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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를 걷는 삶

천로를 걷는 삶(6/8) - 죽음보다 더 중한 것

작성자김재용|작성시간26.06.08|조회수13 목록 댓글 0

천로를 걷는 삶(6/8)

-죽음보다 더 중한 것-

사람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다. 기원전 1500년경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창조주 하나님 없는 인생에 대하여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 라고 말했다.
그리고 기록자 미상인 히브리서에서는,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라고 말씀한다.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이 죽음은 인간이라면 모두 맞이하는데, 이에 태어남은 순서가 있어도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어떤 인간은 불사(不死)를 위한 약(藥)이라 하여 만들기도 했고 또한 종교를 만들었으나 하나님의 정하신 창조 섭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유한한 육체적인 죽음 앞에서는 겸손한 것 같다. 

’죽음‘
보통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야‘라고 여러 형편에서 자주 말을 하곤 한다. 정말 죽으면 끝나는 것일까? 묻는다면 이에 대한 답은 ’아니다‘이다.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으니 말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고 말씀하신다.

이는, 인간에게 육신의 죽음으로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베다니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집으로 가셨는데 나사로는 벌써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 때에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을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아쉬워할 때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하시며 그를 살리신다.

과거나 지금이나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그리스도)는, 저들을 세상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게 하였던 다윗 같은 자이다. 다윗왕은 당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초라하게 말구유에서 탄생하셨고 칼과 창을 가지지 않으셨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에 작은 나귀 새끼를 타신 자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정하고서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이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구약)대로 초라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신령한 말씀으로 오셨으며 죄인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영혼의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인도하시고자 낮은 자로 오셨는데 말이다. 
죄로 인해 죽은 자기 백성들을 살리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인간의 거죽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친히 달려 죽으신 것이다. 그가 바로 예수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가르치신다.
그리고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요6:63)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예수님 자신이 죄인된 인간의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끄시는 구주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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