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live/RO4_A0jvTLA?si=tKDNL6R8ujkikPxm
부활이 있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2~19)
부활이 거짓인가? 15:12~15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죄와 죽음은 어떻게 되는가? 15:16~19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18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죽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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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시지 못했다면 바울의 전함도,
고린도 성도들의 믿음도 헛것입니다. 또 이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이들이야말로 모든 사람 중에 더욱 불쌍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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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심장, 부활 고린도전서 15장 12~15절
12 그리스도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전파되고 있는데 왜 여러분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고 합니까?
13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리심을 받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4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리심을 받지 못했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되고 또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만일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살리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 고린도 교회 안에는 죽은 자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거짓이 되고 믿음도 헛된 것이라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죄 사함의 길을 열었다면, 부활은 그 구원이 완성되었음을 보여 주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부활 신앙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부활은 복음을 복음되게 하는 '복음의 심장'입니다.
나는 예수님의 부활을 역사적 사실이자 신앙의 핵심으로 믿고 있나요?
내 삶의 기준은 세상의 가치인가요, 부활의 소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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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바꾸는 부활의 능력 고린도전서
16 만일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지 못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살리심을 받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17 만일 그리스도께서 살리심을 받지 못하셨다면 여러분의 믿음도 헛되고 여러분은 여전히 자신의 죄 가운데 있고
18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람들도 멸망했을 것입니다.
19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가진 소망이 이 세상의 생명뿐이면 모든 사람들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 부활은 단지 죽은 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을 것이고, 죽음 이후의 소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품고, 넘어짐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미래의 천국만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거룩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부활의 소망이 오늘 나의 삶에 어떤 힘을 주고 있나요?
나는 죄와 절망보다 부활의 능력을 더 크게 바라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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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악의 힘을 모조리 동원한다 해도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부정하거나 폐할 수 없다. - 레슬리 플린
묵상에세이
신자와 불신자의 죽음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죽음을 이기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긴다.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는 왜 죽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제42문의 답이 정확하게 설명한다.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가 죄짓는 것을 그치게 하고, 영생에 들어가는 통로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죽음의 의미가 완전히 바뀐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칭의의 은혜를 주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하셨다.
죄를 그치게 한다는 점에서 죽음은 신자에게 큰 복이다. 신자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전히 남아 있는 죄성으로 인해 끊임없이 성화를 위한 선한 싸움을 감당해야 한다. 신자는 스스로 죗값을 치르지 않지만, 죄로 인한 고통은 감수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성화는 불가능하기에 우리에게 영적 전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 힘든 전투는 죽음 이후 중단되며, 우리는 그때 완전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반면 불신자는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죄에 대한 결과 아래 머물며, 최종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 신자에게 죽음은 영생에 이르는 통로, 복의 통로이기에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성호_ 두란노
♧ 한 절 묵상
15장 17절 | 부활이 없다면 신앙은 무너집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믿음의 토대임을 분명히 합니다. 고난과 실패, 답답한 현실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부활의 주님이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는 곳에는 죽음이 있고, 부활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부활은 미래의 약속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능력이며, 모든 일을 견디게 하는 실제적 힘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활 신앙을 견지한다면 우리는 일어설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부활 복음을 거부하고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양 사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인생인지 깨닫습니다.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고, 저도 부활에 동참하게 될 것을 확신하며 담대히 살아가게 하소서. 부활 소망으로 오늘 이 땅에서의 여정을 신실하고 기쁘게 걸어가게 하소서.
