와 같이 내 안의 견고한 것들이 말씀 앞에서 무너진 경험이 없었던 것 같다. 나아가 믿음으로 그물을 내릴 순종은 내게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물을 내린다는 것 그리고 배와 사람들을 두고 따른다는 말씀이 오를 수 없는 산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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