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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5: 27 심판하는 권한 - 요 5: 29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작성자jung8h|작성시간23.07.13|조회수329 목록 댓글 0

요 5: 27 심판하는 권한 - 요 5: 29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요 5: 27 심판하는 권한 -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

 

하나님은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마지막 심판하심의 권세를 허락하셨다.

 

 

1]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셔서 구원받을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대속 사역을 성취하셨다.

 

그가 한 사람인데 많은 사람의 모든 죄를 대속(代贖)할 수 있으셨던 것은 그가 단순히 사람이 아니시고 신성(神性)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대속 사역을 통해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고 의롭다고 여기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게 된 것이다.

 

 

2]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있다.

 

(1) 그리스도께서 인자(곧, 사람)의 형상을 입도록 낮아지셨으니 만큼,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장으로 높이셨다는 것.

 

빌 2: 7-10 –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2) 칼뱅(Calvin)은 이 말씀을 윗 절에 연락시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인자(곧, 인성)되신 방면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계시하시어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뜻이라고 한다.

 

(3) 구속 사업 전체를 인성(人性) 소유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실행하시는 것인 만큼, 구속의 일부분 되는 심판도 그가 하신다는 것(Meyer).

 

(4) 심판은 하나님 아버지께 경배를 드리는 의미의 행위인 것인 만큼, 사람들 측에서 할 일이며 그것을 실행할 이는 이상적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해야 된다는 것(Godet).

 

(5)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시니 누구를 정죄하시지 않는다. 다만 인간들이 구주를 배척하므로 자정죄(自定罪)하는 것뿐이다.

 

그들이 인간성으로 오신 성자(聖子)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넘어진다. 곧, 그들은, 성자 예수님께서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신 사실을 받지 못하고 도리어 걸려 넘어진다. 그러나 그의 인간성은 그의 사랑을 구체화 한 것이었다.

 

그것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실상 그것에게서 심판을 받음과 같다. 곧, 그것은 그들의 자정죄이다. (Beyschlag, Neutest, Theol. 1,P.290).

 

(6) 헨드릭센(Hendriksen)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이 구절의 '인자'(*)란 말이 관사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이 다만 인간 성품을 의미하고 메시야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하나,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관사의 유무를 가지고 지나치게 일정한 구분을 할 필요는 없다.

 

어떤 때에는 직명(職名)이 관사를 가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자'란 말이 보통으로는 메시야의 직명인데, 하필 여기 와서 인간 성품만을 의미하였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므로 이 구절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이시기 때문에 심판의 권세를 받으셨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7) 크로솨이데(Grosheide)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여기'의 인자'란 말은 인간성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 이 부분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세우시고(26절), 또 다시 그의 인간성을 내세우신다(27절). 이렇게 그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어 심판의 권세를 받을 자격을 가지셨다.

 

그가 인간성을 가지신 자격으로써도 심판하실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인간성에게 그런 권세를 주셨기 때문이다.

 

더욱 윗절(26절)에 벌써 말한 것과 같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심판하실 수 있다"라고 하였다(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 PP. 375-376).

 

(8) 슐라텔(Schlatter)은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곧, 이 부분 말씀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생명의 창조자이시고(25절), 인자(곧, 인간성)이신 그는 심판자이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설된다.

 

인자는, 속죄자(곧, 인간성으로 피흘려 죽으신 분)이시니 만큼, 죄악을 심판하실 권리도 받으심이 당연하다. 그 이유는, 죄는 이와 같이 속죄하여 주신 그를 믿지 않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판은 주로 사탄에 대한 것이다(12: 31, 16: 11).

 

이 심판은 예수님이 그 인간성으로 죽으심에 의하여 성립시키셨다고 하였다(Das Hauptstuck des Gerichts ist das Gericht am Satan, 12:31, 16:11, und dieses bewirkt Jesus durch seinen Tod.- Der Evangelist Johannes, P.151).

 

위의 여덟가지 해석 중 우리는 첫째 해석을 택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섯째 해석을 취하는 것도 무방할 것이다.

 

 

요 5: 28 음성을 들을 때 -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

 

예수님의 사람 살리시는 사역의 목표는 몸의 부활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무덤들은 다 열리고 시체들은 부활할 것이다. 장차 두 종류의 부활이 있을 것이다.

 

 

1]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성도는 부활에 대하여 놀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활에는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고 다른 하나는 심판의 부활이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을 할 것이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을 할 것이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되지 못하나 믿음의 증거로서 중요하다. 믿는 자는 죄를 짓지 않고 선을 행하고 거룩의 열매를 맺다가 영광스럽게 부활하여 영생에 들어갈 것이다.

