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이란 무엇인가
1. 머리말
2. 표적의 어의
3. 표적의 근거
4. 표적의 주체
5. 표적의 특성
1) 대인표적의 특성
2) 대물표적의 특성
6. 표적의 목적
7. 표적의 절정
8. 결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마16:1~4)
1. 머리말
기독교 신앙은 절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기초를 둔다. 이것은 특히 개혁교회 신앙의 기본원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기본원리가 지켜지지 못할 때 기독교는 인간 스스로가 자기 나름대로 만들어 내는 우상종교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1세기를 넘어 자라온 한국교회는 일천만에 달하는 성도의 숫자나 신궁처럼 가다듬어 놓은 웅장한 건물들을 자랑할 수도 있겠으나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자세가 얼마나 성경적이냐? 하는 질문 앞에는 선뜻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상태가 비성경적으로 변질되어지기까지는 소위 신비주의 내지는 오순절운동 및 부흥운동 등을 통한 예언, 방언, 환상, 입신, 기적(그들이 말하는대로) 등 다양한 현상들이 그 원인이 되고 있으나, 그 중 하나가 ‘표적’에 대한 비성경적인 인식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기인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러한 기이한 현상들이 나타나야 신령하고 참된 교회라고 생각하는 부류가 많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표적을 잘못 인식한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성숙되지 못한 교회는 시행착오를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해 가려면 시행착오만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보다 성숙된 교회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처럼 이상한 표적을 구하거나 보려고 하지 말고 성경에서 말하는 표적이란 어떠한 것인가를 알아보려고 해야 한다.
2. 표적의 어의(語義)
원래 ‘표적’이란 히브리어로 ‘오트’라고 하며 헬라어로는 ‘세메이온’이라고 한다. 구약에서나 신약에서 수십번 기록되었으나 신약에서는 ‘세메이온’이 ‘이적’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기사’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테라스’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우리 말로 번역된 ‘표적’ ‘이적’ ‘기사’라는 용어에 대한 분명한 개념 정립이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표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계시 사역의 방편들, 즉 예언, 방언, 환상, 꿈, 음성 등과 같은 것들 중의 하나이다. ‘표적’ 또는 ‘이적’과 ‘기사’라는 말이 때로는 비슷한 상황에서 사용되는 수가 있으나 그 내용상으로는 각각 다른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즉 성경에 나타나는 ‘표적’이란 말은 나타나는 사건의 목적과 의미를 표현하는 용어이며, ‘이적’이란 말은 일어나는 사건의 성격을 묘사하여 표현하는 용어이며, ‘기사’라는 말은 일어나는 사건의 현상을 주로 표현해 주는 용어들이다.
‘세메이온’이란 말을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적’이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이적이라고 번역되어 기록되어진 것들은 모두 ‘표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표적’이 꼭 ‘이적’적 사건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여러 가지 표적(이적)적 사건들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표적(이적)의 성격이나 현상을 드러내어 보여 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증해 주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말 성경에서 ‘이적’보다는 ‘표적’이라고 번역한 것이 합당한 번역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예수님 출생 당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의 모습이 구주로 나신 그리스도 즉 구약이 예언한 메시야의 ‘표적’이라고 했다(눅2:11-12). 이 ‘표적’은 ‘이적’적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표적’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예수님의 모습 역시 구약에 예언된 왕권을 가지신 메시야로서의 예수에 대한 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적’이라는 말보다는 ‘표적’이라는 말이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과 잘 어울리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본 논고에서는 신약성경에서 이적이라고 번역된 기적적인 사건들로서의 표적 즉 이적적 표적에 대해서만 언급하려 한다.
3. 표적의 근거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표적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에 근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를 보내 주실 것을 예언해 주셨다. 그리고 보내 주실 메시야를 확실하게 알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메시야의 표적까지 보여 주실 것을 예언하셨다(사7:14,사53:4).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자기 자신이 메시야라고 증거하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예수님께 청한 사실이 있다(마16:1~4). 그것은 메시야의 표적이 없이는 아무도 메시야를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메시야의 표적은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에 근거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표적을 행하신 것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여러 곳에서 밝혀준다(마8:17). 이사야 선지자는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 하리니....’(사35:5~6) 라고 주전 700여년에 예언한 바가 있다.
이와 같은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이 예수께서 친히 행하신 ‘이적’적 사건을 통해 성취되었고 그것이 ‘표적’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진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참 선지자로 오셔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들을 근거한 표적적 사건들을 통하여 자신을 참 메시야로 계시하시는 사역을 하신 것이다.
