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세기 강론

창세기 강해(61), 창35:16~29

작성자김재용|작성시간26.06.05|조회수19 목록 댓글 0
16 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17 그가 난산할 즈음에 산파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 하매
18 그가 죽게 되어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19 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20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
21 이스라엘이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더라
22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때에 르우벤이 가서 그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하매 이스라엘이 이를 들었더라

16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은 야곱이 벧엘을 떠나 도중에서 아들 베냐민을 낳고 죽은 아내 라헬을 장사하고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치고 거기서 르우벤의 부정한 행실을 알게 되는 내용입니다.

야곱의 일행이 에브랏으로 향하던 중 라헬이 득남을 하는데 그는 베냐민입니다(16,17절). 심한 고생으로 베냐민을 얻은 라헬은 죽게 되는데, 그는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됩니다(18~20절).

 

라헬은 혼이 떠나면서 자신이 낳은 아들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노니’라 불렀지만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베냐민’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정하신 야곱의 열두 아들 즉 열두 지파를 채우시고자 마침내 라헬을 통해 아들을 낳게 하십니다(창30:24참조). 그리고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먼저 죽게 하십니다. 이에 야곱이 라헬의 묘비를 세웠는데 오늘날까지도 이 묘비가 라헬의 무덤이라 일컫습니다.

 

18절의 “그의 혼이 떠나려 할 때에”에서 ‘떠나다’는 원어로 ‘빼체트 בצאת’라고 하는데, 이는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위치를 옮기는 경우에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라헬의 혼이 떠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서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길을 떠나 에델 망대를 지나 장막을 쳤는데, 그곳에서 야곱이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 르우벤이 그의 서모 빌하와 통간하였고 이를 이스라엘이 듣습니다(21,22절). ‘에델 망대’는 ‘가축 떼의 망대’라는 뜻으로, 가축을 살피기 위해 들판 가운데 높이 쌓아 올린 탑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망대를 지난 후 장막을 쳤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그곳에 정착하여 거주하고자 말뚝을 박았음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장자인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한 것입니다. 적어도 여호와의 언약 자손의 집안에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을 택하실 때에 그가 에서보다 의롭거나 깨끗하여 택한 것이 아니라 리브가의 태중에 있을 때에 아무런 조건 없이 택하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혜로 야곱의 자손들을 ’택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여 무조건 불택자들보다 더 깨끗하고 선량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집안에서 일어나는 불결한 일들은, 야곱과 그의 자손들이 언약 자손으로 선택된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확증하여 줍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조상의 땅을 떠나 하란에 가서 큰 부자가 되어 조상의 땅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는 것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한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안에서 선택을 입은 성도가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도, 불신자들보다 더 선량하고 깨끗하며 의로워서 가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에서 야곱의 집안에서 일어난 불결한 사건을 적나라하게 소개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계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너무나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와 은혜의 풍성함을 더욱 드러내어 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야곱의 경우만이 아니라 여러 언약 자손들의 불결한 행동들을 숨기지 아니하고 적나라하게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였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참으로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는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나 많은 시련이 주어집니다. 하란을 떠나올 때 외삼촌 라반의 추격을 당한 일과, 형 에서와의 충돌이 있을 뻔했던 일과, 세겜에서 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두 아들이 세겜 성을 멸한 일과,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들을 낳고 죽은 일과,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는 수치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는 어렵고 수치스러운 일들을 통하여 많은 시련을 겪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겪은 시련을 통하여 스스로 험악한 세월 보냈음을 깨닫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뿐임을 고백하게 하십니다. 과거에는, 자신에게 이같은 시련이 왜 오느냐고 불평했겠지만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부인되며 겸손하게 되었고, 영적으로 단련되며 언약 백성의 울타리 안에 있음이 참된 복임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
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23절에서부터 29절까지의 말씀은 야곱이 두 명의 아내와 두 명의 종들에게서 낳은 아들들의 이름과, 이삭이 죽어 에서와 야곱으로 장사하게 하시는 섭리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의 열두 아들을 소개하는 것은(23~26절)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 확장되고 있음과, 새롭게 지어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이름에 합당하게 앞으로 복주시며 역사하실 것에 대한 언약입니다.

 

이어 야곱은 기럇아르바 근처 마므레로 가서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었고(27절), ‘마므레’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하기 위하여 헷 족속에게 값을 지불하고 산 땅으로(창23:17~18) 아브라함 역시 이곳에서 정착하여 살다가 죽어 장사됩니다(창25:9). 그때 이삭의 나이는 백팔십 세였습니다. 그는 나이가 많아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 장사합니다(28,29절).

 

이삭이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것은, 곧 야곱에게 언약 계승의 임무가 끝났음을 말하여 줍니다. 그의 임무가 끝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라에 대한 언약을 하시고 그 언약을 그의 아들 이삭에게 계승하게 하신 다음에 그로 죽어 장사하게 하시고 그리고 이삭으로 하여금 야곱에게 나라에 대한 언약을 계승하게 하신 다음에 죽어 장사하게 하신 것입니다.

 

결국 야곱에게 계승된 ‘나라 세움’의 언약은, 그의 자손 다윗에게까지 계승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고 다윗이 통치하게 되면서 모형적으로 모두 이루어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첫 아담에게 세우신 ‘나라 세움’(창1:28)에 대한 언약을 실체적이고 영적으로 완전하게 성취하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문에 소개된 야곱의 아들들의 명단은, 장차 기름부음 받으시는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 와 그의 나라가 임할 여명을 보여주는 언약의 내용인 것입니다.

 

또한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다’는 표현은 단순히 조상들에게로 돌아갔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여기서 ‘돌아가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싸프 אסף’는 ‘모이다’, ‘옮기다’. ‘제거하다’. ‘떠나가다’. ‘거두어 들이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데, 이 가운데 ‘모이다’라는 해석이 가장 적절합니다. 이는 먼저 간 조상들과 함께 모이는 상태를 가리키며, 궁극적으로 육체를 벗은 하나님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 곧 천국에서 새로운 몸으로 함께 모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성경이 조금 보이십니까?창세기를 공부하시면서 계시록의 흐름이 연결되십니까? 성경은 한 권이며 하나의 통일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의 내용이 하나의 유기적 구조로 정리되어 우리의 지성과 마음속에 자리 잡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의 내용으로 정리되어 삶 속에 주어질 때, 우리의 사고를 혼란스럽게 하던 문제들이 정리되고 마음속 깊이 갇혀 있던 응어리 또한 풀리게 됩니다. 더 나아가 생의 인생관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세계관까지 새롭게 변화됩니다. 앞으로 이러한 변화가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