 

두 종류의 부활에 대해서 다니엘도 증언하기를,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단 12: 2).

 

 

2]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것은 별세하였던 신자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몸으로 부활할 것을 가리킨다.

 

 

요 5: 29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1]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기독교가 성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는 부활은 이미 구약과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서도 예언되었다.

 

고전 6: 14 -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시 16: 10 -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마 16: 21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마 20: 17-19 – 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18 보라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막 8: 31-32 –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혹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관련된 빈 무덤에 관한 성경의 기록을 '기절설', '시체 도난설', '착각설' 등으로, 또한 부활한 예수의 목격을 '환상설', '강령설' 등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부활에 대한 구약과 그리스도 자신의 예언뿐만 아니라 사복음서 저자들의 증언(마 28막 16눅 24요 20)과 부활한 그리스도를 목격한 많은 사람의 증언 및 죽음을 불사하고 이 부활의 복음을 증거한 사도들의 전도 사역에서도 부활의 확실성은 충분히 입증된다.

 

마 28: 1, 9 – 안식일이 다 지나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평안하냐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요 20: 19-29 – 19 이 날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시니라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하니 도마가 이르되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니라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나의 주님이시요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9 예수께서 이르시되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시니라.

 

눅 24: 13-14 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고전 15: 6-8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이 부활로 인간 구원의 조건이 만족되었고, 성도 부활의 표징이 되었다.

 

롬 6: 4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8: 11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빌 3: 21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성도들의 구원의 길이 열렸다.

 

롬 4: 25 -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5: 11 -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벧전 1: 3-4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선한 일"이란 말은 예수님을 믿으므로 나타낸 선한 열매를 가리키고, 일반 도의적 선을 말함이 아니다.

 

요 3: 19-21 –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기 "선한 일을 행한"이란 말의 "행한"이란 자는 헬라 원어로 포이에-산테스(*)니, 반드시 상습적으로 완전히 행함을 가리키지 않는다.

 

 

2]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악한 일을 행한"이란 어귀에 있어서 "행한"의 헬라어 원형은 프라쏘(*)니, 상습적으로 행한 것, 혹은 일생의 행습(行習)을 말함이다. 악을 행하기는 이렇게 쉽고 상습적이다.

 

이 구절이 말한 두 가지 부활은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될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부활에 대하여 성경은 종종 말하였다.

 

행 24: 15 -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함이니이다.

 

고후 5: 10 -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계 20: 12-13 –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단 12: 2 -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이 말씀은, 명백하게도 세계 종말에 있을 대심판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불트만(Bultmann)은, 이 부분 말씀을 본래의 원본으로 생각지 않고 후대인의 삽입구라고 한다(Johannes Evangelium, pp. 196-197). 그러나 불트만(Bultmann)의 이같은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1) 이 구절들에 대하여 사본상 일치하지 않는 것은 전연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사본들이 다 함께 같은 내용을 가졌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내용이 저작자의 기록 그대로인 사실을 확증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권위있는 신약 학자들은, 이 부분(5: 28-29) 말씀이 문맥상으로도 본래의 원본인 사실을 알려준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부분 말씀보다 앞서 벌써 27이 미래의 심판을 말한다고 하며, 이 부분 말씀은 그것의 연속이라고 하였다.

 

슐라델(Schlatter)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곧,5: 19이하의 말씀은, 예수님의 살리시는 역사로 심판하시는 일이 현세에 벌써 실행된다고 강조하는데, 그와 같은 역사(役事)의 권세는, 곧바로 28-29에 기록된 그의 장차 행하실 심판 권세와 같은 것이라는 의미로 말하였다(Der Evangelist Johannes, p. 152).

 

(2)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예수님이 5: 28-29에서 두 가지 사상의 병립을 보여주셨다고 생각한다.

 

곧, 영생(또는 심판)의 현재적 실시와 및 세상 끝날의 실시를 병립시키셨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병립 사상은, 특별히 요한복음 저자의 사고방식이다. 6: 40에도 이와 같은 취급이 나타나 있다.

 

요 6: 40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거기 말하기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다.

 

여기 나타난 사상은, 신자들이 현세에서 벌써 영생을 소유한다는 사실과 또한 그들이 대종말에도 부활의 형태로 영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6: 44, 54에는,

 

요 6: 44, 54 –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이라는 말까지 사용하시면서 그의 수평선적(水平線的)인 종말관(終末觀)을 표현하셨다. 그리고 그는, 12: 48에서도 "마지막 날"이라는 말을 사용하셨다.

