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를 걷는 삶(6/17)
-하나님 경외-
사람이 하는 말이나 행동에는 자신의 성품이 나타난다. 사용하는 언행을 계속 듣고 보다보면 그 사람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상대가 나에게 이익을 주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거나 나보다 위치가 높으면 아무래도 조심을 한다. 말을 조심하며 행동 또한 조심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그 당시뿐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본 모습이 아니며 상대에게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는 데에는 그를 경외함이 함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전심도 없이 언행으로만 믿는 척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그것은 좋은 신앙심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나의 몸과 행동 그리고 나의 마음 모두를 함께 내어놓고서 언제 어디서나 믿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중심을 보시고 아시기에 그를 무엇으로도 속일 수가 없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예수님은 공생애 시작을 갈릴리 지역에서 하셨다. 거기서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그중 한 사람이 빌립이다.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이라는 자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라고 한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라고 하신다.
이에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하고 물을 때에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요1:48)고 하신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 어느 누구도 나의 마음과 중심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모두 아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임마누엘‘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으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다 하셨으며 보증으로 성령을 내 안에 보내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믿는 자로서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삶을 그 하나님 앞에서 영위(營爲)해 가는 것 또한 당연하다.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거나 내면에서 간직하지 않는다면 이는 좋은 믿음이 아니다. 살아계신하나님을, 교과서적으로 암기하여 질문할 때 답으로 대답하듯이 알고 있다면 이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지나간 세대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오는 모든 세대를 합하여도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만큼 더 호화롭게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그가 인생 말년에 고백하기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라고 한다. 여호와를 전심으로 경외하며 살아가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