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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나눔]6월 12일(금) 마음이 나뉘지 않는 삶

작성자밀알(이선명)|작성시간26.06.12|조회수37 목록 댓글 0

【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7:25-42】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말씀 나눔】

 낯선 땅으로 이민을 가서 살아남기 위해 둘이 함께 일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고, 빚을 갚고, 집을 샀습니다. 늘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노년이 되어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달려오면서, 정작 우리 둘이 마주 앉아 있었던 시간이 별로 없었어."

그 부부가 원했던 것은 행복한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일이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을 위해 일하였는데, 일을 위해 가정이 존재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분명 행복하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행복은 사라지고 일만 남아 버렸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정 부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오늘 아침 우리에게 하는 말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살아가는 일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혼도, 재산도, 기쁨도 그것이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방향을 잃은 것입니다.

정작 붙들어야 할 주님은 놓치고, 주님을 위해 한다는 일들만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을 보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는 "내가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다르게 표현합니다.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내 의견을 말하노니."라고 말하는 것은, 결혼이냐, 독신이냐의 문제가 복음의 핵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강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사도바울은 명령 대신 자유를 줍니다.

 

 리고 그 자유를 28절에서 분명히 선언합니다.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결혼은 죄가 아닙니다. 독신도 죄가 아닙니다. 먼저 이것부터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권면은 당시 고린도 지역의 특별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당시 심각한 기근 때문에 사회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일반 원칙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결혼해야 한다는 강박도,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도 옳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이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26절에서 언급된 "임박한 환난"은 주후 51년경 고린도를 강타한 기근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결혼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무게가 갑자기 늘어나는 것입니다. 28절의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는 바로 그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 삶의 무게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29절에서 더 깊은 이유를 꺼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에서 '단축하여진'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문법적으로 과거완료형입니다. 시간이 곧 짧아질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짧아진 상태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새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상의 시간표는 이미 달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9절부터 다섯 가지를 한꺼번에 나열합니다.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결혼만이 아닙니다.

슬픔도, 기쁨도, 재산도, 사업도 인간의 모든 현세적 관계와 감정이 통째로 상대화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31절을 보면,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이말은 허무주의자의 주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해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혼이 의무가 아니라는 해방입니다. 독신이 열등이 아니라는 해방입니다. 지위도, 재산도, 감정도 그것이 내 존재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해방 선언입니다. 지나가는 것 위에 애써 집을 짓지 않아도 됩니다.

 

 루터는 수도사 시절 거의 병적으로 고해성사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신부를 찾아가 죄를 고백했습니다. 담당 신부 스타우피츠가 어느 날 말했습니다. "루터, 너는 지금 죄 용서를 받지 못할까봐 두려운 게 아니야.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지 않으실까봐 두려운 거야."

마음이 나뉘는 문제의 원인은 때로 이 두려움에서 옵니다. 내 선택이 옳은가? 이 삶이 주님 앞에 합당한가? 이 불안이 마음을 이쪽저쪽으로 잡아당깁니다.

 

 사도바울이 가장 깊이 강조하는 지점이 34절입니다.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마음이 갈라지며." 하는 것의 의미는 두 방향으로 동시에 달리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장가간 자는 어떻게 아내를 기쁘게 할까,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이 두 가지 방향 사이에서 마음이 나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바울이 결혼을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 성도가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마음 쓰는 것, 그것은 자연스럽고 선한 일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구조의 문제입니다. 결혼은 구조적으로 마음이 나뉘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 안에서도 주님께 집중하는 삶을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35절이 핵심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무는 새를 잡는 올가미입니다. 바울이 독신을 의무로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을 이등 그리스도인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닙니다.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이 단어는 '주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섬기는' 이미지입니다. 주님 곁에 앉아,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 삶입니다(마르다가 일하는 동안 주님 발 앞에 앉아 말씀에 집중한 마리아처럼). 그것이 처음부터 바울이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결혼이냐 독신이냐의 질문보다 더 먼저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앉아 있는가? 주님 곁에 앉아 있는가?

아니면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서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사도바울은 본문 끝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독신이 더 낫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로 앞에서는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둘 다 선한 길입니다.

사도바울이 독신을 더 낫다고 말한 것은 결혼을 정죄해서가 아닙니다. 마음이 나뉘지 않는 삶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그 사람의 부르심과 상황 안에서 하는 말입니다.

지나가는 것 위에 지은 집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압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새 시대가 시작된 그날부터, 이 세상의 시간표는 달라졌습니다.

결혼도, 슬픔도, 기쁨도, 재산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압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어떤 삶의 자리에서, 내 마음이 나뉘지 않고 주님을 향해 있는가?

결혼한 분들은 그 자리에서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독신으로 사시는 분들은 그 자리에서 주님께 집중하십시오.

결혼하였어도 함께 주님께 집중할 수 있고, 독신이어도 세상에 마음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결혼과 독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의 자리가 다를 뿐입니다.

그 자리에서 주님을 향해 마음이 온전히 열려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복됩니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갑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나가지 않으십니다.

지나가는 것이 아닌,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1. 어제 하루, 주님보다 더 마음을 쏟은 것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나쁜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십시오.

 

2.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결혼도, 독신도 모두 죄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 내 삶의 어떤 상태나 선택에 대해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강박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3.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납니까?

바울이"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라고 말할 때, 그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4.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31절).

오늘 나를 가장 많이 붙잡고 있는 지나가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 것 같습니까?

 

5.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35절).

오늘 하루 내가 주님 곁에 바짝 앉아 있기 위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6. 오늘 말씀을 붙들고 짧은 기도를 써 보십시오.

내 마음이 나뉘지 않고 주님을 향할 수 있도록 구하는 기도입니다.

 

【추천 찬송가】

180장 하나님의 나팔 소리

 

【은혜의 찬양】

주님 곁으로 날 이끄소서:

https://youtu.be/t7GOa1cfCZg?si=sdhhvPCBKxWe9J6E

 

【새벽예배 영상】

https://youtube.com/live/nKEuRp-KNb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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