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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 고린도전서 14:13~25 알아듣게 전해야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작성자주바라기|작성시간26.06.10|조회수63 목록 댓글 0

https://www.youtube.com/live/wED5q6S3EuA?si=eyf3FLNl4EfeiEUB

 

 

(고전 14:13~25)알아듣게 전해야 모두에게 유익합니다.

방언과 통역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방언과 예언의 기능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아니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라

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24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

(고린도전서 14: 13~25, 개역개정)

* 알지 못하는 자들(23절)  은사를 받지 못한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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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방언을 들어도 뜻을 알지 못하면 덕 세움을 받지 못하기에, 남을 가르치는 데는 일만 마디 방언보다

다섯 마디 말이 낫습니다. 방언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이고 예언은 믿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예언은 마음의 숨은 일을 드러내 믿지 않는 자도 주님께 경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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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체를 세우는 이해 가능한 말 고린도전서 14장 13~19절

 

13 그러므로 방언을 하는 사람은 통역할 수 있기를 기도하십시오.

14 만일 내가 방언으로 기도하면 내 영은 기도할지라도 내 이성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15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또한 이성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한 이성으로 찬미할 것입니다.

16 만일 그렇지 않고 여러분이 영으로만 감사한다면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은 여러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여러분의 감사에 “아멘” 할 수 있겠습니까?

17 여러분이 감사를 잘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18 내가 여러분 모두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하므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9 그러나 나는 교회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 방언으로 1만 마디 하는 것보다 깨달은 이성으로 다섯 마디 말하기를 원합니다.

-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방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공동체의 유익으로 연결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우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하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다면 함께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고, 덕을 세울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도 방언을 많이 말하지만 공동체의 예배에서는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다섯 마디의 깨달은 말을 더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진리를 분명히 전달하여 믿음을 세우는 말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세우고 이해시키기 위해 말하고 있나요?

내 기도와 섬김은 공동체에 실제적인 유익을 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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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믿음의 기준 고린도전서 14장 20~25절

 

20 형제들이여, 생각하는 데는 어린아이가 되지 마십시오. 악한 일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십시오.

21 율법에 기록되기를 “내가 방언을 말하는 사람들의 혀와 외국 사람의 입술을 통해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22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표적이며 예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23 그러므로 만일 온 교회가 모여 모두 방언으로 말한다면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듣고 여러분에게 미쳤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24 그러나 만일 모두가 예언을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듣고는 모든 사람에 의해 잘못을 질책받고 심판을 받아

25 그 마음속에 숨은 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하며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가운데 계십니다”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 바울은 성도들에게 생각하는 데는 어른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자기 만족과 자기 과시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지만, 공동체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비신자가 예배에 참석했을 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만 한다면 혼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예언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내고 하나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진리가 나타나는 곳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신앙생활 속에서 나의 만족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우선하고 있나요?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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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참된 의미의 방언

일반적으로 방언은 영적 무아지경의 상태에서 나오는,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천상의 언어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래서 방언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셨음을 가장 쉽게 확인하는 증거처럼 여겨집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경험은 확실히 신비감을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방언을 이처럼 신비로운 외적 현상으로만 이해하기에,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방언과 관련된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방언을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삼고 서로 우열을 따져, 방언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열등감에 빠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방언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공개 장소에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방언으로 일만 마디를 하는 것보다, 자신이 먼저 분명히 깨닫고 상대도 깨달을 수 있는 말 다섯 마디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권면했습니다. 공개 장소에서까지 방언으로 기도하거나 말하려는 것은 자기 과시를 위한 교만일 뿐, 덕을 세우는 참된 의미의 방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개인의 삶이 새로워지는 것은 물론이요,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새롭게 구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상대와의 소통이 반드시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사랑도, 평화도, 공생도, 전도도 모두 소통의 토대 위에서 피어나는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 한 절 묵상

14장 20절 | 성도는 악에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무지하되, 지혜에는 어른처럼 성숙해야 합니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어른 같은 성숙함이 균형을 이룬 사람이 건강한 신앙인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지혜는 영악함을 의미하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 뜻을 분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감정과 본능을 따르면 악에 휘둘리지만, 진리에 뿌리내린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도 올바른 방향을 찾습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지혜는 우리를 빛 가운데로 인도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무엇보다 귀한 하나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사모하며 간구합니다. 복음을 가로막는 장벽이 아닌, 복음과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길 원합니다. 온 교회가 진리를 명확히 드러내어 세상 모든 사람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소서.

