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6/11)
-아비같이-
백 번을 말하고 천 번을 말해도 난 사실 아내와 자녀들에게 남편과 아비로서 참으로 부족한 자이다.
그렇지만 남편이며 아비인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나의 몸과 마음 모두를 댓가없이 그저 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교회 지도자들이 많다. 또한 이 나이쯤 되고보니 교회 밖에도 아는 사람들 중에서 높은 인품과 지위의 분들이 있게 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의 참 아픈 현실은, 아비같은 신앙적 인품을 가진 지도자나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대접받고 싶은 어른들이며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스승뿐인 것 같아서다.
흔히 교회 지도자들 말에, ’저 애, 내가 가르친 내 제자야~’ 하는 말을 자주 한다. 특히 그 아이가 성장해서 높은 지위 등을 취득했을 때에는 난리가 난다.
그렇다고 그 아이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까지 모두를 가르치지 않았고 잠시 얼마간을 거쳐갔을 뿐인데도 ‘내 제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아비는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아니하며 오직 자식만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한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 자신의 희생도 아픔도 억울함도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 자식만을 바라본다. 바울이 교회를 위해서 그랬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
주의 몸된 교회가 이러한 아비같은 어른과 스승을 찾기에 목마르다.
‘아비같은 자’가 머리되신 예수님께로부터 직분을 받은 일꾼들의 영적 자세이다. 나보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아비같은 영적 일꾼이 교회에 필요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낳았다’는 것은 곧 오랜 시간 인고의 고통을 견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직 주께로부터 받은 사명만을 생각했다는 의미이다.
스승이라고 하는 자는 자기를 드러내며 나팔을 불기를 좋아하나 아비같은 성도는 자신이 한 일을 감추고서 오직 사랑으로 자식만이 잘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주안에서의 모든 자들을 한 몸된 지체임을 깨닫고 먼저 희생하며 예수님을 먼저 생각하는 자이다.
아비같은 신앙의 지도자나 어른은 자기 십자가를 즐겨진다. 남 탓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오직 주께로부터 주어진 사명을 향해 달음박질한다. 이렇게 해도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주어지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오늘도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오직 아비의 심정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시기를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