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0: 6 알지 못하니라. ( 하) - 요 10: 8 먼저 온 자
3] 양과 목자 (요 10: 1-6)
예수님은 참된 목자와 참된 주님의 양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는 모습을 가지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지방은 목축업이 예로부터 성행하였으며 목축 중에도 특히 양을 기르는 일은 일반적인 생업으로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양에 관한 이야기가 성경에 많이 나온다. 양과 목자와의 관계는 마치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비유로 활용되어 왔다.
(1) 양의 우리
양의 우리는 양이 거처하는 집이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양의 우리는 대개의 경우 지붕이 없으며 들판에 있는 돌로 담의 둘레를 쌓고 또 양이 출입하는 든든한 문으로 만들어져 있다.
① ‘우리’란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고 있다.
예수님은 16절에서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라고 하셨다.
교회는 먼저 이스라엘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복음은 이방인에게도 전해져서 하나님의 구원이 온 누리에 퍼져야 한다.
이제 교회는 이 같은 ‘우리’의 구별이나 차별이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한 우리가 이루어진 것이다.
* 갈 3: 27-29 –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② 양이란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말한다.
시편 23편은 다윗이 하나님을 목자로 하여 자신을 양이라고 부르고 목자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영감으로 기록한 시이다.
양은 눈이 어두워 길을 잃고 유리하기 쉬운 짐승이다. 목자가 없는 양은 길을 잃고 유리한다. 우리 인생들이 죄로 말미암아 양처럼 길을 잃고 방황했었다.
길이 되신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님이 아니시면 우리는 영원히 길을 잃은 양이 되었을 것이다.
양은 유순하여 사나운 짐승에게 잡혀먹기 쉬운 짐승이다. 따라서 목자가 없으면 양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에스겔 선지자도 이렇게 선포하였다.
* 겔 34: 5-9 – 5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6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7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8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 떼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기 때문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 떼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9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은 그의 양 떼들을 구원해 내시기 위하여 그의 목숨까지 버리셨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셨다.
양은 그릇 행하기 쉬운 짐승이다. “우리가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말씀하셨다(사 53: 6).
이처럼 약하고 길을 잃으며 그릇 가기를 잘하며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 쉬운 양은 반드시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③ 문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다.
예수님 자신이 8절에서 친히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해석해 주셨다. 양의 문이란 말은 천국의 문을 가리키며, 구원의 문을 가리키며, 생명의 문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어떻게 문이 되셨는가?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 히 10: 19-20 –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그의 사명을 다 마치셨을 때 그는 “다 이루었다”고 하셨다. 주님의 이 말씀과 함께 성소의 휘장 가운데가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되었다. 예수님은 바로 이 길의 문이 되신 구세주시다.
(2) 양의 목자장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양의 목자장이 되시는 분이다.
①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의 참 뜻을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그의 몸으로 휘장을 찢으심으로 친히 문이 되신 분이시지만 그가 또한 처음 그 문을 통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참된 목자가 되신다.
예수님이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님이 친히 문이 되시고 예수님이 친히 그 문으로 처음 들어가셨기 때문에 예수님 이전에는 하나님께로 이끄는 목자, 생명을 주는 목자가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 양은 목자의 음성만을 듣는다.
그리스도의 양은 그의 음성만을 듣는다. 그 이유는 이 양들은 이미 아버지에게서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 요 6: 45 -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라고 하셨다(요 10: 27).
③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하셨다.
목자가 양을 인도하여 낸다고 하신 말씀은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복된 양육을 표현하신 말씀이다.
교회에는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담으로 넘어온 절도요 강도인 거짓 목자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히 목자처럼 처신하지만 그의 입에서 용의 말이 나온다고 했다.
* 계 13: 5-8 –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하나님은 거짓 목자들을 대적하신다고 경종 하셨다.
* 겔 34: 10-12 – 10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 11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12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이들은 사탄의 종들로 회개 없이 교회에 들어온 자요, 예수 없이 목자가 된 자요, 생명 없이 일꾼으로 가장한 자요, 양들에게 쑥물을 먹이며 독을 마시우게 하는 주검의 사자들이다.
그러므로 양들은 이런 거짓 목자의 음성을 잘 분별하여 따르지 말아야 한다.
2. 양의 문 ( 10: 7-10 )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신 자들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켰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런 부류에 들 것이다. 그런 자들은 양들의 구원과 영적 성장을 위해 살지 않고 헛된 물질적 이익을 위해 사는 자들이다.
그들은 양들의 영혼을 살리고 건강케 하기보다 그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자들이다. ‘생명을 더 풍성히 얻는다.’는 말은 성도의 신앙 인격과 삶이 강건해지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구원 얻은 양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요 10: 7 다시 이르시되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
예수는 양의 문이시다. 죄인들이 그 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양들로 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요 양들의 우리이다. 구원을 얻은 양들은 교회의 여러 모임들을 통해 영의 양식 즉 말씀의 교훈을 얻는다.