 

고린도전서 14장 13~25절에서 바울은 방언과 예언의 목적을 비교하며 공동체의 유익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방언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개인의 신앙에 도움을 주지만, 통역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반면 예언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교회를 세우고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어린아이처럼 자기 유익만 구하지 말고, 공동체를 생각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특별한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은사는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데에는 어른이 되라” 고린도전서 14장 20절

신앙의 성숙은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경험했느냐보다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느냐로 드러납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만, 어른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먼저 생각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은사를 자랑하는 데 머물지 말고, 교회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을 할 때 사랑이 흘러갑니다. 내가 드러나는 것보다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을 기뻐할 때 공동체는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오늘 하루도 나의 만족과 인정받음을 구하기보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삶을 통해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고전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살아가면서 강퍅해진 나의 마음을 감싸주는 사랑의 말 한마디를 듣는 것은 큰 은혜입니다. 반대로 사실은 맞지만 사랑이 없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판단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해해 주고 공감해주는 사람 곁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바울은 권면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더 잘 찾아내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능력입니다. 선과 악의 기준으로 서로를 재단하는 순간 다툼과 분열이 생기지만, 긍휼과 은혜로 서로를 품기 시작하면 회복과 생명이 일어납니다.

 

당연히 죄와 악을 발견했다면 잘못된것이라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하셨던 방식처럼,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말하고, 권면하되 정죄하지 않으며, 부족함을 보더라도 회복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함을 묵상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는 옳은 말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으로 말하는 공동체여야 함을 기억하고 오늘도 저는 선과 악을 따지며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6월 10일 오늘의 말씀 명언 고린도전서 14장 13~25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복음을 전하라. - 존 웨슬리

"나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말하듯 설교했다." - 리처드 백스터

 

영적인 말도 이해되지 않으면 생명을 전달하지 못한다. - 워치만 니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은 힘 있는 말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말이다. - 헨리 나우웬

 

교회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언어가 아니라 복음을 보여 주는 삶으로 말해야 한다. - 레슬리 뉴비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입술은 놀라운 말을 하는 입술보다 사람을 세우는 입술이다. - 삶을 노래하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0절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어른이 되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제 유익을 위해서라면, 온갖 거짓과 술수를 마다하지 않고 이런 사람을 지혜롭다고 부추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유익을 따르는 세상 처세술에 한없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남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장성한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나는 어떤 일에 더 관심이 있고, 더 성숙한 모습을 보입니까?

21-26절 예배의 모든 행위가 덕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방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하고,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한다’는 말씀(참조. 사 28:11)을 들어, 방언은 불신자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여 심판에 이르게 하고, 예언은 신자를 듣고 깨닫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있는 구도자나 초신자가 소외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려면, 방언보다 예언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는 방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39절), 찬송, 말씀, 계시, 방언 등 예배의 모든 은사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이끌고, 참여하는 이들에게 덕을 세워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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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14:13-25절

본문에 바울은 방언을 할때 통역하라고 말씀합니다
핵심은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언은 영으로 기도하기에 알아 들을수 없습니다

 

그래서 통역을 두어서 알아들을수 있어야 16절 하반절에
"아멘" 할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자신이 방언을 말하지만 방언보다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 그것을 말한다고 말합니다

