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6/21)
-광야(2)-
광야는 흔히 말해서 허허벌판과 같다. 주변을 둘러 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휭한 곳이다.
그런데 이 광야를 선택하고 이 광야에서 삶을 이어온 자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에세네파‘이며 이들을 ’쿰란공동체‘라고 한다. 물론 이들만 광야에서 삶을 보낸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도시를 벗어나 스스로 광야로 들어왔으며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지탱하였는데, 이들 중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편리하며 편안한 도시를 벗어나 이처럼 척박하여 불편하며 또한 평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환경이 아닌 광야로 스스로 들어갔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소망‘ 때문이다. 저들은 다시 오시는 메시야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으로 세속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오직 다시 오실 메시야를 향하여 집중하고자 광야로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이들 쿰란 공동체의 제자들이 선택한 광야는 희망의 광야였던 것이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복음을 전파하고 회개의 세례를 외쳤던 곳이 광야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공생애 첫 시작을 알리시며 금식과 함께 시험을 받으신다.
인생이 걸어가는 길은 광야와 같다고 한다. 이것은 분명 좋지 않은 환경이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의 광야는 반전(反轉)을 가져다주는 곳이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사십 년을 걸었던 광야를 성경에서는 ’광야 교회‘라고 한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7:38)
비록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배반을 밥먹듯이 하였지만,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광야 교회‘라고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하신대로 이들을 반드시 보호하시며 인도하셔서 이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영적으로는 천국)으로 들이신다는, 성취하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십 세 이상 육십 세 이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어도 광야 교회는 다시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과 함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했다.
세상 모든 이들이 막고 또 방해를 하였지만 저들 언약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너자마자 기념비 돌 열두 개를 세워 두고서 가나안 땅에 들어선 것이다(수4:1~9).
광야를 걷는 광야 교회인 이스라엘을 향하여, 당시 모압 왕 발락에 의해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던 주술가 발람은 이렇게 예언한다.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민23:9) 즉 이스라엘은 세상의 어느 한 민족이 아닌, 구별된 하늘 백성이다는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은혜에 오늘 하루도 기쁨으로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