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은 1인칭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등장인물은 점순이와 나. 나는 남자아이 이다. 이야기는 점순이가 자기 집의 수탉과 꽃분이 집의 수탉과 싸움을 붙여서 막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얼마 전 가지만 해도 분명 자신과의 사이가 괜찮았는데, 어느날 점순이가 준 감자를 안 먹겠다고 거절했을 때부터 점순이의 시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는 이상하게 느낀다. 그러나 지속된 닭 싸움 붙이기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자신의 수탉이 자꾸 진다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 주인공은 자신의 닭에게 고추장을 먹이고 싸움을 붙이는데 동참하기 시작했다.
고추장을 먹인 직후에는 효과가 있는 듯 보였으나 또다시 지자 화가 나 아예 고추장을 물에 타서 닭에게 먹였다. 닭은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피를 매일 흘리는 것보단 당장의 고통이 낫다 는 포장된 자신의 이기심으로 계속해서 먹였다. 어느날은 그렇게 먹이다가 닭이 돌연 기절 해버렸지만 다시 깨어나 그냥 그렇게 넘어갔었다.
그러다가 ‘나’는 소나무를 지고 내려오다가 점순이가 또 노란 동백꽃 사이에서 닭들 싸움을 붙여놓고 호루기를 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치가 떨려 꽃분이네 닭을 죽인다. 막상 일을 저지르고 나니 분하기는 한데 무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서 무작정 울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점순이는 다음엔 안그럴거냐 물어본다. 영문도 모른채 주인공은 안그러겠다 한다.
그러자 점순이는 냅다 ‘나’의 어깨를 잡고 넘어진다. 그 바람에 같이 넘어진 주인공은 노란 동백꽃 속에서 알싸하고 향극한 그 내음새에 정신이 아찔함을 느낀다. 그때 점순이의 어머니가 점순이를 부르게 되며, 점순이는 산 아래로, ‘나’는 산위로 헤어지게 되며 글은 마무리가 된다.
이 단편 글을 중학생 때 처음 읽었다. 그때는 10페이지 남짓의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이고 깊게 느껴지는 점순이의 마음과 그걸 전혀 알아채지 못하는 주인공 사이의 갈등에 포커스가 저절로 맞춰졌었다. 좋아하는 감정을 봄철 감자로 표현한 점순이도, 감자를 단지 ‘먹을 것’으로 보기만 한 주인공도, 결국 그것이 분하여 복수심 반, 좋아하는 마음 반으로 자꾸 주인공을 괴롭힌 점순이도 이해가 되었다.
초반부터 점순이가 주인공을 좋아한다는 건 책에서 잘 보인다. 점순이가 주인공에게 준 봄철 감자에서 볼 수 있다. 그 감자는 ‘먹는 것’ 이라는 단순한 의미만 담겨져 있지 않았다. 점순이는 ‘좋다고 하는 봄철 감자’를 찌자 마자 바로 주인공에게 가져온다. 많이 만든 김에, 지나가는 김에 주는 물건은 누구나 줄 수 있는 거다. 그렇게 받은 물건은 필요성, 그리고 그 물건의 본연적 가치 외엔 딱히 의미가 없다. 하지만 특정 사람을 생각해서, 그 사람을 위해 준비한 티가 나는 것을 대놓고 주는건 의도가 다분하다. 준 사람의 마음이 담기게 된 물건은 더 이상 물건이 아니게 된다. 마음 한조각을 떼어 준 것이다.
의미가 담긴 물건을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의도를 못 알아챌 수 있다. 사람마다 표현 방법이 때문이다. 그런데 주인공이 나중에 수탉을 죽이기 전에 점순이를 그냥 이쁜 애라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결국 주인공도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그 와중에 자기 마음을 모르고 마음이 아찔하다고 느낀게 동백꽃의 향기롭고 알싸한 냄새 때문이라고 표현한 순수함 점에 빠져 중학생의 나는 설레하며 포커스를 맞췄던 것이다.
사실 중학생도 그리 멀지 않은 3년 전이였지만 시간이 흐르고 고등학생이 돼서 다시 읽은 동백꽃에는 점순이와 주인공의 서투름이 더 잘 보였다. 관계의 서투름보단 존재의 서투름이. 주인공과 점순이의 사랑 이야기가 결국 간접적인 종합 스토리긴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게 닭이야기다. 복수심이든 좋아하는 마음이든 결국 도발로든 점순이와 주인공은 애먼 닭들을, (그것도 집 닭을) 희생시켰다. 점순이는 주인공의 관심+복수심을 위해서 주인공은 이기기 위해서 분명히 고통스러울 닭들을 싸우도록 붙여놨다.
바보같은 수탉들은 붙여두면 싸우고 물어뜯는다. 계속해서, 한쪽이 죽을때까지 물어뜯는 개체들을 붙여놨다. 나중가서는 한 마리를 화가 난다고 죽여놓고 들뜬 마음에 그 사실을 잊는다. 보통 인간들은 가장 월등한 생명체가 자신들이라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같은 종족 안에서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서 더 연약해보인다면 차별하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게 다른 생명체면 오죽하겠는가. 직접적으로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은 안 해봤을 수 있어도 간접적으로는 누구나 은연중에 가지게 된다. 그런 생각들은 놀랍게도 단 한번도 좋은 결과를 낳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샌가 다시 자리 잡는다.
이번 쿼터에 읽고 있는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인간은 완벽을 위해서 순간순간 노력하는 것 뿐’이라는 문장과 <자유론>이라는 책에서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동안’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책들을 읽다가 이번주에 문득, 기독교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봤을 때,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고 말할 근거는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금방 찾아낼 수 있는 너무나도 쉬운 질문이지만 이번에 <동백꽃>을 읽으면서 인간이 세상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스러운 생각들로 인한 결핍들이 결국엔 평생 인간을 완벽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이 내 중심 혹은 인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건 사라지기 힘들고 그로 인해 우리는 점점 무던해지며 폭력적일 정도로 나 자신 외에는 무관심해진다.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노란 동백꽃처럼 순수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며 세상 바쁜 고1 중반 시기의 <동백꽃> 읽기는 마무리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