19절입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내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꺠달은 마음으로 다섯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 보다 나으리라"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방언 하는 것을 꼬집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의 방언에 대해 말씀이 있기전에
방언을 최고의 은사로 생각했습니다 방언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교회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두고 바울은 말합니다 20절에 지혜에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입니다 방언 자기 유익만을 생각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않는 것은
곧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로인해 교회의 덕을 허무는 것이 악이고
그런데 어린아이가 될 것을 말했습니다 역으로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말하면서 방언과 예언이 예배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말씀합니다
방언과 예언이 예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23절에 예배에 모두가 방언을 하고 거기에 초신자가 있다면
초신자는 모두 미쳤다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24절 이하에 그러나 알아들을수 있는 예언을 하게 되면 거기에 초신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책망을 듣고 판단을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정리하면 바울은 방언과 예언을 말하면서 알아들을수 있는 예언으로
예배 공동체를 세우고 예배 공동체를 세우는데
우리의 은사를 사용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언 즉 하니님의 말씀 선포가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예언의 말씀이 되도록 기도 많이 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월9일 전도

 

2

오늘의 말씀해설  

공 예배와 방언(14:13~19) 

그리스도인은 자기중심적 관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에게는 유익하지만, 공동체에는 덕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방언을 결코

과소평가하거나 무익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방언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지만 공 예배 때 방언 사용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합니다.

만약 기도와 찬송과 감사와 가르침으로 구성되는 예배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진행된다면,

누가 감사를 고백해도 다른 사람들이 아멘으로 화답할 수 없고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는 일만 마디 방언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 말이 더 낫습니다.

- 묵상 질문: 방언을 말하는 사람이 통역하기를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교회 지체들에게 유익이 되도록 내가 깨달은 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기도하고 가르치나요?

불신자들과 방언(14:20~25)

교회는 공동체뿐 아니라 밖에 있는 이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자를

늘 염두에 두고, 잃어버린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방언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복음의 문을 막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그 은사를 모르는 사람들의 신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만약 공 예배에서 방언을 하면, 방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불신자들이 보고 미쳤다는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바울은 지적합니다. 공 예배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말을 써야 합니다.

책망과 판단으로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 뜻을 깨닫게 하는 예언을 통해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며 인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은사를 사용할 때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20절)

- 적용 질문: 믿지 않는 사람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 주기 위해 은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아직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게 하시고,

방언을 하는 것으로 믿음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갖지 않게 하소서.

성령의 은사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십자가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바울은 계속 방언과 예언의 은사를 언급하며 은사를 추구하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통역 은사가 필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가능하면 통역의 은사도 받기를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성도는 자신이 방언을 한다는 것에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자기가

말하는 방언이 어떤 의미인지 모른다면 많은 유익을 놓치게 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되어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는 유익이

있으나 자기가 드린 기도 내용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열매를 맺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은 더 풍성한 영적 유익을 얻기 위해

통역의 은사를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영과 마음의 기도

 

바울은 자신이 방언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에 당당하게 방언에 대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축복이나 감사의 내용을 방언으로

기도한다면 듣는 이들이 내용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멘으로 화답하기 어렵습니다.

통역없이 방언으로만 하면 아무리 놀라운 축복의 내용을 담고 있어도 내용을

모르므로 감동과 은혜를 함께 나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방언으로 하는 기도와

마음(일반 언어)로 하는 기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방언과 예언의 효과

 

바울은 동일한 원리를 고린도 교회의 상황에 적용합니다. 방언은 개인적으로

해야 되는데 교회에서 통역되지 않은 방언을 하면 참석한 사람들이 방언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를 조롱하면서 다시는 교회로

돌아오지도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언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기도 하고,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더 깊은 영적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은사를 원래의 목적대로 교회와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 공동체가 열매를 맺는 은사 활용이어야 합니다(13~19절).

방언을 말하는 사람도 자신의 방언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통역하는 은사를 구하라고 권면합니다. 성령의 특별한 영으로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는데, 통역이 되지 않으면 신앙적 깨달음과 영적 성장에 한계가 있어서 바울은 마음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과 마음으로 기도하고 찬송하여 영적 깨달음이 있는 마음의 열매를 맺을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방언으로 기도하고 찬양한다면 다른 사람은 아멘으로 화답하지 못해 함께 유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방언을 절대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방언은 개인에게는 유익하겠지만 함께 듣는 자들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방언으로 일만 마디 말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기 위하여 나의 깨친 마음으로 교회에서 다섯 마디 말을 하기를 원한다...’(19절,새번역)고 선언합니다.

