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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hief's Diary : 대재앙 -
그리고 거대한 빛이 일었다. 빛의 중심에 있는 것은, 루시프가 아니라 시은이었다.
“아, 안시은!”
이라는 빛 속의 그를 바라보았다. 시은의 붉은 눈동자가 모든 힘을 끌어들여 이라의 광구를 막아내고 있었다. 루시프는 더더욱 짙은 미소를 그릴 뿐이었다.
“네가 왜……!” 눈 앞을 막아선 시은에게 소리친 이라는 그러나 더 이상 시은을 빛 속에 세워둘 수 없음을 깨닫고 서둘러 빛의 구를 소멸시켰다. 각성했다지만 광구는 아직 시은이 견디기에 버거운 존재였으니까.
겨우내 빛의 구가 걷히자 시은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라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도대체 왜 무모한 짓을 한 거야! 네가 죽으면……!” “내가 죽으면 뭐? 시란처럼 한낱 일회용품 신세가 될 뿐이겠지?”
“……!” 이라는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루시프를 잡기 위해 그의 뒤를 돌아보았지만, 어느새 루시프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어둠 속으로 잠겨들어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된 뒤였다. 시은은 이라를 향해 말을 이었다.
“도대체 왜 시란을 죽인 거지?” “……나로선 어쩔 수 없었어. 그 애는 루시프도 죽이지 못한 날 한 번 죽음에 몰아넣었다고.”
“시란이 나한테 있어 무언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 나도 알아. 너에게 있어 시란은 단순한 남매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그래. 그렇지. 잘 알고 있군. 그럼 이제 말해 보실까?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지, 지금까지 시란과 내가 적이 되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너는 왜 나에게 접근하였는지.”
이라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엇이 그토록 복잡하게 회전하는지 시은으로선 알 수 없었다. 대신 그녀가 무슨 말을 내뱉을지 마냥 기다릴 뿐이었다. 어떤 말을 할지, 얼마나 시은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을지, 시란의 죽음이 보상될 수 있을지.
한참을 기다린 끝에 이라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태초에 우리, 아니, 너희들이 서 있는 이 지구를 만들기 위해 나는 땅과 하늘과 물과 불이란 것을 만들었고 빛의 강약을 통해 어두움과 밝음이라는 것을 만들었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그려 넣기 시작했지. 하늘을 나는 새, 땅을 가득 메운 풀과 나무, 바닷속 산호초와 물고기들, 그리고 이 세계를 순환시켜 줄 수많은 곤충과 동물들. 그 뒤내가 제일 먼저 생각했던 것은 강력한 육체를 가진 종족이었어. 튼튼한 두 다리와 강한 힘으로 모든 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종족의 탄생이 이 지구에 있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생각했던 거야. 심혈을 기울여 너희가 말하는 공룡을 겨우내 탄생시킨 것도 그 즈음이지.”
이라는 잠시 시은의 반응을 살폈다. 각성의 징표이자, 아직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증거인 저 붉은 눈동자. 이라는 시은의 눈동자로부터 어떤 생각도 읽어낼 수 없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처음엔 좋았어. 그들은 풀과 나무, 동물들과 곤충, 물고기를 소비하면서도 그것을 자연에 되돌릴 줄을 알았어. 별다른 무리 없이 자연에 녹아들어갔고. 그렇게 난 내 실험에 성공한 줄 알았어. 정말 성공적으로 첫 실험을 완성시킨 줄 알았어.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지.” “?”
“개체수가 늘어난 그들을 내 시스템은 견뎌 주지 못했어. 먹이를 앞에 두고 서로 다투기를 일삼았고, 나중에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시대가 오고 말았지. 막고 싶었어. 비록 서로 생김새는 다르지만 같은 공룡에서 출발한 종족이니까. 그러나 개체 수를 줄이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어. 더욱이 공룡의 개체 수를 줄인다고 해서 그들이 다시 번식하지 않으라는 법은 없었지. 결국 이게 끝이라 생각한 난 대재앙을 일으켰어.” “그러니까 너한테 중요한 피조물은 아무것도 없는…….”
“내 말 끝까지 들어!”
이라가 소리치자 시은은 슬쩍 입을 다물었다. 말도 아직 끝나지 아니했거니와 이라의 살기 어린 눈빛이 시은 자신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라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 말을 이었다.
“대재앙과 그 후 이어진 빙하기는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갔어. 겨우내 지구는 내가 처음 지구를 창조했을 때와 비슷한 모양이 되었지. 이번에 나는 힘은 약해도 지능은 뛰어난 새로운 종족을 만들기로 결심했어. 그리고 좀 더 치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기 시작했지. 동물 및 물고기, 새들의 종을 인간 여럿이면 잡아 섭취할 수 있게끔 만들고, 그들이 생존할 주식으로 특정 식물을 골라 쌀이나 밀 같은 것을 생산하게 했어. 대지도 그들이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작고 세밀하게 변했고. 물론 그 저변엔 인간이 나에 대해 알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기에 지능을 만들 때는 특히 심혈을 기울였지.