 

요 12: 48 -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그는, 현재적 심판과 미래의 심판을 병립시켜 말씀하셨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보여준다. 예수님께서 땅 위에서 하신 말씀이 미래의 심판 권위를 가졌다는 것은, 말씀하시는 그 현재에도 그 말씀이 심판과 같은 종말관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은 종말관적 성격 있는 최후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의 심판 성격은 현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상 끝날에도 그러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3] 사망에서 생명으로 (요한복음 5: 24-29)

24-29은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인 종말론의 표현이 짧은 문단에서 나란히 나온다.

 

이것은 신약신학 전체에 서 있는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인 종말론 사이의 긴장. 구원은 미래적 선물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벌써 그 종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영생을 벌써 여기서 맛보기 시작했다. 바울의 용어를 빌리면 첫 열매이다. 완전한 수확은 못 받았으나 벌써 종말의 복을 누린다. 그러나 아직 다 이루어지지 못했다.

 

첫열매를 보증하는 것이 성령이다. 동시에 이 첫 열매는 보증금 노릇을 한다. 벌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시작한 종말의 축복 구원을 맛보기 시작했으나 때가 되면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된다. 이것이 바울적인 설명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가 새롭고 놀라운 것으로 오늘 주신 말씀은 더욱 놀라운 말씀이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I) 이미 얻어진 영생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자가 누리는 영생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참으로 놀라운 선언을 하셨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많은 세상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독단주의자, 독선주의자들이라고 비방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진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이요 진리이심을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예수에게만이 영생이 있음을 너무나도 뚜렷하게 가르치고 있다.


 영생을 얻는 첫째 조건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데 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했다(롬 10: 17).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생명을 주시는 역사를 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곧 진리요 생명이므로 이 말씀을 듣는 사람만이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다.


②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이 말씀의 뜻은 아들을 믿는 자는 아버지를 믿는 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다.

 

아들의 음성을 듣고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곧 아들을 믿는 자는 아버지를 믿는 자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2) 영생의 상태


주님은 그의 말씀에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하셨다.

 

 이미 얻었다고 하셨다.

 

얻었다는 말은 이미 얻어진 상태를 말한다. 앞으로 소유할 대상이 아니라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가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은 주검을 거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부활로 영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 안으로 들어가는 일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을 때” 바로 그때 얻어지는 것이다.


②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하셨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심판을 받았다고 성경은 끊임없이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재창조함을 받은 사람이다. 사망과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영원한 결별을 한 사람이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셨다.

 

‘옮겼느니라’는 원어는 ‘메타베베켄’으로 옮긴다, 건너간다, 이사한다, 자리를 옮긴다의 뜻으로 현재완료형이다. 이 말은 “영원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진 상태”를 말한다.

(3) 영적 부활의 상태


영생을 말씀하신 주님은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의 상태를 밝히셨다. 25에서 하신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을 얻는 영적인 부활의 상태를 가르치고 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갖지 못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죽은 자들’이라고 선언하신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죽음이 선언된 죄와 허물 가운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은 이처럼 죽은 자들에게 전하는 생명의 소식이다. 우리는 이 복음을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원칙적으로 죽은 자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면 살아날 수가 없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인 복음을 전해야 한다.

(4) 육적 부활의 시기


주님은 마지막 심판의 권세가 주님의 손에 쥐어져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부활의 시기를 말씀하셨다.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부활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생명의 부활이요 하나는 심판의 부활이다. 생명의 부활뿐 아니라 심판의 부활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된다. 심판의 권세가 주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일이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생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생활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생명의 길은 오직 하나뿐임을 확실히 믿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으면 영생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놀라운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유혹이 오더라도 결코 이와 같은 진리에서 떨어져 나가거나 우리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사람은 몸과 영혼이 구원 받고 영생하기 위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사람들이 부활하여 영생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 없다.

 

죄인들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

 

행 4: 12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들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영생은 성도가 단지 미래에 얻을 것이 아니고 이미 소유하고 있다.

 

엡 2: 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자는 죄 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

 

믿는 자가 그 믿음 안에 거한다면 그는 다시 정죄함을 받지 않을 것이다.

 

롬 8: 1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은 그 누구도 취소할 수 없는 확실한 구원이다. 구원받은 자들은 그 구원을 결코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셋째, 우리는 영광스런 몸의 부활을 소망하자.

 

28-29,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성도들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살아 있는 자들도 변화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순종과 선행으로 우리의 믿음을 증언해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경 말씀을 순종하며 선을 행하다가 마지막 날에 영광스러운 부활과 영생에 이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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