 

모든 은사는 교회에 유익을 끼칠 뿐만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 돕는 도구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방언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 통역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한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깨달음을 주는 예언이 교회 공동체에 더 유익이 된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도 홀로 예배할 때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양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회중이 있는 곳에서 예배 인도할 때 사용한다면 회중들이 바른 예배로 나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함께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바른 은사 활용이 바람직한 은사 활용임을 깨닫게 됩니다

 

➲ 지혜로 질서를 세워가도록 해야 합니다(20~25절).

바울은 방언이 불신자들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그들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포된 복음의 내용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표적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는 자리에서 다 방언으로 말한다면 알지 못하는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 바울은 반문합니다.

 

반대로 예언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유익을 주는데,

들은 모든 사람들에 의해 자기가 죄인이라는 책망을 받고, 모두에게 질책을 받고 심판을 받아서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고 숨겨진 죄에 대한 각성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 대해서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에 있어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불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전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내 자신을 향하여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라고 반응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와 회심이 일어나도록 충분히 그들을 배려한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라는 말이 교회 안에서나 세상 속에서나 동일하게 들리도록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해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혼자만을 위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에게 있는 은사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공동체의 질서를 바르게 세워가는 영적으로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방언은 헬라어로 "γλώσσα"(글롯사)인데, 혀, 말, 외국어 등 다양한 뜻으로 해석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문맥을 살펴야 본 뜻을 알 수 있는데, 본문의 방언은 문맥상 외국어는 아닙니다 외국어라면 통역을 위해 공부하라고 할 일이지 기도하라고 할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고전14:13)

 

또한 외국어라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고전14:9)

따라서 여기서 말씀하는 방언, "γλώσσα"(글롯사)는 하나님께 비밀을 아뢰며 기도하라고 주신 영적인 언어를 말씀하는 것입니다(고전14:2)

 

그러나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면 영이 기도할지라도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통역을 간구하든지, 아니면 영으로 기도할 때에 마음으로도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4:13~15)

 

또한 공적으로는 통역 없이는 방언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함으로 아멘할 수도 없고 감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고전14:16~20) 오히려 나쁜 평판만 만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고전14:21~23)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사랑 안에서 더욱 구할 은사는 예언입니다(고전14:1) 그렇다면 예언은 뭘까요? 예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권면하는 주의 말씀과 위로하는 주의 말씀으로 낙심한 자를 일으켜 세워 주와 함께 힘차게 믿음의 걸음을 걸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고전14:3) 또한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으로 숨은 일들을 드러내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고, 주의 말씀으로 판단과 책망을 받게 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경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알지 못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들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신다 전파하리라"(고전14:24~25)

 

그러므로 우리가 예언을 간구하기 원합니다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고전14:5)

우리가 참 예언을 해야 거짓 예언자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렘14:14~16)

 

또한 어떤 예언보다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 깨어 순종함으로 복 있는 성도 되기 원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계22:7)

 

2026년 6월 10일 기도문

하나님, 제게 주신 은사와 재능이

저를 드러내는 도구가 아니라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을 살리는 통로가 되길 원합니다.

말할 때마다 사랑과 지혜를 더하여 주시고,

행동할 때마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게 하옵소서.

어린아이 같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가게 하시며,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품어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함이 많고 연약함이 많은 저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기다려 주셨기에 오늘의 제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비판하는 마음과 판단하는 습관을 다스려 주옵소서.

다른 사람의 허물은 쉽게 보면서 제 연약함은 관대하게 여기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시고,

사람을 세우기보다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게 하옵소서.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악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하게 하옵소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되,

그 지혜가 교만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시고 사랑과 긍휼로 나타나게 하옵소서.

특별히 제가 속한 가정과 교회가 사람을 살리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서로를 판단하기보다 이해하게 하시고, 정죄하기보다 품게 하시며,

상처를 들추기보다 회복을 돕게 하옵소서. 저 또한 누군가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주는 사람,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하시고,

제 말과 행동을 통해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드러나게 하옵소서.

만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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