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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2: 3 포도주가 없다 - 요 2: 4 예수의 때

작성자jung8h|작성시간23.06.05|조회수23 목록 댓글 0

요 2: 3 포도주가 없다 - 요 2: 4 예수의 때                                                                                                                 

 

 

요 2: 3 포도주가 없다 - 포도주가 떨어진지라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

 

그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모자랐다.

 

포도주(wine)는 포도즙을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구약 · 신약 시대를 거쳐 교회의 중요한 음식물의 하나로 취급하였다.

 

구약 시대에는 번제(燔祭)의 희생제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졌었고, 과월절 식사에 중요한 식품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신약 시대에는 치유제(治癒劑)로 사용되기도 했다.

 

딤전 5: 23 -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눅 10: 34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최후의 만찬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포도주를 들고 사례하신 후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흘리는 자신의 피라고 말씀하신 후부터는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극진한 사랑의 상징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이 맺는 새롭고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마 26: 28 -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므로 교회는 성찬 예배 때 포도주를 함께 먹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한다. 포도주는 이물질(異物質)이 섞이지 않은 순순한 포도로 빚어 발효, 산화시킨 것으로 소량의 물(포도주와 물)을 섞은 것이 사용되었다.

 

포도주에 물을 섞는 데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인 물과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인 포도주를 혼합함으로써 인류와 하나님 사이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 위로 흐르는 피와 물로도 암시된다. 포도는 성경에서 비유의 대상으로 즐겨 사용되었다. 포도밭은 하나님의 교회로, 포도나무는 그리스도로, 포도덩굴은 그리스도교 신자들로 비유한다.

 

 

1]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당시에 "포도주"는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일반 음료였고, 다른 나라에서처럼 유흥과 오락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팔레스타인은 사막 지방과 같아서 물이 귀하므로 과즙으로 된 음료가 필요하였다.

 

필자는 중국과 러시아에서 몇 해 동안 지낸 적이 있다. 물에 석회질이 많아 우리나라처럼 식용으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 그들은 물을 반드시 끓여 마신다. 그러므로 차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혼인 잔치를 준비한 집이 물질적으로 유여한 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집은 혼인 잔치를 하면서 음식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하였다. 기쁘고 즐거워야 할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흥과 즐거움이 깨어질 처지에 있었다.

 

 

2]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예수의 어머니는 임신으로부터 지금까지 예수를 기르시면서 예수에 대한 많은 경험을 소유한 자였다.

 

그러므로 예수는 여타의 사람과 분명한 차별의 사람인 것을 잘 알았다고 본다.

 

그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예수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3]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더러 "포도주가 없다"라고 한 것은, 포도주를 기적적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겸손히 말한 청원이다.

 

그녀가 한 말은 포도주가 떨어진 그 어려운 문제를 예수가 해결해줄 수 있다는 그의 믿음, 즉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대한 그의 믿음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 그 전에 이적을 행하신 일이 없었을 터인데, 그의 모친께서 이런 청원을 어떻게 하였을까? 그것은 난제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그 전에 이적을 행하신 일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의 인격에 초자연적이고 비범한 일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인 만큼, 마리아로서 그에게서 이적을 기대할 만하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가 아들 예수에 대해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아마 예수님을 잉태할 때부터 그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천사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그에게 잉태되어 나실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다윗의 위를 잇는 왕이라고 일러주었다.

 

눅 1: 32-35 –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또 그가 아기 예수를 출산했을 때 그 지경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찾아와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 그리스도이신 구주가 나셨다고 했다고 말했고, 마리아는 그 모든 말을 마음에 기억하였다.

 

눅 2: 11, 17, 19 –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그녀는 예수가 소년 시절을 거쳐 자랄 때 줄곧 그를 주목하며 그에 대한 믿음을 간직했을 것이다. 이제 그 믿음을 가지고 마리아는 예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요 2: 4 예수의 때 - 예수께서 이르시되여자여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했다”라는 말씀은 그의 공적 전도사역의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이 옥에 갇힌 후부터 공적인 전도사역을 시작하실 것이다.

 

마 4: 12, 17 –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회개하라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하시더라.

 

요 3: 24 -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다.

 

전 3: 1-8 –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1] 예수께서 이르시되여자여.

 

그가 자기 어머니더러 "여자여"라고 하신 것은 하대하는 말이 아니다. 이것이, 한국 풍속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과 같으나, 헬라 어풍(語風)으로는 그것이 무례한 말이 아니다(Hendriksen).

 

‘여자여’라는 원어(귀나이)는 당시에 여자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었으며 무례한 호칭이 아니고 때때로 존중과 사랑을 가진 호칭이었다.

 

마 15: 28 -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여자여네 믿음이 크도다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눅 13: 12 -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여자여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하시고

 

요 4: 21 예수께서 이르시되여자여내 말을 믿으라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19: 26 -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여자여보소서아들이니이다하시고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향하여, "여자여"라고 하신 것에는 뜻이 있다. 메시야의 공적 역사(公的役事)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뜻만이 주장하고 혈통적 모친 된 권세가 간섭할 수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모친도 하나의 "여자"의 지위를 가질 뿐이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여기서 자기 어머니를 "여자여"라고 부르실 때에, 그는 자기 어머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될 자로만 취급하신 것이다. 메시야의 공생애(公生涯)에 있어서, 예수님은 그의 하실 바 일을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만 하시지 않으면 안 될 것이었다. 그는 혈통적 인연에 매이지 않아야 될 것이었다"라고 하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PP.171-172).

 

 

2]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이런 표현은 구약에도 많다.