공룡과 다른 말랑말랑한 살에 가지런한 치아, 작은 몸을 지닌 인간은 세상에 나면서부터 나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어. 공룡의 발바닥만한 집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채취하던 그들은 후에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작물을 키웠어. 인간들의 지능이 크게 발달할 때쯤엔 ‘구세주’라 일컬어지는 특별한 개체를 만들어 인간만이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란 믿음을 주었고, 한편으로 인간들의 사후 정신, 이른바 ‘영혼’을 다스릴 존재들을 탄생시켰지. 그것이 저 가브리엘과 미카엘이야. 뭐 원래는 루시퍼와 벨리알도 내 자손이었지만…….” 그녀가 잠시 말을 끊자 시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이라가 다시 말을 이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인간들의 ‘중세시대’까지는 그래도 성공적이었어. 그들은 자연에서 채취한 것, 얻은 것들을 활용하고 가공해 그들만의 삶을 구가했지. 심지어는 나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해내기도 했어. 난 그들이 단순한 번데기로부터 매끈매끈한 실크를 짜낼 줄은 몰랐거든. 또 풍차라는 것도 내 혀를 내두르게 했지. 구름을 옮기는 바람 따위를 사용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근대에 접어들면서부터 그들은 무언가 하나씩 어긋나기 시작했어. 인간들끼리의 상하관계……. 뭐 중세 시대에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이 인간의 정신을 꽉 채워 버렸고, 인간들끼리의 교류물자인 ‘돈’을 얻기 위해 그들은 별의별 수단을 동원했어. 그것뿐이라면 괜찮았을지도 몰라. 문제는 그들이 함께 하던 내 자연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단 점이지.
내가 바라던 것은 나의 세계와 공존하는 존재들이었어. 숲 사이사이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인간들의 마을. 내가 그들의 발전을 기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 발전이 모든 걸 파괴하게 된다면, 차라리 그 발전은 없는 것이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세계대전 직후. 인간들끼리의 전쟁에 자연마저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지고 난 뒤야. 이어진 냉전시대와, 산업혁명 이후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화 혁명은 내가 대재앙을 일으킬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어. 인간 그 누구도 이 별이 이제 한계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한 개체가 공룡보다 더 많은 자연을 갖게 되었으니까, 한계는 사실 진작부터 온 셈이지. 더 웃긴 것은, 이런 인간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있어야 할 자연의 혜택조차 가지지 못한 인가도 많다는 점이야. 세계적인 부자 한 사람이 아프리카 난민의 절반가량을 구제할 수 있다면, 이게 과연 모두가 바라던 결말일까?
그래서 대재앙을 준비한 거야. 사실 벨리알은 예외였지만 미카엘을 지상으로 내려 보낸 건 너희 둘을 태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었고, 난 너희들이 대재앙의 한 축을 담당해 주길 바랐지. 예기치 않게 나타난 루시프의 존재가 시란을 앗아갔지만, 아직 나에겐 네가 남아 있고, 난 네가 내 대재앙을 도와줄 거라 믿어. 한마디로 난 내 두번째 실험도 그만두려 해. 오히려 이 별에는 아무것도 세워놓지 않는 게 좋을지도 몰라서 말야. 그런 나를, 넌 이해해 줄 수 있겠지?”
모든 말을 마치고 이라가 시은을 바라보자 시은은 잠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대재앙. 이른바 인간의 멸종을 통해 세계의 질서를 재정립하는 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간들은 뭐가 되는 걸까? 파멸을 위해 달려왔을 뿐인가?
“아, 걱정하지 마. 인간이 사라지면 그들이 믿었던 천사도, 악마도, 사후세계도 모두 사라지는 거니까. 아무것도 없게 된다고 생각하면 돼.”
지금 그런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잖아. 한 마디를 해 주고 싶었지만 그의 생각은 더 복잡하게 엉켜 갔다. 이라의 말대로 모든 존재가 단지 사라지는 것뿐이라면, 그 사라지는 순간을 위해 달려온 자들은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건가? 그것이 이 별을 지키는 법이고, 이라 나름의 공존을 이루는 방법이라면, 그리고 신이 바라는 것이라면 더 이상 인간이 발언을 할 자리는 없어지는 셈이다만, 파괴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정말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이라 자신은 이 사실을 기억하고 괴로워할지도. 결국 이라 스스로가 자신을 고통 속에 몰아넣는…….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나는 인간이다. 미카엘이라는 아버지와 벨리알이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괴생명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인간이다. 이라가 몰살시키려는 대상인 인간. 동시에, 이라라는 이름의 신을 알고 있고, 그녀를 마주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신의 의지와 함께 고이 소멸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들의 의지를 대신해 신에게 반항할 것인가.