4. 표적의 주체
표적으로서의 이적은 누가 행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혹자들은 소위 성령충만을 받은 권능있는 자(그들의 말대로)가 표적으로서의 이적을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신비주의자들은 마가복음 16장 14절 이하에 기록된 말씀가운데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했다하여 누구나 믿기만 하면 표적을 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개혁교회 지도자들 중 소위 부흥사라고 자처하는 인사들까지라도 마치 표적을 행할 수 있다고 과장하여 선전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살후2:9~12).
그러나 표적의 행동 주체는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다는 사실이다. 신약성경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의 내용들이 있고 사도행전과 기타 서신서에는 사도들이 행한 표적들이 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도들이 행한 표적의 행동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도들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메시야 권한을 직계 사도들에게 필요에 따라 부여해 줌으로 메시야 권한에 종속된 사도권을 임시로 행사한 것 뿐이다(고후12:12,행14:3).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마가복음 16장 14절 이하의 내용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열한 사도에게 사도권을 부여해 주시는 장면이다. 즉, 예수께서 부활을 믿지 않는 열한 제자에게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복음을 전하라 명하시면서 믿는 자들(열한 제자)에게는 표적이 따르게 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승천하셨다. 그후 제자들이 복음을 증거할 때에 주님의 약속대로 표적이 나타났다(막16:14~20).
그러므로 사도들이 표적을 행한 것은 사도들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로부터 사도권을 부여받아 행한 것이기 때문에 사도들이 표적의 주체는 아닌 것이다. 그래서 바울도 사역 후기에는 자신의 질병은 물론(고후12:7~9), 자신의 수제자 디모데의 병도 낫게 하는 표적을 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딤전5:23).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표적의 근본 주체임을 알 수 있다(요3:1~2).
5, 표적의 특성
신약에 나타나는 표적으로서 기적들은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표적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그 하나는 보통 표적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표적인데 이와 같은 표적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1) 대인(對人) 표적의 특성
대인 표적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주로 인간을 대상으로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내어 쫓거나 불구자를 성하게 하는 표적 등을 반복적으로 행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 외에도 대인 표적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있는데, 이것은 은사적인 기적과 표적적인 기적을 구분하는데 매우 유익한 특성들이다.
그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먼저는 표적을 나타내는데 대상이 되는 병자나 죽은자나 귀신들린 자들의 신앙과 관계없이 나타나는 점이며(행3:1~8), 다음은 찾아온 모든 병자가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음을 얻는 점이며(마8:16~18), 그 다음은 병자들이 어떠한 험하고 심한 환자라도 완전하게 나음을 받았다는 점이며(마15:29~31), 마지막으로는 예수께서 ‘표적’을 나타내실 때 즉시 고침을 받았다는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마8:2~3,막1:40~42).
이와 같이 대인 표적은 신앙과 관계없이 모든 병자가 완전하게 즉시 다 고침을 받는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님과 사도시대에 행해진 표적적 기적의 특성과 사도시대 후에 행해지는 신유의 은사적인 기적의 특성은 엄연히 구분된다.
왜냐하면 은사적 기적의 특성은 모든 병자가 반드시 믿을 때 점진적으로, 불완전하게, 부분적으로 고침을 받기 때문이다. 은사적인 기적은 표적적 기적과는 달리 현재 교회시대에도 계속 교회의 유익을 위해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은사적인 기적은 주로 신유의 은사, 즉 질병을 치료하는 역사로 나타나는데 표적적인 기적과 같이 병자의 신앙과 관계없이 모든 병자가 완전하게 즉시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병자만이 그것도 다가 아니고 더러 점진적으로 나음을 얻게 하는 성령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은사와 표적은 반드시 구분 되어져야 한다.
2) 대물(對物) 표적의 특성
대물 표적은 예수님만이 주로 인간이 아닌 피조 만물을 상대로 단회적으로 나타내시는 표적들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표적, 바람과 바다를 잠잠케 하는 표적, 몇 개의 떡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수천명을 먹이는 표적,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마르게 하는 표적, 물위로 걸으시는 표적 등을 말한다.
이와 같은 특별한 표적의 특성은 먼저 예수님만이 행하실 수 있다는 점, 다음은 사람이 아닌 만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그 다음은 반복이 아닌 단회적으로 나타내시는 점 등으로 요약하여 정리된다. 따라서 대인 표적의 특성과는 그 내용을 달리 함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표적의 특성은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 시대에만 국한해서 사람과 만물을 대상으로 반복 내지는 단회적으로 나타내셨다는 점이다.
