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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아침의 아들 계명성의 종말 / 신우인 목사

작성자栢香木|작성시간10.10.09|조회수75 목록 댓글 1

포이에마예수교회

신우인 목사

아침의 아들 계명성의 종말

이사야 14:12-15

 

이사야 14:12-15

1173년, ‘피터 왈도’라는 프랑스의 한 부자 상인이
거리의 악사가 부르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부자 청년의 회심을 주제로 한 그 노래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성경은 모두 필사본으로
성경 한 권 값은 웬만한 집 한 채 값이어서 아무나 갖지 못했을 때였고,
또한 라틴어 성경만 있어서
학식이 높은 신부들이나 성경에 관심을 가진 소수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피터 왈도는 성경을 읽으며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성모 마리아와 교황의 무오설이나
그의 강력한 권한을 뒷받침 할 만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고,
교회가 강조하는 많은 핵심교리들의 근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피터 왈도는 가족들을 위한 약간의 재산 외에
나머지는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는,
두 명의 신부를 고용하여 라틴어 성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왈도는 사람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가르치며 일상 언어로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왜곡으로 가득한 제도 교회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해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평신도들이
왈도의 가르침에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이라 부르며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고 4년이 지나지 않아 프랑스 전역을 뒤덮었습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1184년
교황 루치우스 3세는 왈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파문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주교의 허락 없이 평신도가 설교를 했다는 것과 성직자의 권위를 부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왈도가 죽은 후에도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들은 행상인이 되어 시골이나 귀족의 성들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면서
성경의 바른 내용을 전파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물건은 없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아주 진귀한 물건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보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마음에 불을 붙이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프랑스어 성경 두루마리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이루어진 전도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교회의 방해는 더욱 집요해졌습니다.
교황 인노첸티우스 3세는 재차 왈도의 파문을 확인했고,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을 제거할 목적으로 종교재판소를 1200년대 중반까지
근 100년 가까이 운영하며 수백 명의 사람들을 처형하였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훗날 16세기 종교개혁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왈도가 하지 않은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성경에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습니다.
왈도를 따랐던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이 행상인이 되어 팔려고 했던 진귀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보석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그 순수한 열정이 온 유럽을 뒤덮었습니다.

반면 교회와 교황과 그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고 세력을 확대하는 일에 골몰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전하고 복음으로 백성들을 구원할 생각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왕마저 좌지우지 하던 막강 권력은,
성경을 왜곡하고 제도를 강화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점점 더 힘을 잃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먼저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 누구인지 아셔야 합니다.

계명성은 샛별, 곧 금성을 말합니다.
별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올라 가장 밝게 빛나는 별입니다.
이 샛별은 당시 떠오르는 별인 바벨론 왕국을 상징하는데,
가장 찬란한 바벨론 왕국도 결국은 가장 비참해 질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루시퍼’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모든 악을 일으키는 사탄의 이름입니다.
루시퍼는 ‘빛을 가져 온 자’라는 뜻으로 lux(빛)과 ferre(가져오는)가 합쳐진 말입니다.
샛별이 별 중에서 가장 먼저 뜨는 가장 밝은 별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처음에는 사탄과는 관계가 없었던 이름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사탄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다가,
단테의 신곡과 존 밀턴의 실낙원 같은 책을 통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샛별의 몰락 이미지는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가나안에서 샛별의 신을 ‘샤헬’이라고 부르며 숭배하였는데,
샤헬은 자신보다 유일하게 더 밝은 태양신의 영광을 질투하여
여러 별들을 거느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그 옥좌를 빼앗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여 번갯불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렇게 땅에 떨어진 샛별은 사람들을 규합하여 태양신에게 대항한다는 신화입니다.

이 외에도 고대 중동지역의 여러 관습이나 신화들이 성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펄쩍 뛸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한 성경에 잡신들의 신화가 끼어들 수 있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절대로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행한 할례도, 유월절 날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도
모두 그 전부터 있었던 관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관습에 전혀 새로운 영적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그 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최악의 저주를 상징합니다.
그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달리심으로 최고의 사랑과 은혜의 의미로 바꿔주셨습니다.

타락한 천사로서 악의 화신인 루시퍼는 끝내 무저갱으로 들어간다는 개념은
예수님도 사용하셨습니다.
거라사 땅에서 한 남자를 사로잡고 있는 귀신,
이 귀신은 루시퍼의 부하인데, 그 귀신이 예수님을 보자,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눅 8:31)라.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루시퍼는 원래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도록 허락받은,
가장 신뢰받는 천사장(天使長)이었습니다.
이름처럼 찬란하게 빛나는 그는
주위의 다른 천사들을 압도하는 아름다움과 용기 그리고 기품으로 가득 찬 천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총을 한몸에 받던 루시퍼는,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여기면서 하나님 자리에 앉을 생각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때 동조하던 모든 천사의 3분의 1도 함께 추방됩니다.
이 개념은 성경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사탄)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계 12:4)