고린도 교회 안에는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복음의 핵심임을 다시 강조합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사도들의 전파도 헛되고 성도들의 믿음도 헛된 것이 됩니다. 또한 죄 사함과 구원의 약속도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제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부활은 우리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증명하며, 장차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확실한 소망이 됩니다. 부활은 단지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죄를 이기고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의 근거입니다. 성도는 부활의 소망 안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으면 너희 믿음도 헛되고" 고린도전서 15장 17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믿음이 습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지만, 정작 부활의 능력은 잊어버린 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살아 계신 것을 믿는가?"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증거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절망을 소망으로, 실패를 회복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환경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변하는 세상에 있지 않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의 기도도 헛되지 않고, 눈물도 헛되지 않으며, 믿음의 걸음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2026년 6월 일 오늘의 말씀 명언 고린도전서
담대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그의 백성 안에서 일하신다. - 팀 켈러
예수님의 부활은 절망이 결코 최종 결론이 아님을 선포한다. - 오스왈드 챔버스
하나님의 자녀에게 미래는 영광으로 가득 차 있다. - 조나단 애드워즈
하나님을 바라보라. 절망은 하나님 없는 미래를 바라볼 때 찾아올 뿐이다. - 코리 텐 붐
빈 무덤은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설교다. - 레오나드 레이븐힐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날이 올 것을 생각하면 현재의 고난은 가벼워진다. - 존 뉴턴
부활은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이 아니라, 지금도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선언이다. - 삶을 노래하다
십자가가 죄 사함의 문이라면, 부활은 그 문이 영원히 열려 있음을 증명하는 표지이다. - 삶을 노래하다
6월12일 전도
1)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절대근간임을 설명합니다.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들
부활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은 이후의 삶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또 구원을 믿는다고 하면서 죽음
이후의 삶은 부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가르침은 다 받아들일 수 있어도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 필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만약 부활이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부활이 없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자들의 증언이 모두 거짓말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으나 이 사실을 부정해야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도 부활하시지 않았을 텐데 그럼 자기가
경험한 것은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지요.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의 죄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여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불쌍한 사람들
부활이 없다면 바울을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보다 불쌍한 자로 전락
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근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영화에 매달리지 않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불의와 죄악이 넘쳐나고 사탄의 유혹이 폭풍처럼 밀려오는 세상에서
부활은 우리를 살게 하는 참된 소망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부활의 소망을 든든히 붙잡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2)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2절 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고린도 성도 중에는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헬라 철학에 영향을 받은 자들이 몸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상체계에 맞게 복음을 교정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가치관이나 정치 성향, 행동 양식에 거치지 않도록 말씀을 수정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왜곡한 말씀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없습니다. 말씀을 바꾸려 하지 말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바꿔나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13-15절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도 없을 것이고, 바울이 전한 복음도 거짓됩니다. 또 그것을 믿고 전하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살리셨다는 증언도 거짓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죽은 자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우리 신앙을 형성하는 모든 것이 도미노처럼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 안에 역사하시니 이보다 큰 부활의 증거도 없습니다.
16-19절 부활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 땅의 삶이 전부라면, 부활의 생명을 소망하며 나그네처럼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앞서간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희생하며 십자가를 짊어졌던 삶을 어디에서 보상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진 창조 세계가 진실한 만큼, 부활의 생명을 약속하신 하나님도 살아계시고 진실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
부활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으로 죄를 이기는 삶을 살게 하소서.
3)
✔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입니다(12절).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이 선포한 복음의 핵심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의 일부는 육체적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당시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자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결국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파괴하는 행위였습니다. 바울은 이들의 가르침과 거짓된 사상을 배격합니다.
부활이 없으면 결국 구원도 없습니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죽음은 영원한 파멸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이기는 것은 곧 죽음을 이기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죽음을 이기는 것이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분을 믿는 내 자신에게도 죽음을 이길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릇된 이론들과 사상들이 난무하면서 신앙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가져옵니다. 말씀으로 거짓된 것들을 분별하여 복음의 반석위에 굳건하게 서 가야 하겠습니다. 부활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부활은 구원으로 인도하는 영생의 관문입니다. 구원의 시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므로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 구원의 능력을 힘입고 살아가는 삶입니다(13~15절).
잘못된 사상을 주장한 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논박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보이셨고, 무엇보다 바울 자신이 확실한 부활의 증인이 되기에 강력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은 있을 수밖에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만일 ... 하면’이라는 가장의 상황을 통해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전파했던 것도, 믿음도 헛것입니다.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못하셨는데도, 우리가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해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핵심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제가 아니라면 그런 복음을 전했던 것도, 그 복음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평생을 믿어왔던 믿음도 헛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부활은 누가 뭐라 해도 역사적 사실이며, 수많은 증인들이 확증해 준 사건입니다.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던 이유가 뭐겠습니까?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당당했던 이유는 부활의 능력을 소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열정과 소망과 능력을 의지하며 지금 이 시대를 나는 살아가고 있는가? 코로나를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핑계거리로 삼고 있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살펴봅니다. 부활 신앙 때문에 무수한 고난을 당했지만 구차히 살기를 바라지 않았던 어떤 이들(히 11:35)의 신앙을 본 받아 구원의 능력을 힘입어 담대히 오늘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소망하는 삶입니다(16~19절).