 

삿 11: 12 – 입다가 암몬 자손의 왕에게 사자들을 보내 이르되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내 땅을 치러 내게 왔느냐하니

 

삼하 16: 10 왕이 이르되스루야의 아들들아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할 자가 누구겠느냐하고

 

왕상 17: 18 –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하나님의 사람이여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왕하 3: 13 –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그렇지 아니하니이다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하니라.

 

그러므로 반드시 냉정한 어투는 아니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구속(救贖)사업에 있어서는 비록 예수님의 모친이라도 그 모친 된 권세로써 간섭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 밖에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도울 중보자(中保者)가 없다.

 

 

3]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른바 "내 때"란 말은 메시야의 영광을 나타낼 때를 의미한다.

 

요 7: 30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 8: 20 -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요 13: 1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7: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그가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은, 그 혼인 잔치에 포도주 그것을 보급시키신 자선 사업을 목적하신 것이 아니고, 제자들로 하여금 그를 메시야로 확실히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11).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고데이(Godet)는 해석하기를, 그가 메시야의 영광을 나타내시기는 예루살렘에서야 될 일이고 가나에서 될 일이 아니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가 가나에서 포도주를 만드시므로 메시야로서의 영광을 나타내셨다고 우리 본문은 말하지 않는가? ( 11절 참조. )

 

그러므로 여기 이른바, "내 때"는 바로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그의 권능을 나타내실 일정한 시간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시어 그의 중보 사역의 역사 일체를 시행하신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그의 순종은, 시간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정하신 대로 맞추어 움직이신 것이다. 이런 일은 일반인으로서는 생각도 해 볼 수 없는 절대 완전하신 순종이다.

 

 

4] 예수님의 때 ( 2: 1-4 )

가나란 곳은 나다나엘의 고향이다. 가나에서 서남 편으로 약 6킬로 정도 가면 예수님의 고향인 나사렛이 있다. 이곳에서 혼인 잔치가 벌어졌다. 이 잔치에는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셨고 예수님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초청받아 참석하고 계셨다.

 

많은 학자는 가나의 혼인 잔치의 주인공이 나다나엘이라고 말하고 있다. 혼인집에 즐거운 시간이 흐르는 중에 한 가지 어려운 일이 생겼다.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다. 이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그 아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전했다. 주님은 어머니를 향하여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씀했다.

어머니 마리아의 확신대로, 예수께서는 그 혼인 잔치의 어려움을 동정하셨다. 그는 혼인 잔치를 무시하지 않으셨고 혼인 잔치의 즐거움과 흥이 깨어질 처지에 있는 것을 동정하셨다. 이제 그의 일하실 때가 되었다. 아직 공적으로 일하실 때는 아니었으나, 그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신적 영광을 나타내실 때가 되었다.


(1) 때를 따른 예수님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주님은 모든 일에 때를 따라 움직이셨다는 사실을 찾아 알 수 있다. 인생의 범사에는 정하여 준 분명한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때를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시킬 때가 있으며” (전 3: 1-8).

 

울 때, 웃을 때, 슬퍼할 때, 춤출 때, 사랑할 때, 미울 때 등 인생의 모든 일이 이때를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때를 기다리고 그 때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복이 있다.

 

인생에게는 환난이 찾아올 때가 반듯이 있다. 시험이란 것도 때가 되면 찾아온다. 우리는 이 같은 환난이나 시험이 올 때에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그 받을 때가 되어 받는다는 것을 알고 원망 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

 

그때라는 시기는 하나님만이 정하셨으므로 그만이 알고 계시는데 다만 우리가 피곤함이 없이 참아 기다리면 꼭 하나님의 선한 보응을 받을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2) 예수님의 때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모든 때에 대하여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때와 시기를 친히 만드시는 분이심으로 정확히 알고 계신다.


잠시 후의 일이었지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아니했음을 알고는 어머니의 요구를 거절하신 것이다. 초막절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의 형제들이 주님을 향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 자신을 나타내라고 권면한 일이 있다.

 

이때 주님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요 7: 6). 예수님이 많은 군중 앞에서 공공연히 말씀을 전해도 잡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에 대하여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요 8: 20 -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 그리스도인의 때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때를 분별하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① 때의 원리

 

“울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으면 형통할 때가 있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때는 자기가 처하고 있는 때가 물러가면 다음에는 반대의 때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할 때가 와도 소망을 가질 수가 있다. 시험을 만나도 길이 참을 수가 있다. 울 때가 와도 웃을 때의 소망을 바라보고 기다릴 수가 있다.

 

욘 1: 17 -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욘 4: 6-8 –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하니라.


 때는 하나님이 주시기에 기다려야 한다.

 

전 7: 13-14 – 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라하나님께서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모든 때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때를 변경시키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방법은 인내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태도는 인내로 기다리는 방법이다.

 

피할 길도 하나님이 주시고 이길 능력도 하나님이 주시며 시험의 때를 단축시키는 권한도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우리 인간을 섭리하시는 이유는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려는데 목적이 있다.

 

(4) 우리가 하나님을 의뢰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①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시고 그것을 주신다.

 

마 20: 23 -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눅 2: 31 -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요 14: 2-3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히 11: 16 -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

 

롬 8: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든 그것을 선으로 만들어내실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

 

 때를 따라 은혜를 내려주신다.

 

마 24: 45 -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도 하나님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수 있다. 우리가 받는 은혜는 형통할 때만 받는 것이 아니다. 어려움이나 시험을 당할 때도 더 큰 은혜를 받을 수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을 잘하면 우리의 길에는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때를 따라 축복해 주실 것임을 알아야 한다.

 

신 28: 12 -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렘 5: 24 -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히 4: 16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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