자, 왜 이렇게 자세히 설명을 드리는지 아셔야 합니다.
사탄과 귀신의 존재에 대한 무지 때문입니다.
동시에 지나친 관심 때문입니다.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태도나 “그런 게 정말 있대.”라며 벌벌 떠는 태도나
모두 악의 세력에게 사정없이 휘둘립니다.
또한 요즈음 교회에서 과도하게 사탄론, 귀신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들로 두렵게 하여 교회와 목사 자신에게 꽁꽁 묶어두기 위한 전략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정작 중요한 것,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침의 아들 계명성” 루시퍼가 품었던 생각입니다.
루시퍼가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나님은 그에게 최고의 능력과 지위를 주셨습니다.
그 능력과 지위는 그에게 부여된 사명을 효과적으로 수행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능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뭇별 위에 군림하려고 하였고,
나아가서는 지극히 높은 자, 즉 하나님과 겨뤄보려고 한 것입니다.

루시퍼의 생각, 한없이 높아지려는 생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장 보편적인 것입니다.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알고,
그것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히려고 하는데서 시작합니다.
각자의 세력 확장은 상호충돌이 불가피합니다.
별 볼일 없는 능력의 소유자는 미처 펴보기도 전에 당하고, 그마나 있는 것마저 빼앗깁니다.
그래서 억울해하고 와신상담 하다가, 끌탕하다가 인생을 끝냅니다.
반면 이긴 자는 세력 확장에 돌입합니다.
하지만 더 강한 상대를 만나 새로운 힘겨루기 끝에 물러납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이 곧 ‘교만’입니다.
높아지고 독점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반드시 무너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교만’은 언제나 ‘파괴’를 동반합니다.

사탄의 별명은 여러 개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거짓의 아비’(요 8:44)입니다.
사탄의 모든 말은 거짓입니다.
거짓말로 사람들을 유혹을 하여 올무에 걸려들게 하고 결국은 파멸하게 만듭니다.

‘밤낮으로 참소하는 자’(계 12:10)입니다.
스스로를 자책하고 위축되게 만들어 주저앉게 만듭니다.
한편으로는 남을 헐뜯게 하여 서로 대적하게 합니다.
사탄은 배후에서 서로 싸우는 것을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구경을 합니다.
이긴 사람에게 또 다른 사람을 붙여 이간질 시킵니다.
그래서 사탄을 ‘파괴의 영’이라고 부릅니다.
그에게는 사랑과 동정심은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요? 그래야 힘 안들이고 뭇별 위에 올라설 수 있으니까요.
동시에 하나님의 가장 사랑하는 인간들로 서로 싸우게 하여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으니까요.

‘말씀을 빼앗는 자’(막 4:15)입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게 만들어 자신의 거짓말에 걸려들게 합니다.
사탄은 너무나 교묘하여 성경을 왜곡되게 가르칩니다.
기독교 이단들은 모두 성경을 들고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절대로 하지 않으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거나 귀신을 쫓아내신 후에
절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구름처럼 모여드는 사람들을 피하여 잠적하시기도 하셨고,
기적만을 바라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만을 가르치셨습니다.

둘째, 남의 속을 떠보는 것, 상대방의 생각을 알아보는 것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주위를 맴돌면서 유일하게 한 것은 예수님을 떠보는 것이었습니다.
왜요? 꼬투리를 잡아 없애버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살리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자신이 우월하다는 생각입니다.
언제나 가장 낮고 천한 부류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들을 살리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려는 생각에 골몰하셨습니다.

종교개혁의 조짐이 일어나자 교황은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구교와 신교의 대립입니다.
그래도 각처에서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루터파, 깔뱅파, 국교회파, 재세례파 등등등.
그런데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우월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며
서로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주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신교와 신교의 대립입니다.
미국은 신교 내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간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가라하신 길, 진리의 길을 그저 가셨을 뿐입니다.

내가 옳은 길을 간다고 해서 우월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옳은 길을 보여주시고 가게 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열심히 갈 뿐입니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세력을 확장하는 일, 남의 속을 떠보는 일,
내 것이라 여기며 나만 누리는 일, 무엇보다도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일입니다.
이런 것들은 비본질적인 것이고 악한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 듯하게 거룩한 양 포장해도 그 일에 몰두한다면
우리들은, 바리새인들처럼, 왈도를 파문하고 박해한 교회처럼,
재세례파를 화형시킨 또 다른 개신교도들처럼, 끝내 사탄의 하수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당부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끝없이 높아지려고 했던 루시퍼와 그 무리들은 무저갱, 끝이 없는 동굴,
곧 가장 낮고 어두운 곳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낮아지셨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최고로 높이셨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이것이 우리들이 반드시 따라할 삶의 원리입니다.

우리들이 여기에 모인 이유는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 예수님의 생각과 마음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
예수님처럼 낮아지기 위해서, 그래서 남들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래서 이 세상을 제대로 신나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그렇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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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앙상믈 | 작성시간 10.10.28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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