목사들은 성경적 교훈으로 영의 양식을 공급하고 교인들은 그 교훈으로 힘을 얻고 온전케 된다.
1]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기서는, 윗부분(1-5)의 말씀을 해설하고 있다. 1-6절 해석에 대한 머리말을 참조하라.
2] 나는 양의 문이라.
'문'은 여러 번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 눅 13: 24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 행 14: 27 -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 고전 16: 9 -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그러나 직접적으로 예수께서 적용하신 것은 이곳 뿐이다.
버나드(Bernard)에 의하면, 여기 "문"이란 말이 사히딕(Sahidic) 사본에는 "목자"(*)란 말로 읽게 되어 있는데, 모판트(Moffat)는 그것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버나드(Bernard) 자신은 그것을 받지 않았다.
"양의 문"이란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리킨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인도하는 통로를 의미한다(14: 6).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는, 시 118: 19-20을 해석하면서 말하기를, 문은 의(義)의 문, 곧, 그리스도라 하였다.
* 시 118: 19-20 – 19 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익나디오(Ignatius)는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문, 곧, 그리스도라 하고, 그것을 통하여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선지자들, 사도들, 또는 교회가 들어간다고 하였다.
슐라텔(Schlatter)에 의하면, 예수님은 시 118: 20의 예언("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대로 오신 분이다.
그는 말하기를, "시 118: 20에 있는 '이는'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가 하나님의 문이시다. 거기 '의인들'이란 말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양들을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dieser, namlich der Christus, ist das Tor Gottes. Die Gerechten des Psalms sind bei Joh. die dem Christus gehorenden Schafe.-Der Evangelist Johannes, p. 235)
요 10: 8 먼저 온 자 -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성경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난해하기 어렵던 부분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의미를 깨닫게 되면 오묘한 진리의 세계의 참 맛을 느끼게 된다.
1]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나보다 먼저"(*)란 말에 대하여는 사본상 차이가 있다. 몇몇 사본(*, A, B, D, L, W)들이 우리 본문과 같이 이 문구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본(*)은 이것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이 문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원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본들의 증거가 강하기 때문이다.
(1) "나보다 먼저"(*)란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① "내 권위를 횡령하여"(above me)란 뜻이라고 함.
이 해석이 옳다면, 이 구절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무시한 바리새인들과 같은 자들을 절도나 강도로 간주한 것이다.
② 이것은 시간적으로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을 가리킨다는 것.
"먼저"라는 헬라 원어가 그런 뜻으로 요한복음에 많이 나와 있다.
* 요 11: 55 -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 요 12: 1 -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 요 13: 1, 19 –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 요 17: 5, 24 –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크로솨이데(Grosheide)는 이 해석을 합당하게 여기는 이유로서 그 아래 나온 에이신(* ), 곧 "이요"로 번역된 동사가 현재사라는 것을 들어 말한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염두에 있었던 인물이 예수님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와서 교권을 잡았는데, 아직도 그 현재에(예수님 당시에)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바리새인들인 것이 분명하다. 많은 학자들이 이 해석을 취한다.
③ 저자의 견해
먼저 아담과 하와의 자녀로 가인과 아벨이 나온다. 이들은 제물을 드렸는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다.
* 창 4: 3-5 –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제물을 드림은 예배의 표상이다. 먼저 태어난 가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고, 아벨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렸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이라는 쌍둥이가 있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렸고, 별미의 축복을 놓쳐버렸다.
* 창 25: 31-34 –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 창 27: 31-36 – 31 그가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로 가지고 가서 이르되, 아버지여 일어나서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32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그가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아들 곧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33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34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슬피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35 이삭이 이르되, 네 아우가 와서 속여 네 복을 빼앗았도다. 36 에서가 이르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하지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 번째니이다. 전에는 나의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
주님은 말씀하셨다.
* 마 11: 12 –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세례 요한은 주님보다 먼저 와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으나 주님은 생명의 떡을 주셨다.
다시 말하면 먼저 난 자가 나중 난 자보다 믿음의 분량이 월등하게 부족하다. 부족함보다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치기 위하여 이런 본보기를 보여 주셨을까?
* 마 24: 4-5, 11-12, 24-25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말세에는 많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교회가 나타나 많은 신자를 미혹하여 악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것이다.
(2) 다 절도요 강도니
선지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선지자들은 장차 오실 메시야를 예언했다.
* 사 7: 14 -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미 5: 2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슥 9: 9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메시야의 이름으로 먼저 온 거짓 선지자들을 말한다.
* 행 5: 36-37 – 36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37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이들은 신구약 중간시대(B.C. 400-4)에 많이 나타났던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것은 종말의 예표이다.
2]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비록 눈은 미흡하지만 귀가 밝은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분별하고 거짓 싻꾼 목자를 따르지 않았다.
따라서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여 거짓 그리스도(적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거짓 목회자)를 따르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 히 5: 12-14 –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마 24: 44-47 –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