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적 고통이 십자가를 통과할 때, 그것은 축복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반전의 능력이다. 구약에서는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라고 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나무에 달리신 그분이 열방의 축복이 되셨다.
구약에서 십자가 형벌은 저주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다. 그런데 이 저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과하며 오히려 축복으로 바뀌었다. 나무에 달린 자, 예수께서 열방의 축복이 되셨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역사하는 ‘반대의 원리’다. 복음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꾼다!
모세의 때, 가데스바네아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그들의 데스티니를 포기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 결과 40년의 세월을 허비해야 했다. 스스로가 포기하면 데스티니는 취소되거나 미루어질 수 있다. 여호수아의 때, 하나님께서 다시 이들을 데스티니로 부르셨다. 순종하여 요단강을 건너자 그곳에는 거대한 성 여리고가 버티고 있었다. 그것은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성을 무너뜨리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할례로 전투력을 모두 상실한 상태였다. 그저 절뚝거리면서 여리고 성을 몇 바퀴 돈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거대한 성 여리고를 순식간에 무너뜨리셨다. 이것이 돌파의 원리다.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면 장벽이 무너지는 돌파가 일어난다.
나에게도 간증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공포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힘들었다. 나는 스무 살 겨울에 하나님을 만났다. 기뻤다. 감사한 마음에 하루종일 울고 다녔다. ‘목사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더듬이 목사라니! 목사가 되는 것은 나의 부르심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15년이 흘러 다시 소명을 받고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첫 설교를 하는 순간, 여리고가 무너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말더듬이 사라졌다.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자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장벽을 제거하셨다. 말더듬은 내 인생에 여리고 같은 것이었다. 절대로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절망의 벽이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이 벽에 가로막혔다. 그런 장벽, 인생의 여리고가 무너졌다. 기도하고 금식하고 별짓을 다 해도 꿈쩍하지 않던 그 여리고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데스티니의 길에 들어서기를 기다리셨다. 그리고 내가 그 길에 들어서는 순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을 한순간에 무너뜨리셨다. 데스티니에는 돌파의 능력이 있다.
인생의 여리고가 있는가? 그렇다면 사명을 위해 기도하라. “나는 무엇을 위해 지음을 받았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도록 부름을 받았는가?” 이것을 발견하고 그 길로 들어서라. 요단을 건너라. 그 순간 장벽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돼라.
병 고침도 좋고, 건강도 좋고, 재정을 위한 간구도 좋지만, 사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응답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명에 뛰어드는 사람은 모든 장벽, 구하지 않았던 장벽들까지 한순간에 무너뜨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사람의 일이라면 막힐 수 있다. 재수가 없어서 막히기도 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막히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막을 수 없다. 이것이 데스티니의 능력이다.
나는 내가 설교하는 목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말을 더듬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말을 더듬는 것이 좀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를 웅변학원에 보내셨다.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나는 남들 앞에서 말하는 일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러니 목사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데스티니는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룻이 오벳을 낳았다! 말더듬이가 메신저가 된 것이다! 더욱이 웅변을 배워서 정확한 발성을 하는 목사가 되었다. 막혀 있었기 때문에 더 깨끗하고 풍부한 물이 솟아난 것이다. 원수가 막아버린 우물을 뚫고, 룻이 오벳을 낳은 이것이 나의 간증이다.
혹시 인생 가운데 정말 안 풀리는 것,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이 있는가? ‘나는 이것 때문에 안 돼’, ‘그때 그 사건 때문에 내 데스티니는 망가져버렸어’, ‘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어’, ‘나는 대학을 못 나왔어’, ‘나는 몸이 약해’, ‘나는 말을 못 해’, 그렇다면 기억하라. 바로 그곳에 당신의 데스티니가 있을 수 있다. 메신저의 데스티니를 가진 아이가 35년 동안 말을 더듬고 살았듯이, 원수 마귀가 당신의 위대한 데스티니를 알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그 우물을 막고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당신의 저주가 십자가를 통과할 때 어떤 축복으로 바뀔지 기대되지 않는가?
사람들은 ‘데스티니’라고 하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능력이 부족해서 원하는 데스티니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렇지 않다. 만약 나의 재주나 은사가 데스티니의 열쇠라면, 하나님의 능력이 설 자리는 어딘가?
하나님은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곳,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어 보이는 일, 막혀 있는 우물, 거기서 오벳을 낳게 하시는 분이다! 나의 가장 연약한 것을 사용하여 열매를 맺으시는 분이다! 약한 자의 하나님! 가난한 자의 반석!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을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여리고를 무너뜨리시고 홍해를 가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할렐루야!
그러니 막혀 있는 우물로 가라. 안 풀리는 곳, 가능성 없어 보이는 곳,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열정과 소원함이 있는 곳, 거기에 가야 한다. 거기에 나의 데스티니가 있다.
기억하라. 온 사방이 막힌 것 같고, 남자들의 씨가 다 마른 것 같고, 더 이상 소망이 없어 보이는 때, 바로 이때가 오벳이 잉태되기 시작되는 때다. 그리고 이 믿음의 길을 갈 때 당신의 손에 오벳이 들려질 것이다. 막힌 우물에서 오벳을 낳는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며, 당신의 데스티니이며, 우리의 데스티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의 마스터플랜, 고성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