……오래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런 복잡하고 진절머리 나는 이야기는 오래 끌수록, 깊이 생각할수록 어려워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하자. 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이다.
“……모르겠어.”
겨우내 시은이 한 마디를 내뱉자 이라가 고개를 들었다. 시은은 차갑게 식었을 시란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결의를 다졌다. 인간들 모두가 이런 참혹함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것은 있어선 안 되고, 생각해서도 안 되는 금기이다. 신이 생각하는 대재앙이란 것은 인간에겐 있어서도, 생각해서도 안 되는 끔찍한 결말이다.
“난 아무래도, 네 생각에 동조할 수 없을 것 같아.”
“……뭐?”
“생각해 봐. 그간 살아오며 짧은 시간에 이만한 발전을 이룬 인간들이야. 인간들의 세계는 인간들의 것이고. 그것이 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언제나 망가질 수 있는 거라면, 그간 이루어 온 인간들의 것은 뭐가 되는 건데?”
“…….”
“더군다나 인간 스스로도 이 현실을 극복하려 하고 있어. 물론 전체적인 세계는 네가 말한 방향으로 흐를지도 모르지만, 일부 인간은 네가 생각하는 조화를 위해 모든 걸 바치고 있단 말이야. 이들의 삶을 어떻게 보상할 건데? 같은 인간이니까 모조리 죽이면 끝이야?”
“…….”
“결과적으로, 나도 인간이야. 천사와 타천사 사이에서 태어났다지만 지금까지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행동방식을 습득하며 살아온 인간이라고. 신이 인간을 파괴하겠다는 데 그에 찬성할 인간이 몇이나 되겠어? 성경처럼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부유하게 사는 것도 아닌, 단순한 파괴 일색인 재앙은 내 쪽에서 거부하겠어.”
이윽고 시은이 말을 마치자 이라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시은도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의 얼굴색은,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할 말 다 하고 판결을 기다리는 원고 같은 표정이었다. 내심 여러 번민이 교차하는 것까진 어쩔 수 없었지만, 그것은 이라가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질 일이었다. 어차피, 이라의 말이 떨어지기 전가지 시은은 그냥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
겨우내 이라가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 시은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결국엔 이해해 줄 거라 믿었는데, 역시 넌 아직, 인간이라는 말이구나.”
이윽고 고개를 드는 이라. 순간 시은은 온 몸이 굳어 버리는 것을 느꼈다. 붉은 눈동자, 가녀린 눈물 한 방울.
“그간 같이 지내면서 즐거웠는데, 조금은 이해해 줄 줄 알았는데…….”
“……이라야?”
“그래, 뭐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으니까. 알아줄 거라 생각하면 돌아서고, 친해졌다 생각하면 죽고……. 이젠 익숙해졌으니까 괜찮을 거야.” “이라,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보…….”
“한번만 더 배신당하는 거야. 그리고 모두를 죽여야지. 그것이 나. 그것이 바로 나!” 파핫
강렬한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그것이 이라의 몸을 삼키자 대지의 모든 것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풀은 울음을 터뜨렸고, 건물은 바깥에서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밑에서 모여든 특공대원들 사이에서도 고함이 울려 퍼졌다.
시은은 아뜩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빛의 기둥을 바라보았다.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몸은 움직이지 못했다. 그것은 황홀한, 그러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빛이었다. 차마 다가설 수 없는 성스러움이었다. 그저 멀뚱히 올려다보는 것 외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안시은.” 애타게 빛을 바라보던 시은은 이라의 한 마디에 우뚝 멈춰 섰다. 이윽고 그녀의 말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고마웠어. 앞으로도 고마워할게. 과거 지구를 지배했던 인간이란 종족 중 그나마 나와 가까웠던, 그리고 누구도 믿지 말 것을 가르쳐 준 사람이라고.”
“……!”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예전에 너와 달리기를 했을 때, 이 세계가 사라지면 어쩔 거냐는 내 물음에 넌 평상시처럼 충실한 삶을 살 거라 그랬지? 나에게, 너의 충실한 삶을 보여줘. 인간으로서, 아직 내가 네가 생각하는 이라로 존재하는 마지막 부탁이야.
제발……!”
간절한 염원과 함께 시은의 앞으로 빛이 들이닥쳤다. 멀어져 가는 시선 속에서, 이라는,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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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주는 리포트에 밀려서[..]
이번주는 소설에 밀리고[..]
대강 그렇게 해서 이제 마지막 편입니다.
자세한 후기는 다음 에필로그를 기대해 주세요'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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