16절은 13절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하여 죽은 자가 부활할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14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분리시킬 수 없는 구속적 사건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 결국 영원한 멸망만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 소망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게 됩니다. 만일 성도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그들은 모든 사람 중에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19절)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 생활이 무기력해 지고, 목적도 상실한 무의미한 삶이라고 여겨질 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묵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이 분명함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나’라는 존재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이 땅에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부활에 대해 입술로만 고백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간다 하면서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아등바등 살아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부활은 다른 사람의 밭에서 농사를 짓다가 발견한 보석과 같은 것입니다. 나의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산 것처럼 나의 삶의 전부를 바쳐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입니다. 간밤에 잘 자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부활도 이 세상에서의 모든 수고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광명한 새 아침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내 인생을 투자하기를 결단해 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헛된 거짓 사상에 걸려 넘어져 나의 신앙을 빼앗기지 않도록 분명하고 확실한 부활의 소망 속에서 살아갈 뿐만 아니라 기쁨과 행복의 인생으로 인도하시는 부활의 능력을 전하고, 누리는 삶이 될 수 있기를(고전 15:12~19절)...
4)
헛되이 믿는 것 중에 최악은 부활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전15:12) 그러나 부활이 없으면 믿음이 헛되게 되며, 부활을 부인하면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 되어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3~19)
그러나 우리가 믿는 진리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래서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 후의 부활의 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의 자격조건은 부활 전파였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1:22)
5)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걷게 했을 때에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두 사도를 주목하자 베드로가 즉시 전파한 것은 십자가 후의 부활의 도였습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행3:12~16)
즉, 앉은뱅이가 일어선 표적을 자랑하기보다, 십자가 후의 부활의 도 전파하기를 우선했던 것입니다 그 때에 마귀가 제사장들을 격동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게 했는데, 그 이유 역시 앉은뱅이를 일으킨 표적 때문이 아니라, 십자가 후의 부활의 도 전파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행4:1~4)
또한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처벌할 방법이 없어서 십자가와 부활의 도를 전파하지 말라고 위협하고 석방했을 때에 보고 들은 것을 전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선포하고, 무리가 함께 기도했을 때에 모인 곳이 진동하고 무리가 다 성령충만을 받아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무슨 은혜를 받았기에 그렇게까지 한 걸까요?
십자가 후의 부활의 도 전파함을 듣고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행4:19~37) 그래서 지금도 마귀는 부활의 도를 잊어버리게 하려고 십자가의 도를 잊어버리도록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잊어버린 자는 자연스럽게 부활도 잊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시작은 십자가요 마지막은 부활이며, 우리가 받는 은혜의 알파는 십자가요 오메가는 부활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빌3:10~14)
6)
오늘의 말씀해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15:12~15)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죽은 자의 부활은 당연히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이후에 이루어질
성도의 부활을 예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에는 예수님의 부활은 믿으면서도
정작 다른 사람의 부활은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부활한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사도들이 전한 것이나 성도의 믿음도 모두 헛것이며 사도들은 거짓 증인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셨으며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를 부활의 능력으로 살리십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 묵상 질문: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요?
- 적용 질문: 인간의 상식과 경험을 초월하는 부활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15:16~19)
부활은 기독교의 기초며 전제입니다. 만약 부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의 체계는
무너지게 됩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된다고
단언합니다. 성도는 부활의 능력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죄로부터 온전한 구원을 받으며,
풍성한 삶에 도달합니다. 아무리 치명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큰 죄인일지라도, 부활의 능력 안에 있으면
참된 회복과 부흥을 맛볼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에게 현실의 고난과 역경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하는디딤돌입니다. 지치고 힘든 일이 많을수록 부활을 사모하며 천국의 영광과 기쁨을 기대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 묵상 질문: 이 세상의 삶이 전부라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에 불과할까요?
- 적용 질문: 부활에 대한 확신은 내게 어떤 소망과 평안을 주나요?
오늘의 기도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사셔서 저를 심판 아래 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건져 내신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에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생명 되신 주님을 믿고 부활을 소망하게 하소서.
2026년 6월 13일 기도문
하나님, 저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활의 진리를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믿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살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죄와 절망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오늘도 거룩하게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제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빈 무덤을 기억하게 하시고,
죽음을 이기신 주님 안에서 담대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바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영원을 바라보기보다 눈앞의 문제와 현실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이 세상의 형통과 평안만을 구하는 신앙에 머물지 않게 하시고, 부활의 소망 위에 굳게 서게 하옵소서.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심을 더욱 확신하게 하시고, 상황과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제 믿음이 세상의 지식과 이성에만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말씀 위에 굳게 세워지게 하옵소서. 이해되지 않는 순간에도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게 하시고, 보이지 않아도 살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또한 누군가 제게 부활에 대한 소망을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고백할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삶의 모습으로도 부활 신앙을 증거하게 하시고,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소망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영원한 생명을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이 땅을 지나 하늘 본향을 향해 걸어가는 순례자로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