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영적말씀 39일째
4월22일 금요일
제목 : 십자가의 못박힘
본문 : 마27:27-56절
십자가의 속성이 없는 모든 성경말씀은 죄를 속하는 권세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의 모든 것을 우리 인간을 위하여 내어 놓으신 것은 오늘의 본문의 말씀을 잘못이해하게 되면 주님이 받으신 십자가의 저주를 헛되게 하여 나와 주님이 관계가 없게 됨으로 내 심령을 먼저 십자가의 속성을 가진 마5장에서 말하는 팔복의 심령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권세가 없는 말씀이 지식적인 깨달음을 주게 되어 감정적인 열정이나 감동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의 속사람의 심령 밑바닥에 깔려있는 속사람의 의식이 변화를 일으키지 못해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는 참 빛을 받을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으로 십자가의 속성이 있는 말씀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지면 진리의 영으로 말미암아 육을 이길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십자가의 사건이 오늘날은 나에게 잃어나야 하기 때문에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 올 때 넘어지는 자들을[마13:21] 말하고 있고 또“계11:8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고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심령에서 주님이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오늘 본문은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나 그 당시의 사건으로 끝나게 되어 주님과 내가 상관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지금 현제의 나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되어야 예수와 함께 나도 죽고 예수와 함께 내가 부활하는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전개되는 사건은 그 옛날 사건이 아니라 오늘 나의 심령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성경을 보면서 마음을 열고 주님의 세계로 들어가서 주님과 내가 함께 먹고 마시면서 함께 동거 동락하여 먹고 마시는 관계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갑니다.
마27: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마27: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오늘의 이 사건은 이미 2000년 전에 이루어진 사건이지만 내 심령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으로 본다면 이 사건들은 우리 심령에서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전쟁으로서 사단이 진리의 말씀을(예수) 우리 심령에서 죽이기 위하여“그의 옷을 벗기며”라고 하는 것인데“옷”의 영적인 의미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말하기 때문에 우리 심령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사단이 총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홍포를 입히고”라고 하는 것은 홍포는 붉은 색으로 로마 군병들이 걸치는 옷으로서 이는 영적인 희롱으로 세상 왕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는 사단이 득세하도록 주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참새 한 마리도 주님이 허락을 해야 떨어지는 것으로[마10:29] 보면 분명한 것이다.
마27: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마27: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가시 면류과”의 영적의미는 깊은데“가시”는 우리 사람들의 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희 카페에 기록해 옿은 아가서의 가시나무 사랑을 보면 자세하게 설명해 놓았음으로 보면 이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 몸으로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가시면류관을 쓰셨던 것이다.
이 가시면류관을 머리에 쓰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제일 먼저 주님 앞에 올려드리는 대속의 행위로서 분명하게 머리에 쓰셔야 하는 것이다.
그 후“갈대를 그 손에 들리고”라는 말씀에도 영적인 깊은 뜻이 있는데“갈대”란 율법을 뜻하고 정함이 없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이 부족하여 바람(환난)에 흔들리(연단하는)는 갈대처럼(율법적인 믿음) 정함이 없는 것을 주님이 잡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율법이라는 갈대가 되어 이리저리 연단과 고난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널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 고통을 당하면서까지 갈대(나)를 잡음으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래서“오른손에 들리고”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시17:7]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병정들이“그 앞에 무릎을 꿇고 희롱하였다”는 것은 사단의 전술은 오늘날 나에게도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 주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믿음생활을 제대로 하려하면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에 자기도 모르게 굴복하여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유대인의 왕이여 평안 할지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말은 네가 믿음생활을 그렇게 열심히 잘하는데도 환경이나 생활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너와 성령이 함께 한다고 하면서 어찌 그럴 수 있는가를 비웃는 사람들의 비난의 소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그에게 침 뱉는”영적원리는“침”은 사람 속에 있는 이물질로 우리의 심령 속에 있는 더러움을 씻어 주기 위함이며 또“갈대를 빼앗아 그 머리를 치는”이유는 갈대는 앞에 말한바와 같이 율법을 상징하기 때문에 율법이 예수를 정죄하는 것으로서 이는 오늘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율법적으로 또는 신학적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심령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를 입으로는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예수를 정죄하여 신학이라는 틀에 묶어 놓고 그 틀속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예수를(말씀을) 정죄하고 판단하면서 예수를(말씀) 갈대(율법)로 때리고(입으로, 말로) 있다.
마27:31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결국 율법과 세상과 짝하여“그의 옷을 입히고”주님은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서 율법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옥에 갇혀있는 저와 여러분을 구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시는 것이다.
마27: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마27: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마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여기서 말하는“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이란 바로 나를 가리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그 당시의 구레네 사람으로 보면 역사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보게 된다.
지금 마태복음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읽고 여기까지 왔다면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였더니 예수께서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라는 말씀은 설명하면 상당히 길어지지만 이해하기 위하여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사복음서는 각각 하나의 강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우리 심령에서 사대 강(사복음)이 영적으로 완성되면 네게의 강이 아니라 하나의 강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흐르는 생명수 강으로서 달마다 열매를 맺는 상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마태복음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는 상태면 하나의 강을 통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의 쓴 포도주를 주님이 마시지 않은 영적인 상태는 아직 마태복음의 영적인 강물을 마신자라고 하지만 아직 율법의 저주에서 놓임을 받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 율법의 저주에서 놓임을 받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의“요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는 단계까지 말씀을 복음적으로 심령이 먹어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자세히는 저희 카페의 에스겔서와 요한복음에서 자세하게 기록되어 올릴 것이다.
