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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포도원의 작은 여우란?

작성자시온산 열매|작성시간11.07.11|조회수48 목록 댓글 0

 

포도원의 작은 여우란? 

본문 아2:15절

 

성경의 아가서는 영적인 아주 깊고 깊은데 이는 구약에서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이지만 그중에 특히 아가서는 성도들의 믿음의 상태가 율법 속에서 복음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그려주고 있는 책으로서 예수님의 성품과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복음적인 서술의 기법을 가진 생명의 책인다.

 

그러므로 이 생명의 책인 성경 속에 문자로 기록된 내용이 성경의 책속에 문자적인 글로 책이 덮여 있으면 이 말씀의 운동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의 음성을 성경을 통해서는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성경을 열어서 눈으로 보고 읽기 시작 했을 때 비로소 말씀이 사람의 심령에서 운동력을 가지게 되어 나를 진리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 책속에 아무리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해고 읽지 않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나 소용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도 성경을 읽을 때 말씀이라는 인간의 문자로 기록된 말씀이 내게 보여 지는 상태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인간의 초등학문인 지식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율법적인 심령의 소유자가 되어 하나님을 알되 지식적인 죽어있는 하나님을 알게 되어 하나님을 믿지만 여전히 그 심령은 강퍅하여 원망과 불평과 비판과 정죄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여 한입에서 단물과 쓴물이 나오는 율법적인 믿음아래 있는 자가 되어 주님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문자적인 해석이 아니라 문자 속에 주님의 의도와 실체를 깨닫고 그 생명을 주는 복음의 실체를 먹는 자가 복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서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생명적인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서로 나누기를 원한다.

 

아2: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

 

처음의 서두부터“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지난시간에 말씀드린“바위틈 낭떠러지에 있는 나의 비둘기를 부르시며 네 소리를 듣게 하라”고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복음에 속하여 입술의 열매를 내게 될 때 비로소“우리를 위하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인데 이는 곧 우리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단의 개입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래서“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영적으로 깊은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애5:18 시온 산이 황무하여 여우가 거기서 노나이다

 

이처럼 시온산은 예루살렘의 성전을 말하지만 영적으로 우리의 심령성전을 말하기 때문에 이는 여우가 우리 심령에서 놀고 있는 것을 말한다.

 

또 다른 말로는 율법적인 선지자들의 마음이 황무지로서 이러한 율법적인 상태가 짐승의 속성을 가진 여우로 표현하고 있다.

 

겔13:4 이스라엘아 너의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으니라

 

이처럼 율법의 정죄의 속성을 여우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또 다른 말로 표현한 곳을 찾아보기로 한다.

 

눅13: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13:32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이처럼 율법적인 정죄의 속성과 동질의 속성을 가진 세상의 참소의 속성이 결탁하는 것을 여우라고 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나오는 여우는 거짓 선지자를 뜻하므로 이것이 율법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삼손이 여우 삼백을 잡아다가 꼬리와 꼬리를 매고 꼬리사이에 홰를 달아서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을 다 태워버리고 감람원까지 태워버린 것이다.

이처럼 여우는 세상과 율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말이다.

 

그래서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눅9: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이 말씀을 보면 더 확실한 것은“여우 굴”이란 율법적인 믿음을 가진 자의 심령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는 율법적인 속성인 원망과 불평과 정죄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우리의 심령성전의 주인이 되시는 교회의 머리로서 오실 수 없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주님이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여우는 영적으로 율법적인 속성인 정죄를 대표하는 말로서 본문의 다음 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포도원을 허는”이라는 말씀을 하시므로 포도원은 우리의 심령의 밭이 포도원으로서“사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포도원인 우리 심령에 정죄하는 율법적이며 혼적인 것들이 여우라는 것이다.

 

신22:9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

 

그래서 우리의 심령의 포도원에 두 종자를 부리면 안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두 종자는 복음과 율법을 말하므로 잘못뿌린 씨가 율법이기 때문에 이 여우인 율법이 하나님의 포도원을 헐어 버리는 것은 양의 울타리를 헐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곧 두 종자를 우리 심령에 뿌린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우리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니라”라고 하시는데 우리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율법적인 믿음의 밭에서 이제 복음으로 넘어가는 상태를 보여주시는 것이 이 꽃을 피워 아름답게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환난과 연단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이는 아직 율법적인 믿음을 막 지나려고 하고 있는 영적인 상태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꽃은 영적으로 보면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서 웃음꽃이 피었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이 꽃은 언어를 상징하는 말로서 율법적인 말이 벅으로 오기위하여 나오는 복음적인 언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도원을 우리의 심령을 말하고 여우는 율법의 원망과 정죄의 속성과 세상의 참소의 속성을 의미하므로 우리의 심령이 율법적인 믿음이 성장하여 믿음의 열매를 맺기 위하여 꽃을 피울 때 이 영적 여우라는 율법의 속성을 잡아내는 과정이 말씀을 인해서 찾아오는 환난과 연단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 여우를 잡아내고 마음과 입술의 열매를 내어 주님의 신부로 단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포원을 허는 작은 여우로서 이 작은 여우인 율법 때문에 심령의 포도원에 구멍이 나고 양의 울타리가 허물어져서 절도와 강도들인 원망 라는 말과 불평과 비판과 정죄하는 말을 하는 언어를 잡아내는 것이 영적으로 여우를 잡아내는 말로서 그 여우를 잡아내지 못하면 그 심령을 통해서는 입술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됨으로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이 여우를(율법) 잡아내고 마음과 입술에 열매를 내라고 주님이 재촉하시는 말씀이다.

 

 

할렐루야!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은혜 받으시고 자주 들러주세요.

감사합니다. ☞ http://cafe.daum.net/7799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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