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live/2Y2NZrwqhfI?si=7cGySiySoSgT30T2
(고전 15:29~34)고난을 인내하고 죄를 이기는 부활 소망
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이유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
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깨어 의를 행할 이유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린도전서 15: 29~34, 개역개정)
*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 바울의 삶이 항상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음을 말한다.
끊임없이 당하는 고난과 위협을 죽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32절) 여기서 맹수는 에베소 원형 극장에 있는 실제 맹수보다는,
대적자의 핍박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이 로마 시민으로서 맹수와 싸우는 처벌을 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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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바울은 죽은 자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죽은 자들을 위해 세례받는 행동이나 믿는 자들이 위험을 무릅쓰는 삶이 헛될 것이라고 전합니다. 부활이 있기에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단언합니다. 또 악한 친구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짓지 말라고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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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무릅쓸 수 있는 이유 고린도전서 15장 29~32절
29 만일 부활이 없다면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세례 받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만일 죽은 사람들이 전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왜 그들을 위해 세례를 받는 것입니까?
30 그리고 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위험을 무릅쓰겠습니까?
31 형제들이여,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내 자랑인 여러분을 두고 단언합니다만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32 만일 내가 에베소에서 인간적인 동기로 맹수들과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것이니 먹고 마시자”라고 할 것입니다.
-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 복음을 위해 위험을 감수할 이유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갔고, 에베소에서는 맹수와 싸우는 것 같은 극심한 고난도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부활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성도에게 인내할 힘을 주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은 현재의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다. 복음을 위한 수고와 헌신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부활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소망을 바라보고 있나요?
부활 신앙은 오늘 내 삶의 선택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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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의를 행하라 고린도전서 15장 33~34절
33 속지 마십시오. 나쁜 친구들이 좋은 습관을 망쳐 버립니다.
34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기 위해 내가 이런 말을 합니다.
- 바울은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힌다"라고 경고합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쾌락과 만족만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도는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순간의 즐거움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해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잠에서 깨어나듯 영적으로 깨어 의를 행하라고 권면합니다. 부활의 소망은 죄를 가볍게 여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거룩한 삶으로 이끕니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거룩하게 살아갑니다.
나의 믿음과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기 원하시는 의로운 선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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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세이
☑️ '지금' 누리는 영원한 생명
"다 왔어요?" 이 말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말을 해 보지 않은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궁극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기다려야 할 것이 많다. 난민들은 거처가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굶주린 아이들은 먹을 것이 생기기를 기다려야 한다. 직장을 잃은 사람은 새로운 직장을 얻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늙어 가는 얼굴을 거울로 보는 사람은 자신이 아직 ‘저곳’(하늘나라)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우리는 이미 ‘저곳’에 도착했다. 아니, ‘저곳’이 ‘이곳’으로 왔다. 탄식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들어왔다. 실망과 외로움, 썩음이 존재하는 한복판에서 결코 나를 버리지 않을 영원한 친구 되신 분이 내 곁으로 오셨다. 은혜의 선물로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친구가 되었다. 내게 임한 그리스도의 부활 권능을 아는 것(빌 3:10), 이것이 곧 영원한 생명이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영원한 삶을 ‘지금’ 살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일상에서든 고난 속에서든 주님의 부활 능력으로 ‘지금’ 영원에 참여할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다.
♧ 한 절 묵상
15장 31절 | 제자도의 본질은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는 고백을 통해, 제자의 삶이 자기 부인의 연속임을 드러냅니다. 죄의 유혹을 간과하면 죄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성도는 옛 자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죄와의 싸움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성숙은 옛 자아의 모습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날마다 죽는 과정 없이는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날마다 자아를 못 박을 때, 주님 안에서 날마다 사는 인생이 됩니다.