마27:35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마27: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는 영적인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체는 하나님의 보좌요 강이 하나지만 여기서 옷이 찢어져서 나누는 것을 요한복음은“요19:23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것같이 옷은 말씀을 뜻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의 본질은 말씀으로 하나의 강이지만 십자가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옷이 네 깃을 찢어지면서 사대 복음으로 갈라져서 오늘날 영적으로 사대 강이면서도 사복음서인 마태,마가,누가,요한복음이 되었던 것이다.
마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마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그리고“그 머리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기록되는 영적인 원리는 우리의 심령의 깊은 곳에 유대인의 왕이신 주님이 주시는 계7장에서 말하고 있는 성령의 인을 이마에 맞기까지(죄의 패가 걸릴 때까지)환난과 연단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양과 염소를 마25장에서 완전하게 가르는 것처럼 주님의 왼편과 우편의 죄수들이 십자가에서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죄인들이 하나는 좌편에 하나는 우편에 십자가에 달리는 영적인 원리는 따로 있다.
그러므로 이를 영적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이 세상에 처음 잉태되어 태어나자마자 영적인 두 가지의 길로서 인생길을 가게 된다.
그 하나는 예수 안에서의 길과 예수 밖에서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 밖의 길을 가기는 쉽기 때문에 찾는 이가 많이 있어서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가면서도 자기가 가는 길이 사망의 길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사단이 미혹하면서 던져주는 미끼에 걸려 세상 적이면서도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심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이기 때문에 그대로 단으로 묶어 불사르면 끝이 나지만 예수를 믿노라고 교회에 나와서 믿음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선악간의 심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추수는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편에 십자가에 죽는 자는 주님과 함께 내 십자가를 지고 죽은 자로서 회개한자이며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는 것이다.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욕심을 부리고 자기를 위하여 살게 되어있기 때문에 죄인인데 자기가 끝까지 의인인 것처럼 생각하여 행동한다면 주님은 죄인을 구하러 오신 분으로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면 나도 못이 박혀야하는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자.
마27: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여기서도 놀라운 것은“지나가던 자들은”이라는 말의 영적인 뜻은 우리 인생의 그냥 그렇게 허무하게 인생을 살다가 가는 인생들을 말함으로“자기 머리를 흔들며”라는 말로서 나는 주님과 상관이 없음을 영적으로 시인하는 행동이며 무언의 말로서“예수를 모욕하여”자기의 영혼을 사단에게 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27: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마27: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마27: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마27: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마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영적으로 주님의 말귀를 들어도 듣지 못하는 유대인들(율법적인 사람)은 주님이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짓는 영적인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이처럼 조롱하는 것이다.
이는 돌 위에 돌 하나라도 남김없이 무너뜨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으로서 돌이란 율법을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의 육성과 율법을 무너뜨려야 새로운 성전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는 말은 이는 복수로서 좌편과 우편이 아직 마태복음에서는 갈라지지 않은 상태로서 영적으로 누가복음까지 하나로 연합이 되어야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너무 길어져서 간단히 설명하겠다.
마27:45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하더니
마27:46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27: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마27:48 그 중에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융을 가지고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거늘
마27:49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여기서“온 땅이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는 히브리어의 숫자의 개념을 보면 9는 뜻이 뱀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어두움이 임하였다는 것은 사단의 역사가 최고조에 달하여 주님의 죽음이 임박했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주님은“엘리 엘리 사막다니”라고하시면서 하나님이 버리셨다는 뜻이 되겠지만 또 한 가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영적인 뜻은 끝까지 아버지가 나를 붙잡아 달라고 하는 뜻이 포함된 것이라고 본다.
마27: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이에“성소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이는 문자적이나 눈에 나타나는 현상은 구약의 성소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지만 영적으로는 내 심령을 가리고 있는 휘장을 둘로 찢어 놓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주님이 계3장20절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들어가서 더불어 먹고 마시는 관계를 이루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땅이 진동하고”우리 심령이 흔들리는 것을 의미하며“바위가 터지고”라고 하는데 이는 환난과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율법적인 심령이 갈라져서 참 빛을 받을 수 있는 상태를 만들었다는 뜻이 된다.
마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그래서“무덤이 열리며”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주님은 우리의 심령을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심령이 율법의 속성을 가지고 정죄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실상은 죽어있는 자로서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라고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문자적인 사건도 있었지만 오늘날 영적으로 죽어 있고 잠자고 있던 심령들이 복음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마27: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마27:54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되는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가로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27: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마27:56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주님이 부활 후에 무덤에서 나와서“거룩한 성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은 예루살렘 성을 거룩하다고 하기보다 예수의 죽음으로 거룩하게 된 심령성전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서“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고하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사람과 세상 사람들이 보아도 알 수 있도록 서로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었노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러므로 성경을 문자적으로도 보아야 하지만 영적으로 보지 못하면 말씀은 역사적인 사건으로 전락하여 의문으로 해석하게 되고 그 나라의 풍습적인 사건을 적용하여 한쪽으로 치우치게 됨으로 성령 안에서 예수의 죽임이 오늘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내가 십자가에서 죽는 사건이 되지 못하면 주님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죽음이 오늘날 나의 죽임이 되어 팔복의 심령을 가지게 하는 것이 주님의뜻이다.
너무 길어져서 줄이는 만큼 줄여서 말씀을 썼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하지 못하였군요.
사순절에 하루 전에 꼭 한편씩 올리겠습니다.
은혜 받으시고 자주 들러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cafe.daum.net/77991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