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의 한계는 어디일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이는 인간 안에 거하는 '죄'때문이다.
인간사에 많은 문제가 있으나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죄 문제이다.
그리고 인간이 지고 있는 가장 큰 짐 역시 죄짐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죄악을 갖고 태어난 인생은 죄짐을 지게 되며
이로 인한 인간의 스트레스는 결국 욕심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인간은 죄짐을 지고 있는 이상 욕심은 끝이 없다.
되지 않던 무언가의 하나를 얻게 되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잠시,
또 다시 더 욕심을 갖게 되면서 그리고 '하나 더'를 요구한다.
새 집을 사도 그에 대한 기쁨은 얼마가지 못한다.
그리곤 또다시 현재의 집보다 더 늘리기 위해 또 전쟁이 시작된다.
이는 곧 불쾌지수와 연관되기도 한다.
(비유로서 적합한지 모르지만) 베트남 축구를 예로 들면,
지금의 베트남 축구가 동남아는 물론이고 아시아에서 위상이 상승된데에는 박항서감독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그가 약 3년 여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에는 아시아가 아니고 동남아에서도 늘 패배의 그늘에 있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박감독에 의해 위상은 점점 올라갔고 동남아에선 최정상인데가 아시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계속 좋은 성적으로 유지하다 보니 언론이나 관계자들의 입에서 만족보다는
저들의 현실을 당연하듯이 받아들이며 연봉이니 더 높은 성적을 요구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좋아만 했고 실력은 형편이 없었던 나라가 말이다.
인간은 참 만족을 모른다.
그래서 참 감사도 없다.
그리고 참 순종도 없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욕심과 불만은 더 큰 화를 부른다.
채워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드러나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전쟁이다.
불만족으로 인하여 병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에는 각각의 분봉이 있다.
그래서 나 자신이 어떻게 한다하여 나의 분봉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를 적당하게 씌우셨고 주장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이시다.
만족하지 못하다는 것은 이미 그의 심령에 분이 있기 마련이고 화가 있음이다.
하지만 만족하는 사람은 그 안에 감사가 있고 순종함이 있다.
진정한 성도의 삶의 표적은 감사이다.
삶 자체가 감사가 되는 삶이 성도의 표적이다.
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한다.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
나 스스로 주입하며 되뇌이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대상이시요 감사의 본질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욕심으로 생을 살아간다.
이 욕심마저 없으면 아마도 살아갈 에너지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성도와 교회는 그것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성도와 교회는 신령한 욕구로 살아가지만
세상은 육체적 욕구로 살아가게 된다.
같은 생이 아니다.
성도는 버리며 살아가지만
세상은 악착같이 구하고 취하며 불리고 살아간다.
다른 생을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