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오늘의 말씀

[묵상나눔]6월 8일(월) 죄보다 무서운 것

작성자밀알(이선명)|작성시간26.06.08|조회수36 목록 댓글 0

【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5:1–13】

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2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런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4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5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9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12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13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도 입】

 의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환자는 바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환자입니다. 암이 자라는데도, 장기가 망가지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느끼지 못하니 병원에 오지 않고, 오지 않으니 치료받지 못합니다. 통증은 불편하지만, 생명을 살립니다. 오히려 느끼지 못하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발견한 것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 안에 심각한 죄가 있는데도 교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1절에 보면,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고린도는 당시 성적 방종으로 악명 높은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인처럼 산다"는 말이 타락의 대명사처럼 사용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일이 심지어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충격적인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더 충격을 받은 것은 죄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2절입니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교만으로 번역된 페피시오메노이(πεφυσιωμένοι)는 바람이 잔뜩 들어가 부풀어 오른 상태를 말합니다. 이 단어는 이미 1–4장에서 여러 번 등장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진단하는 핵심 단어입니다. 영적 지식이 교만을 낳았고, 그 교만이 영적 무감각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통한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통한히 여기다"라고 번역된 펜테인(πενθεῖν)은 단순히 속상해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죄를 자기 일처럼 끌어안고 가슴 아파하는 애통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애통이 없었습니다.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된 교인이니까.", "헌신을 많이 한 사람이니까." "건드리면 관계가 불편해지니까."

그런 이유들이 하나둘 쌓이면 결국 영적 불감증이 됩니다. 죄보다 무서운 것은 죄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느끼지 못하는 것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들은 자신들이 은혜로운 공동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자유로운 교회다." "우리는 관용이 있다."

그들은 관용을 자랑거리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와 은혜라는 이름으로 죄를 그대로 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치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합니다.

사도바울의 이 말은 유월절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말입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유대인들은 집 안의 묵은 누룩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아주 작은 조각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작은 누룩 하나가 반죽 전체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암세포 하나가 온몸으로 퍼지듯, 방치된 죄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9–13절에서 바울은 중요한 구분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는 하나님께서 다루실 영역입니다. 그러나 형제라 불리는 사람,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며 살아갈 때 공동체는 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책임입니다.

 

암이 무서운 이유는 암세포가 강해서만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도 사람은 쉽게 생각합니다.

"괜찮겠지.", "설마 큰 병이겠어." "지금은 바쁘니까 조금만 더 있다 병원에 가야지."

이러다가 병원을 늦게 찾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암은 발견이 빠를수록 좋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지금 고린도 교회에서 본 것도 이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죄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교회 안에 심각한 죄가 있었지만, 그것을 아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징계와 출교를 이야기하던 바울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7절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사도바울은 먼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우리의 삶을 요청합니다. 이 순서가 복음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건져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새 유월절 어린 양으로 희생되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건져내셨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이미 누룩 없는 자다."라고 말합니다.

 

 먼저 신분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라고 말합니다.

이미 누룩 없는 자가 되었으니 이제 그에 합당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먼저입니다.

거룩함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도덕적 우월감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우리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을 값싸게 만드는 두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죄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합니다.

 

"사탄에게 내주라"는 이 충격적인 명령의 목적은 파괴가 아닙니다.

구원입니다. 아픈 결단이 생명을 살립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라는 아픈 결단을 감당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방식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맞아 그 사람이 문제야." "저 공동체가 문제다."

그런데 공동체를 향한 말씀은 결국 우리 각 사람에게 먼저 들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먼저 나 자신에게부터 진솔하게 물어야 합니다.

내 안에 지금 방치되고 있는 것은 없는가?

은혜라는 이름으로, 괜찮다는 말로, 나중에라는 미룸으로 덮어두고 있는 죄는 없는가?

이미 너무 오래되어 감각조차 무뎌진 영역은 없는가?

 

 암 은 느껴질 때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기검진이 필요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괜찮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정말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말씀 앞에 정기적으로 서야 합니다.

오늘 이 새벽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또한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외면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은 죄를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아픈 말씀을 주셨을까요?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유월절 양이 되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 이 말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아프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8절)라고 사도바울이 권면하는 것은 그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화려함이 아닙니다. 복잡함이 아닙니다.

순전함과 진실함입니다. 그 단순한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 이 새벽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초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습니다.

그 피로 우리는 새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덩어리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그분께서 이미 그 일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죄를 방치하지 않고,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새 덩어리답게 사는 삶입니다. 오늘도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 내가 결단하고 실천한 것이 있었습니까? 솔직하게 평가해 보십시오.

 

②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십니까?

   (힌트: 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으로 희생시키신 분, 우리를 살리기 위해 아픈 말씀을 주시는 분)

 

③ 내 안에 지금"방치"되고 있는 것은 없습니까? 은혜나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두고 있는 죄나 습관이 있습니까?

 

④ 오늘 본문이"공동체를 향한 말씀"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먼저 나 자신에게 닿아야 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나 목장에서 내가 먼저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살아야 할 영역은 어디입니까?

 

⑤ 오늘 내가 해야 할 한 가지 실천은 무엇입니까?

 

⑥ 기도문과 실천 사항을 적어 보십시오.

 

【추천 찬송가】

420장 너 성결키 위해

 

【은혜의 찬양】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https://youtu.be/3dDWujn2KVs?si=8UlMHVmlHoQR3Fwk 

 

【새벽예배영상】

https://youtube.com/live/MaUIvZb0m9o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