♧ 오늘의 기도
주님, 부활 능력도, 소망도 없는 세상 사람들처럼 저도 현실에 매몰되어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죽음 너머에 영원한 삶이 있음을 기억하며 육체의 만족을 좇는 마음을 멈추게 하소서. 매일 죄에 대해 죽고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고린도전서 15장 29~34절에서 바울은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도 의미를 잃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는 복음을 위해 수많은 위험과 고난을 감수했지만, 부활이 있기에 그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활 신앙은 미래의 소망일 뿐 아니라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먹고 마시자"며 육체의 만족만을 추구하지만, 부활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잘못된 가르침과 악한 영향을 경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부활의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의를 행하게 하며, 오늘의 삶을 더욱 가치 있고 거룩하게 만듭니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고린도전서 15장 34절
부활 신앙은 죽은 뒤 천국에 가는 티켓이 아닙니다. 부활 신앙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까지 바꾸는 능력입니다. 만약 죽음이 끝이라면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아도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우리에게도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의 선택과 말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현실이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정직하려고 노력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의를 선택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도 부활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십시오. 세상은 눈앞의 유익을 따라 살라고 말하지만, 성도는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의 오늘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누군가 내 수고를 알아주길 원하고, 내가 가진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 하나님의 칭찬보다 사람의 칭찬이 더 중요해질 때입니다. 그때부터 비교가 시작되고, 자랑이 생기며, 인정받지 못하면 서운함과 억울함이 찾아옵니다.
돌아보면 저 역시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때로는 드러내놓고 자랑하지 않더라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을 원망하거나 섭섭해하는 모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바울은 뛰어난 학문과 가문, 지도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력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삶을 포기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랑과 자기 의, 자기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신앙의 가장 큰 싸움은 세상과의 싸움이 아니라 내 자신과의 싸움인지도 모릅니다. 내 자존심이 죽지 않으면 작은 말에도 상처받고, 내 욕심이 죽지 않으면 주변을 힘들게 하며, 내 교만이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보다 내 공로를 앞세우게 됩니다.
‘나는 날마디 죽노라’ 묵상 생활을 해오면서 나도 늘 다짐해보는 말이기도 합니다. 내가 죽을수록 예수님이 드러나고, 내가 내려갈수록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듯이, 자기 부인이 없는 영적 성숙도 없습니다. 오늘도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6월 15일 오늘의 말씀 명언 고린도전서 15장 29~34절
믿음은 폭풍을 없애지 않지만 폭풍 속에서도 견디게 한다. - 찰스 스펄전
천국을 향한 길에는 십자가가 있지만, 십자가 너머에는 면류관이 있다. - 존 번연
고난은 그리스도인의 훈장이 아니라 제자의 길이다. - 디트리히 본회퍼
영원을 보는 사람은 현재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 A. W. 토저
예수님을 바라보라. 그러면 두려움보다 소망이 더 커질 것이다. - 코리 텐 붐
죄의 유혹은 순간을 약속하지만, 부활의 소망은 영원을 약속한다. - 삶을 노래하다
깨어 있는 성도는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내린다. - 삶을 노래하다
부활 신앙은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믿음이 아니라 오늘을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 삶을 노래하다
1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9-34절 우리가 절제하고 희생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이유는 우리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을 통해 지속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고난을 자처하며 산 것입니다. 어떤 이들의 말처럼,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거나, 몸은 악한 것이기 때문에 영만 부활하게 된다면, 사는 동안 고난을 피하고 몸의 쾌락을 쫓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일지 모릅니다. 고린도 교회 주변에도 이런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속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선한 행실을 지켜낼 자신이 없다면,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혹시 타락한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 부활의 소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내 일상을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기도
지금 순종하는 삶이 부활의 생명으로 이어질 것을 믿으며, 현재의 고난을 감내하게 하소서.
