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1: 4 죽을 병이 아니라 (하)
③ 지옥 형벌 – 둘째 사망
죄의 형벌로서의 죽음은, 성경에 의하면, 이 정도가 아니고 또한 영원한 지옥 형벌을 포함한다. 이것을 성경은 ‘둘째 사망’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영혼은 육체가 죽을 때 멸절(滅絶)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의인들의 부활이나 악인들의 지옥 형벌은 무의미한 말이 되고 말 것이다.
주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하셨다(마 10: 28).
이 말씀은 첫째로 영혼의 불멸성을 증거하며 또한 둘째로 지옥의 교리를 증언한다. 지옥 교리는 주님 자신의 입에서 나온 진리이다. 이것이 왜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이 교리를 변경해서는 안 되는지를 강조하는 이유이다.
지옥 교리는 마가복음 9: 43-49에서 가장 강하게, 그리고 명백하게 증거되어 있다. 특히 한글개역성경에 생략되어 있는 44절과 46절은 전통본문에는 분명히 들어 있고 이 구절은 고대 사본들과 역본들의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거기는 그들의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주께서는 또 마태복음 25장에서도 지옥의 영영한 불에 대해 증언하셨다. 41절,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6절, “그들은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영생과 대조되는 영벌 곧 영원한 형벌은 지옥을 가리킨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1장에서 영원한 멸망에 대해 증언했다. 1: 8-9,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여기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은 지옥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 지옥에 대해 밝히 증언했다.
* 계 19: 20 -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 계 20: 10, 13-15 –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계 21: 8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처럼 죄의 형벌로서의 죽음은 깊고 포괄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첫째로 영적 죽음 곧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과 그 결과로 오는 영원한 생명의 상실과 온갖 정신적 문제들을 포함하며,
둘째로 육체적 죽음 곧 육체의 생명 원리인 영 혹은 영혼이 육체를 떠남으로 육체가 생명을 잃는 것을 포함하며,
셋째로 영원한 지옥 형벌 곧 ‘둘째 사망’을 포함한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엄격한 공의는 바로 이러한 죽음이었다. 우리는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으로서 이런 죽음을 죽어야 했었다. 특히 우리는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마땅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를 죄와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시고 완전한 의를 이루셨다.
* 롬 10: 4 -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 고전 1: 30 -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 고후 5: 2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저주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건져내셨다.
* 갈 3: 13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고 간주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셨다.
* 롬 3: 23-26 –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얻은 구원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함을 얻는다. 구원받은 자는 죄로부터의 구원, 죄의 형벌로부터의 구원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자.
3]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세 가지 큰 뜻을 보여 준다.
(1) 예수님의 전지 전능하신 신성(神性)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그의 신적 명칭, 신적 속성, 신적 사역, 신적 영광을 통해 증거된다.
* 사 9: 6 -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요 1: 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일 5: 20 -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 골 2: 9 - 그[예수] 안에는 신성(神性)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 요 1: 3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요 5: 22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계 5: 13 -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성부(聖父)만 하나님이시며 예수는 하나님이 되실 수 없고 단순히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높임을 받은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초대 교회 때부터 있었다.
오늘날도 그런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다(유니테리안 교회, 여호와의 증인, 자유주의 신학 등). 그러나 성자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명백히 이단이다.
(2) 예수님과 하나님과의 일체(一體)이신 사실을 보여 준다.
* 고전 8: 6 -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 엡 4: 1-6 –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3) 나사로가 죽지 않으리라는 것이 아니고, 그가 죽어도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곧, 그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여기 있다.
4] 마르다의 가정과 예수님 (요 11: 1-4)
우리는 아름다운 한 가정을 바라본다. 신약성경에 묘사된 가정 중에 마르다의 가정만큼 아름답게 보이는 가정을 찾아볼 수 없다.
그 가정이 부유해서가 아니다. 베다니라는 적은 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는 가정이 그들의 가정이었다. 그 가정에 남다른 행복할 조건이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두 자매와 형제가 서로 의지하며 고아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가정이 복된 가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 가정을 이루고 있는 그들 세 식구가 한결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며 그들 또한 주님의 큰사랑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1) 나사로의 가정
우리는 먼저 나사로의 병이 어떻게 해결을 보게 되었는가에 대한 해답에 앞서 그들이 어떻게 주님을 섬겨 왔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자.
① 이들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영접하고 대접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오리쯤 떨어져 있는 이들의 가정에 자주 들르셨다. 그것은 이들이 정성어린 마음으로 주님을 영접했기 때문이다.
② 이 가정의 어린 동생인 마리아는 값진 향유를 예수님에게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기던 여자였다.
이 마리아는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시는 날이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말씀을 듣는 일을 큰 기쁨으로 여겼던 여자였다.
③ 마르다는 봉사와 신앙에 있어서 대단한 여인이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 집을 찾아오실 때마다 좋은 음식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④ 예수님은 나사로를 부르실 때 “우리 친구”라고 부르셨다.
이 나사로는 그의 행실이나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별로 나온 것이 없지만 그를 가리켜 우리 친구라고 부르신 것을 볼 때 그의 신앙이나 주님에 대한 사랑에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2) 병든 나사로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 고아처럼 서로 의지하며 지냈던 마르다의 가정에 기둥 같은 가장이 병들어 죽게까지 이른 일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럴 때 그들은 과연 어떻게 이 일을 처리했느냐에 대하여 알아보자.
① 그 누이들은 먼저 사람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급히 보냈다.
그들은 나사로의 병이 예수님이 계셔야 살릴 수 있는 병인 줄로 믿었다.
이것은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의 입의 말에서 알 수 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1).
② 그들은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예수님을 찾았다.
우리는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유일하신 문제 해결자이심을 알아야 한다.
③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문제를 아뢰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우리의 기도가 논리적으로 예수님을 이해시키려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로부터 긍휼히 여기심을 받도록 있는 그대로를 아뢸 뿐이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마르다는 이 간구만을 전하고 나머지 이 일의 처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예수님께 맡겨 버렸다.
(3) 예수님의 응답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다.
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사로는 그 후 며칠이 지나 죽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은 최종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사로는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최종적인 죽음이 아니었다.
②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신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었다. 그가 이제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는 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다.
③ 이는 이로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 근본이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똑같이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다. 이 같은 일은 하나님의 아들로 자기를 나타내시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아들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이다.
마르다의 가정은 예수님이 안 계시면 안 되는 가정으로 언제나 주님과 가까운 교제를 가졌다. 우리들의 가정도 마르다의 가정처럼 예수님을 제일로 삼고 살아가는 가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이 있든지 문제 해결의 근본자를 예수님으로 알고 예수님을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초청해야 한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에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