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10:14–11:1】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도 입】
요즘 교권 침해를 다루는 드라마가 화제입니다. 거기 등장하는 극성 학부모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남의 아이가 하면 민폐고, 내 아이가 하면 당연한 권리입니다. 남이 특별 대우를 요구하면 불공정이고, 내가 요구하면 정당한 주장입니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만든 이 이중 잣대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자기 일에는 놀라울 정도로 관대합니다. 남이 하면 문제인데 내가 하면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도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상 신전에서 식사하면 문제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나는 알고 있으니 괜찮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만찬에 참여했던 사람입니다. 주님의 잔을 마시고 떡을 떼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신전에서 열리는 식사 모임에도 참석했습니다.
고대 고린도에서 신전 식사는 사업상 중요한 인맥이 형성되는 자리였습니다.
빠지면 손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나는 우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신전 식사는 그냥 사람 만나는 자리다. 나는 괜찮다.”
사도바울은 이 논리에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5절)부드럽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이 말은 날카로운 역설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자의식을 역으로 이용합니다. “좋다. 정말 지혜롭다면, 내가 지금 말하려는 것을 스스로 판단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실 바울은 이미 결론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지혜롭다면 너희도 결국 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다.'라는 취지로 그들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만찬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6절)
여기서 "참여함"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단순히 어떤 의식에 참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함께 몫을 나누다, 운명을 같이한다, 언약의 당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잔을 마실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가 쏟아진 그 죽음에 참여자가 됩니다. 떡을 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과 연합한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와의 실제적인 교제와 연합입니다. 식탁이 연합을 만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사례를 끌어옵니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아니냐(18절)
이스라엘이 제단에서 제물을 먹을 때, 그들은 그 제단이 상징하는 하나님과의 언약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먹는 행위가 연합을 만들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누구와 밥을 먹는가는 누구에게 속해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9-20절에서 날카롭게 그들의 논리를 파고듭니다.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8장에서 이미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말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거짓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하나님 아닌 것을 향해 인간을 끌어당기는 영적 실재는 있습니다. 신전에서 드리는 제사 뒤에 귀신의 실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식사에 참여할 때, 성만찬과 똑같은 원리로 연합이 발생합니다.
"그들이 섬기는 거짓 신은 없다"는 지식이 이 연합의 현실을 취소하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21절에서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라고 명확히 말합니다. 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출장을 가면 결혼반지를 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배우자가 없는 자리에서는 굳이 기혼자로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반지를 뺀다고 결혼이 취소되지는 않습니다. 법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그는 여전히 배우자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행위가 무엇을 향하는지는 분명합니다. 함께 서약한 언약을 편의에 따라 껐다 켜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의 강한 자들이 그랬습니다. 성만찬 자리에서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전 식사 자리에서는 그 연합을 잠시 내려놓으려 했습니다. "나는 알고 있으니 괜찮다"라는 논리를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언약은 자리를 옮긴다고 효력이 정지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잔에서 맺어진 연합은 장소가 바뀐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전의 식탁에서 발생하는 연합도 마찬가지로 실재합니다.
22절에 사도바울은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라고 책망합니다. 고린도의 강한 자들이 "나는 괜찮다"고 할 때, 그들이 실제로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사도바울은 드러냅니다. 그들은 자신의 지식이 하나님의 경고를 초월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이 하나님보다 강하다는 선언입니다.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위험한 자리에 서게 됩니다. 결국 그들이 섬긴 것은 우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자기 지식이 기준이 되었고, 자기 판단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섰습니다. 지식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경계하는 것은 신전에서의 제의적 식사나 이방 제사에 실제로 참여하는 행위입니다.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주님의 식탁에 앉은 사람으로서, 나는 지금 무엇과 언약적 연합을 맺고 있는가?
"나는 괜찮다"는 말이 혹시 지식이 된 자기 확신은 아닌가?
사도바울은 이제 방향을 바꿉니다.
앞에서는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말했습니다.
이제는 그 경계선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합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 23절)
"모든 것이 가하다"는 고린도 교인들이 외히는 구호였습니다.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의 선언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두 번이나 인정합니다. 그리고 방향을 바꿉니다. "가하다, 그러나 유익하지 않을 수 있다. 가하다, 그러나 덕을 세우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24절에서 그 방향을 보여줍니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자유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의 방향이 있습니다.
자기를 향할 때 자유는 방종이 됩니다. 남을 향할 때 자유는 복음이 됩니다.
바울은 구체적인 상황을 짚습니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합니다.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 중 상당수가 신전을 거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꺼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26절)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됩니다.
불신자가 초대한 식사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묻지 말고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것은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라고 말하면, 그때는 먹지 말라고 합니다. 내 양심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말을 한 사람의 내면을 위해서입니다. 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규율이 아닙니다. 그 사람을 향한 배려입니다.
31절이 이 모든 행동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먹지 않는 것도 기준은 단 하나,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리고 33절에서 바울은 그 영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향하는지 말합니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하나님의 영광과 한 영혼의 구원이 같은 방향에 있습니다.
그리고 11장 1절이 이 모든 논증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는 모든 권리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내려놓으셨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보고 배웠습니다. 자기 사도권도, 경제적 권리도, 문화적 자유도영혼 구원을 위해 내려놓았습니다.
우리 목장 안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내가 편한 시간이 아닌데 VIP를 위해 시간을 냈던 경험. 내가 좋아하는 메뉴 대신 그 사람이 익숙한 곳을 택했던 경험. 거창한 희생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작은 포기들이 쌓일 때, 한 영혼이 복음 앞으로 조금씩 가까워지는 일이 생깁니다. 그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통로입니다. 이것이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삶의 원리입니다.
목장 안에서 서로를 위해 내 권리를 내려놓는 것, 한 영혼의 VIP를 위해 내 편의를 포기하는 것. 이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입니다.
주님의 식탁에 앉은 사람은 그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언약의 당사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 연합은 실재합니다.
그리고 그 실재가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배타적 충성입니다.
두 식탁을 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식탁에서 받은 자유는 방향이 있습니다. 자기를 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한 영혼의 구원을 향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먼저 그렇게 사셨습니다. 모든 권리를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내려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식탁에서 그분의 살과 피를 받아먹은 사람들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움직입니다. 강요가 아닙니다. 그분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새벽 우리는 다시 주님의 식탁 앞에 서 있습니다.
그 식탁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누구와 연합해 있느냐?"
"그리고 내가 너에게 준 자유를 누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느냐?"
오늘도 주님의 식탁에 앉은 사람답게, 그리스도를 본받아 한 영혼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 결단한 것을 오늘 어떻게 살았습니까? 한 줄로 적어보십시오.
②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어떤 분으로 나타나십니까? 내가 새롭게 발견한 하나님의 모습을 적어보십시오.
③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21절). 나는 지금 주님의 식탁에 온전히 앉아 있습니까? 내 삶에서 주님과 겸하여 붙잡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④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23절).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지만, 한 영혼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⑤ 오늘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아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⑥ 오늘의 기도문과 실천 사항을 적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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