2
부활이 없다면, 세례도 받을 필요 없고, 모든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는 믿음도 쓸데 없는 것이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옛 사람을 자기 십자가에 못박는 십자가의 도도 의미 없는 것입니다(고전15:29~31)
그러나 부활이 있다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우리의 세례와 믿음과 십자가의 도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부활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끝이니 오늘 먹고 마시자며 허랑방탕 세월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깨어 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15:32~34)
참으로 주 안에 자던 영혼들이 깨어나고, 우리도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에서 주를 뵙고 주 앞에 모일 날이 얼마남지 않았으니, 깨어 의를 행하기 원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13:11~14)
깨어 의를 행하고 범죄하지 않기 위해,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시4:4)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히12:4)
주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두며,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정의와 긍휼과 겸손을 사랑하여 깨어 의를 행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8)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로 부활과 영생의 하나님 나라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5~11)
3
➲ 부활의 확신을 결단해야 합니다(29~34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세례를 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을 대신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 자체가 부활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기에 부활을 부정하는 그들의 견해와 논리는 모순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활이 없다면...’을 강조하면서 부활의 확실성을 증언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고백 속에는 바울 자신이 겪는 고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죽음을 무릅쓰는 이유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데 치중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속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어떤 글에 보니 ‘부활의 삶이란 현재 속에서 부활의 미래를 보는 것이다. 시간 속에 영원의 씨앗을 심고, 죽음을 몰아내고 생명을 싹틔우는 삶이 부활의 삶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확신을 가질 때, 내 인생의 삶은 의미가 있는 인생이며, 가치 있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당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죽겠다.. 죽겠다...’하더라도 바울만큼이나 날마다 죽는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움은 겪고 있는 않을 것입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대부분은 내 자신과 관련된 고난이겠죠.. 그러므로 바울이 겪는 고난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심각한 위험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두려움 없이 주님을 섬겼던 바울처럼 부활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오늘을 인내하며, 광명한 내일을 소망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복음은 내 자신의 삶을 지탱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내 자신의 삶은 부활의 확신을 결단하는 삶입니다.
오늘도 생명력 있는 믿음의 삶을 위해 부활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삶을 회복시키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은혜를 결코 놓치지 않는 영적 충만함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고전 15:20~34절)...
4
미래의 부활
예수님은 부활로써 인간에게 주어진 운명, 즉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종노릇하는 고통스런 운명을 깨뜨리셨습니다. 사탄의 지배 아래 놓인 죄인들을
십자가의 권세로 해방시켜 주시고 죄와 사망에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주님을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 그분과 영원한 영광을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비록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예수님의 부활로써
보증하신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부활을 소망하며 죽음도 무릅쓰고 충성했던
것처럼 우리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슴에 새기고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며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면 지금도 부활을 맛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과 용서, 그리고 충성으로 나타나는 부활의 삶을 살고, 주님 다시 오실 때 맞이할 최후의 부활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5
오늘의 말씀해설
부활이 없는 삶의 허무함(15:29~34)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인생은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모든 신학과
윤리는 헛것이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살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논증으로 ‘죽은 자를 위한 세례’를 언급합니다.
물론 바울이 이 관행을 인정한 것은 아니며, 부활이 없다면서 죽은 자를 위해 대신 세례를 받는 당시 관행이
모순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온갖 위험과 고난을 감수하며 복음을 전한 이유는 죽음 이후에
더 나은 부활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부활이 없다면 허무주의나 쾌락주의가 우리를 기다릴 뿐입니다.
- 묵상 질문: 죽은 자의 부활과 깨어 있는 삶은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 적용 질문: 방종하지 않고, 날마다 깨어서 의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부활의 산 소망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가지인 제가
항상 붙어 있는지 점검하게 하시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짓지 않고 의를 행하도록 날마다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2026년 6월 15일 기도문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소망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매이지 않게 하시고,
부활의 약속을 붙들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려움과 시험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시고,
죄의 유혹보다 의의 길을 선택할 용기를 주소서.
악한 영향에 흔들리지 않게 하시고,
늘 깨어 주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부활의 능력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 앞에서 제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며 살아왔고,
하나님보다 제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했던 교만한 마음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저 또한 날마다 저 자신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제 자존심과 욕심, 교만과 자격지심,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주님의 손에 맡겨 드립니다.
특별히 겸손한 척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않게 하옵소서.
천국의 상급과 하나님의 칭찬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하시고,
세상적인 자랑보다 십자가의 은혜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 제가 죽어야 가정이 살고, 제가 낮아져야 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제 주장보다 화평을 선택하게 하시고,
제 권리보다 사랑을 선택하게 하시며, 제 유익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부활의 능력으로 제 안의 옛사람을 죽이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제 안에서 살아 역사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제 삶을 통해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세워지며, 만나는 사람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고백이 오늘 제 삶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