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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병 편지

877기 1대대 041108 용지훈

작성자박기현|작성시간26.04.10|조회수104 목록 댓글 1

용지훈 훈련병, 잘 지내고 있는가? ++ 존경하는 이찬영 선배님께도,,,

 

오늘 무려 아침 천식을 먹고 관정에 공부하러 왔는데, 꽤 잠이 오고 힘들 때마다 니가 고생하고 있는 걸 생각해서 '그래도 너거보단 내가 편하지,,'라는 생각으로 버틸 수 있다. 진주에서의 생활은 어떨지 궁금하네.

 

부탁한 성찰문을 보낸다. 정동욱 교수님의 교육정책세미나 시간에 작성한 성찰문 중, 개인적으로 고민해볼거리가 많다고 생각하는 3개를 보낸다. 참고문헌은 수료하고 따로 찾아볼 수 있도록. 내 글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담아서 편지를 써주면 너무 기쁠 것 같다. 이 성찰문이 기훈단 생활 속 굳어버린 너의 지성과 이성을 다시 일깨워주길 바란다.

 

(2주차 RP) 교육정책의 정치적 중립성

  우리 교육은 「헌법」 제31조를 통해 정치적 중립을 보장받고 있다. 그러나 헌법적 보호와 별개로 우리 교육이 정치적 중립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의 교육정책행위자로서 대통령은 교육정책의 의제 설정 및 결정과정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통령의 선거 공약 사안은 빠르게 정책화되고 추진된다(이종재 외, 2016: 140). 또한 교육법정주의에 따라 교육제도와 그 운영을 위한 기본정책은 법률로 정해야 하나, 국회의 입법 과정은 고도의 정치적 과정이므로 교육과 정치는 중립적 관계가 되기 어렵다(이종재 외, 2016: 445). 이러한 점에서 김용일(1995)은 교육에서 ‘비정치의 신화’를 허구적 신념체계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는 2주차 수업 중 정권별 교육정책의 공공가치를 비교하는 Workshop에서, 보수당계 정권과 민주당계 정권이 각 정당이 추구하는 노선에 따라 효율성과 형평성의 무게중심이 달라짐을 통해서도 확인하였다.

  그러나, 2주차 수업에서 살펴본 사교육과 교육과정 정책은 정권에 구애받지 않는 초당파적 성격을 띄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컨대, 사교육의 시장성과 학업성취도 향상 효과를 고려한다면, 작은 정부, 수월성 교육 및 능력주의를 지향하는 보수당계 정권은 사교육에 대한 정부 규제를 지양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사교육 수요의 공교육 체제 내 흡수’ 정책 기조를 계승하였으며, 박근혜 정부 또한 공교육 정상화를 추진하였다(박주호, 2025: 220-223). 한편 박근혜 정부는 경험 중심 교육과정의 성격을 띄는 자유학기제를 도입하였으며, 이는 문재인 정부가 자유학년제를 시행하며 확대된다(박주호, 2025: 65-68). 또한 문재인 정부는 수요자 중심적 고교학점제를 설계하였는데,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논리로 인한 학교 내 교육과정의 서열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였다(이현, 2018).

  이처럼 정파적 이해관계를 넘어 교육정책이 입안 또는 연속되는 양태는 교육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향한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외국어고·자율형 사립고 폐지 정책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백지화되는 것처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현실 정치의 맥락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우리 교육정책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목표인 까닭은 교육의 복잡성과 전문성에 있다. 경쟁적 사교육 참여로 인한 사교육비 증대는 정권을 초월한 정책 문제이며, 자유학기제의 정책 취지로서 중학생의 학업부담 경감과 내실 있는 진로교육은 정권을 초월한 정책 목표이다. 요컨대,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복잡한 배경이 얽혀 등장하는 쟁점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진단하고, 그에 맞는 정책을 기획, 집행, 환류하는 전문적 과정은 당파의 논리를 초월할 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본고는 다음과 같은 토론 질문을 남긴다. “과학적, 실증적 교육정책 지향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가?”

 

(3주차 RP)학교선택제의 경쟁구조에 대한 일고찰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은 획일화된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교육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해 2008년부터 시작되었다(문화체육관광부, 2013). 고등학교 단계 학교선택제는 1995년 교육개혁위원회가 발표한 5·31 교육개혁이 표방하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 속에 탄생하였으며(김재웅, 2015), 수요자의 선택권을 강화하고자 설립·지정된 특수목적 고등학교,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등은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학교선택제의 이론적 근거는 시장경쟁론과 학부모 교육권론의 두 가지가 있다(박주호, 2025). 시장경쟁론이란 예비 고교생이 자동 공급되는 공급독점 상황을 타파함으로써 학교 간 경쟁을 유도해 학교교육의 효과를 증진시키는 것이며, 학부모 교육권론은 가족이 추구하는 전통이나 가치를 학생이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학교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박주호, 2025).

