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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나눔]6월 19일(금) 한 성령 다양한 은사

작성자밀알(이선명)|작성시간26.06.19|조회수41 목록 댓글 0

【성경 말씀: 고린도전서 12:1-11】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말씀 나눔】

 한때 교회 안에서는 방언하는 법을 가르치는 강좌가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방언을 하지 못하면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처럼 여기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더 신령한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령을 강조하고 방언을 자랑하던 교회들 가운데 오히려 다툼과 분열이 일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의 역사가 많아서가 아닙니다.

어느 순간 성령보다 은사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새로운 문제가 아닙니다.

 

 고린도교회도 똑같았습니다.

방언과 같은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을 더 신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은사가 없는 사람들을 은근히 무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오랫동안 우상을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황홀경과 신비 체험을 신령함의 기준으로 여기던 옛 가치관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교회 안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바로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오늘 말씀을 기록합니다.

 

 방언을 해야만 성령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사람인지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의 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령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은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의외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이 고백이 어디서 오는지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능력이 아닙니다.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8장과 갈라디아서 4장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객관적인 사실에서 인격적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이끄심을 증언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시 십자가는 사랑의 상징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노예와 반역자에게 집행하던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사람들은 그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향해 "주님이십니다", "왕이십니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로마의 가치관으로는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는 시절에 “예수님이 나의 주님이십니다” 라는 고백은 사회적 손해를 각오해야 했고, 재정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고, 때로는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고백을 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성령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안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우리의 주인을 바꾸십니다.

돈이 주인이던 사람이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성공이 주인이던 사람이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시고,

자기 자신이 주인이던 사람이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위대한 역사입니다.

 

 성령을 받은 존재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은사입니다.

둘째, 성령은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를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은사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런데 4절에서 6절까지 같은 구조가 세 번 반복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사역은 여러 가지나 하나님은 같으니.'

사도바울은 다양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다양성의 목적을 7절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님이 은사를 주심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서입니다.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예언, 영 분별, 방언 등의 다양한 은사를 주십니다. 이 은사들에 우열이 없습니다. 어떤 은사를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같은 성령께서, 같은 목적으로, 같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주신 선물들입니다.

 

 이런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병든 자를 살리고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사람 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도 불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자리에서 중보하는 사람입니다. 그 기도가 멈추면 치유의 은사를 받은 사람도 실족하기 쉽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그 기도의 은사가 화려한 은사를 받은 형제를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은사 모두 한 성령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우열이 없습니다. 우리는 은사를 통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들입니다.

11절을 보면,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은사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할 이유도 없고, 열등감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혹시 특별한 은사가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도 잘 못하고, 가르치지도 못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어렵다고 느끼십니까?

성령께서는 몇몇 특별한 사람에게만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라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문제는 은사가 없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 새벽에 여기 나오신 분들 가운데 바로 그 자리에 계신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쓰임받는 형제 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리, 누가 알아주지 않는 자리, 이름이 불리지 않는 자리의 은사를 받으신 분들입니다.

 

 성령께서는 그 자리도 당신의 뜻대로 주신 은사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그 기도 위에 서 있습니다. 그 눈물 위에 서 있습니다. 그 조용한 섬김 위에 서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 구경꾼을 두지 않으십니다.

모든 성도에게 교회를 세울 선물을 맡기셨습니다.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그 은사는 같은 성령께서 같은 목적으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게 맡기신 그 자리에서 충성스럽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신 성령님께서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 성령의 은사로 교회를 세우고 사람을 살리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하루를 시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묵상 - 하시깨묵】

① 어제 결단한 것을 오늘 어떻게 실천했습니까?

 

② 오늘 본문에서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첫 번째 증거는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을'주님'으로, 하나님을'아버지'로 고백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③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그 은사가 드러나는 자리에 있습니까,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 있습니까?

 

④ '각 사람에게'(7, 11절) — 성령께서 내게 주신 은사로 오늘 누구를 세울 수 있습니까?

 

⑤ 드러나지 않는 은사(기도, 섬김, 뒷받침)를 받은 사람이 교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묵상해 봅시다. 내 은사가 교회 공동체에 어떤 유익을 끼치고 있습니까?

 

⑥ 오늘 하루 내가 실천할 한 가지를 적고, 기도문으로 마무리하십시오.

 

 

【추천 찬송가】

190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은혜의 찬양】

거룩하신 성령이여 + 성령이여 임하소서:

https://youtu.be/5dHswUifx2U?si=SII6Iry3VAhTA3uG 

 

【새벽예배 영상】

https://youtube.com/live/rx6SCiFPT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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