6. 표적의 목적
여기에서는 예수께서 ‘표적’을 나타내신 근본 목적이 무엇이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표적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예수님 자신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그리스도 – 기름부음 받은 자) 이심을 증거 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표적이라는 말 자체가 사건의 목적을 담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증표로 보여주는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표적은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혹자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들에게 나타내신 표적적 사건이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심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단순한 신적 능력 과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혹자들은 예수님께서 굶주리고 병들고 불구가 된 불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선을 베푸시기 위해 표적을 행하셨다고 주장하며 구제사업이 기독교의 전부인양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 뿐만 아니라 더러의 부흥사로 자처하는 자들 가운데는 표적이 나타난다고 하는 허위 선전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특별히 자기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하면서, 자기 과시의 도구로 삼는 자들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표적은 어디까지나 구약에서 약속된 메시야가 예수 자신임을 증거하시는 것이 그 근본적인 목적이 되는 것이다.
사도들이 행한 표적도 역시 같은 목적으로 나타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로부터 사도권을 부여 받아 표적을 행한 것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예수가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 시대에 행하신 기사와 이적들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표적으로서의 사건임이 분명하다.
7. 표적의 절정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에 행해진 수많은 표적들 가운데 최고의 절정을 이루는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적 보여주기를 요청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니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마12:39). 이는 곧 예수께서 무덤에 3일동안 계시다가 부활하실 사건을 예견하시고 하신 말씀이시다.
따라서 기독교의 최대의 ‘표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다. 구약의 예언대로 죽으셨다가 구약의 예언대로 다시 부활하신 표적만큼 예수가 구약에 약속된 메시야라는 확실한 표적은 있을 수가 없다(고전15:3~8).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 신비주의자나 소위 오순절운동 및 부흥운동을 시도하는 자들에게서 더러 나타나는 병낫는 역사들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 당시 즉 신약 계시 시대에 나타난 ‘이적’적 사건들은 ‘표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오늘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병이 더러 낫는 역사는 교회중에 주신 하나님의 신유의 은사로서 나타나는 사역임을 구분해서 이해하여야 하는 것이다.
신유역사는 어느 특정인들의 독점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표적’은 메시야(그리스도)의 독점적 사역임을 중시해야 한다. 물론 메시야의 권한을 부여받은 사도들도 일시적으로 포함한다. 따라서 기독교에 있어서 표적의 최대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건임이 분명하다.
8. 결론
결론적으로 표적이란 예수께서 자신이 구약의 약속된 메시야임을 증거하기 위한 기적적 사건을 말한다. 그런데 표적은 초자연적 기적일 수는 있으나 초자연적 역사가 모든 표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표적은 예수님과 메시야권을 부여받은 사도시대, 즉 신약 계시 시대에 있었던 계시방편으로서의 표적들이었으나 신약계시가 완성된 오늘에는 표적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 더러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는 일이 있으나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신약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신유의 은사로 나타나는 일들이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방 종교나 무속 종교에서도 치병의 역사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치병의 역사는 생리요법, 심리요법, 단식요법, 약물요법 등을 통해서도 놀라운 치병의 역사가 얼마든지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다수의 자칭 ‘능력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분들의 무분별한 행동은 마치 자기 자신이 예수님이나 사도들처럼 ‘표적’을 행하는 것같이 자신을 부각시켜 어린 성도를 유혹하며 교회를 소란케 하는 일이 너무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다. 만일 어느 시대에 어느 누가 예수께서 행한 것과 같이 같은 성질의 ‘표적’을 행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분명히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행하는 자인 것이다(출7:11~12).
예수님께서 심판 날에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고 권능을 행한 자들을 향해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마7:22~23). 여기서 하나 더 알 수 잇는 것은 거짓 영들의 미혹의 도구가 곧 ‘기적’적인 사건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둔다(살후2:8~10).
사도 요한도 그가 밧모섬에서 받은 장차 될 일에 대하여 말하면서 짐승권세가 큰 이적으로서 모든 사람들을 미혹하는 환상을 말해 주고 있다(계13:13~14).
그러므로 기독교의 바른 신앙은 기적에 그 바탕을 두어서는 절대 안되며 어디까지나 표적 등의 방편을 통하여 계시해 주신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 성경에 그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성경신학연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