  그러나, 교육부는 특목고, 자사고가 당초 설립 취지로부터 이탈해 입시 위주 교육에 치중하며 고교서열화 및 사교육비 확대를 유발하였음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2019년 고교유형 단순화 정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교육부, 2019). 비록 문재인 정부의 고교 유형 단순화 정책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백지화되었긴 하나, 학교선택제 도입을 위해 지정된 특목고·자사고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특히 자사고 확대 정책 이후 일반고의 긍정적 또래효과(peer effect) 크기가 약화되었다는 연구 결과(최영진, 정동욱, 2025)는 시장경쟁론과 학부모 교육권의 두 측면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음을 시사한다. 시장의 원리를 도입한다면 자사고와 같은 매력적 공급자가 등장하였을 때 경쟁효과(competitive effect)가 발생하여 공급 시장 전체의 질이 향상되어야 한다(Jabbar et al., 2022). 즉, 학교 간 경쟁을 통해 학생들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학교의 교육효과까지 향상되어야 함에도, 특목고·자사고가 일반고의 긍정적 또래효과를 흡수할 뿐, 교육구 내 일반고의 교육적 효과를 증가시키지 못하는 불공정한 시장 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나아가, 특목고·자사고의 선발효과는 일반고에 남겨진 학생들(left behind)의 긍정적 또래효과를 감소시키므로 남겨진 학생들의 학부모 교육권 또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Jabbar et al., 2022). 요컨대, 한국의 학교선택제는 공정한 경쟁 규칙의 부재로 인해 시장경쟁론과 학부모 교육권론의 두 가지 취지를 모두 달성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선택제가 지속 가능한 정책이 되기 위해선 공정한 공급 경쟁이 필요하다. 단위학교 책임경영제(SBM), 초빙교사제 등은 그러한 공정한 경쟁의 필요조건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며, 특히 공립학교 교장에게 뛰어난 학교에 맞설 수 있는 충분한 자율권과 그것을 발휘할 유인이 주어져야만 경쟁이 성립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본고는 다음과 같은 토론 질문을 남긴다. “공정한 공급 경쟁을 위한 필요조건은 무엇이 있는가?”

 

(5주차 RP)교육의 본질은 사다리가 아니다

  대학입학 정책은 국민이 선호하는 사회적 가치로서 고등교육기회 배분에 관한 원칙적 규범으로서 기능한다(박주호, 2025). 그러므로 대학입학 정책은 교육기회균등과 공정성 개념에 대해 심도깊은 논의를 필요로 하며, 이러한 논의는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포함한다. 이때, 대학의 사회적 배려자 전형 10% 이상 선발, 소득기반 대학입학정원 쿼터제 등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대학입시를 대학 자율에 맡길 때 불평등한 계층구조가 심화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즉, 사다리 담론은 계층 구조의 불평등에서 출발해, 우리 사회에 고착화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대학교육의 책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 입시에서 소수자에 대한 우대 조치를 주장하는 입장은 크게 두 가지 한계를 내포한다. 첫째, 계층 불평등의 존속을 전제한 채 논증을 시작함으로써 무기력한 약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이 사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의 전제는 결국 계층 간의 불평등이 계속 존속한다는 것이며, 가난한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는 소득기반 쿼터제 역시 불평등한 계층 구조 자체를 덮어놓고 이를 유지한 채 소수에게만 상승의 기회를 주는 일시처방적 효과만 낼 위험이 있다. 특히 가난하더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경쟁하는 교육과 그 결과가 공정하다는 믿음에 근거하며, 이는 오히려 교육이 만들어 내는 결과적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모순을 야기한다. 둘째, 사다리 담론은 교육의 본질을 ‘사다리 그 자체’에 국한시킨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교육의 한 가지 기능이 될 수 있을지언정, 교육의 본질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교육의 본질로서 미성숙한 인간의 학문을 향한 입문(Peters, 1964), 사회화를 통한 인류 유산의 보존(Durkheim, 1922), 더 나은 인간 존재를 향한 존재론적 지향(조용환, 2021) 등이 논의될 수 있지만, 어떠한 논의도 교육의 본질을 사다리 그 자체로 한정시키지 않았다. 이는 교육이 이데올로기와 계급 갈등을 초월한 본질적 가치를 내포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으며, 기능으로서 사다리의 역할 그 이상이 바로 교육이 달성해야 할 목표인 것이다. 요컨대, 대학 입시에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계층의 불평등을 전제함으로써 불평등한 교육 결과를 정당화한 채 교육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Rancière(1987)는 미테랑 대통령 시기 프랑스의 교육 정책을 기획한 사회주의자와 공화주의자 모두가 불평등에서 출발해 평등이라는 목적을 향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이들이 불평등을 무한정 축소할 수는 있으되 결코 평등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 지적하였다. Rancière의 교훈을 빌리자면, 대학입시는 사다리 담론에 얽매여 계층의 불평등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사다리가 필요 없는 평평한 사회에서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계층의 불평등을 가정한 대학입시 정책은 어떤 의도하지 않은 효과를 낳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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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병 872기 교육사 군종병 | 작성시간 26.04.10 출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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