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창세기

말씀대로 세상을 비추는 교회!(창세기 1:1-13)

작성자밀알(이선명)|작성시간26.06.22|조회수28 목록 댓글 0

 

성경 말씀 창세기 1:1-13 (새번역)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4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5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6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 한가운데 창공이 생겨, 물과 물 사이가 갈라져라" 하셨다.

7 하나님이 이처럼 창공을 만드시고서, 물을 창공 아래에 있는 물과 창공 위에 있는 물로 나누시니, 그대로 되었다.

8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

9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늘 아래에 있는 물은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은 드러나거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돋아나게 하여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12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13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사흗날이 지났다.

 

중심 구절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창세기 1:1)

 

핵심 메시지

창조주 하나님은 질서 있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며그 창조의 목적 안에서 우리는 부르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 나눔 

 사람들은 세상의 시작을 설명할 때 종종 빅뱅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우주가 한순간에 시작되었고, 그 시작점에서 엄청난 에너지와 함께 공간과 시간이 열렸다는 설명입니다. 이 이론은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려는 하나의 과학적 시도입니다. 이 자리에서 빅뱅이라는 용어를 꺼낸 것은 과학 이론의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 보려 합니다.

질서는 어디에서 오는가?

 

 여러분! 일상에서 폭발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폭발은 보통 흩어짐을 만들고, 구조를 무너뜨리며, 정리된 상태보다는 혼란을 남깁니다. 우리는 경험상 폭발 그 자체가 목적과 방향을 가진 질서를 만들어 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를 보면 어떻습니까?

태양은 제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움직이며, 지구는 생명이 가능하도록 정밀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계절은 반복되고, 밤과 낮은 질서 있게 교차하며, 생명은 일정한 법칙 안에서 태어나고 자랍니다.

 

 이처럼 정교한 질서와 법칙, 이 반복되는 조화가 아무 의도도, 아무 목적도 없이 우연히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우주의 시작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창조의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지 않습니다. 대신 분명히 선언합니다. 이 세계의 시작에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고, 그분의 뜻과 질서 안에서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말씀을 통해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이론을 논하기보다, 이 질서를 세우신 분이 누구신지를 다시 바라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에도 어떤 질서를 원하시는지를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시작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태초에(בְּרֵאשִׁית)라는 말은 처음 시작을 의미합니다. 처음 시작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은, 이 순간을 통제하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은 세상이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계획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는데, 창조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에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1:2절을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 이전에 있던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혼돈(토후, תֹהוּ)’ 형태가 없고 무질서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처음 혼돈의 상태를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는 질서 이전의 무질서 상태로 표현합니다. 70인 역 성경에서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미완성의 상태로 표현하고 있으며, 새번역 성경과 RSV 버전 영어 성경은 형태가 없는이라는 의미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성경이 말하는 혼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이 아니라, 말씀으로 정돈되기 전의 상태 입니다. 혼돈은 아무런 규칙이 없는 상태, 비어 있는 상태 ,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상태로 세상은 아직 모양도 생명도 없상태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전환이 있습니다. 2절 하반 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계셨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혼돈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시기 직전의 상태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혼돈과 공허와 어둠은 끝이 아니라, 빛의 말씀이 임하기 직전의 무대입니다.

 

 창조 이전의 상태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인생의 방향 상실·내면의 공허·빛 없는 영적 상태를 연상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떠난 혼돈은 절망이지만, 하나님이 임하신 혼돈은 창조의 시작입니다. 마찬가지 예수님이 없는 인생은 혼돈 속에 머물지만, 예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주님과 동행하는 질서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영이 임재하심으로 천지의 창조가 시작됩니다.

첫째 날은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구분하십니다. 5절에 보면,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밤과 낮을 구분하시고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하루가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의 질서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둘째 날은 물을 분리하셔서 창공을 만드십니다. 8절을 보면,

하나님이 창공을 하늘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튿날이 지났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셋째 날에 하나님께서는 땅에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십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고 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게 하시고, 뭍을 땅으로 모인 물을 바다라 하십니다. 그리고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땅에 푸른 움이 돋게 하시고, 씨를 맺는 식물과 씨 있는 열매 맺는 나무가 종류대로 땅 위에서 동이 나게 하라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창세기 1장에는 7, 9, 11절에서 그대로 되었다(וַיְהִי־כֵן)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이 구문은 창세기 1장에서 의도적으로 반복됩니다. 우리는 그대로 되었다는 이 짧은 구문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설명이 아니라 실행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말은 명령해도 안 될 수 있고, 치밀하게 계획해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 말씀이 뜻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의지()이자 능력이며, 동시에 결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을 규정하지, 현실에 의해 제한받지 않습니다. 모든 환경을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 창조는 과정보다 말씀의 신실함을 강조합니다

성경은 일부러 어떻게만들어졌는지 어떤 물리적 과정을 거쳤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는 것을 반복합니다. 따라서 창세기 1장 창조 기사의 초점은 창조의 방법이 아니라 말씀의 주체이신 하나님께 집중됩니다.

 

 세 번째, 혼돈을 이기는 힘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1:2에서 보여 준 세계는 혼돈 (tohu), 공허 (bohu), 흑암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혼돈을 밀어내는 방식은 힘, 투쟁, 경쟁이 아니라 오직 말씀하심 그대로 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질서는 순종하는 현실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오케스트라이든지 연주 전에 모든 연주자는 자기 악기의 음을 먼저 조율합니다.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라도 조율이 맞지 않으면, 그 연주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각자가 내 음이 맞다고 주장하며 연주한다면,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악기가 기준 음에 맞춰 조율될 때, 각기 다른 악기가 하나의 조화로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더 잘 연주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먼저 조율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그대로 되었는 말씀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이 두 표현은 항상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고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상태는 무엇이겠습니까?

말씀대로 존재할 때 하나님은 좋다고 평가하십니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처음 창조의 세계는 말씀에 순종하는 피조물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명령하셨을 때, 빛은 말씀하신 대로 존재하였고, 질서가 생겨났습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기준으로 마음대로 해석하고, 하고 싶은 것만 골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으로 살아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고, 말씀이 멈추라 하면 멈추고 말씀이 그렇다 하면 그런 줄 알고, 아니라 하면 아닌 줄 아는 삶이 성도의 순종입니다.

 

 여러분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우려는 태도입니다.

사사기 시대를 성경은 한 마디로 이렇게 평가합니다.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이러한 삶의 태도는 창세기 1장과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사사기 시대처럼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며 살 때 혼돈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순종하는 것은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순종을 억지로 참는 것, 나를 누르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은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말씀대로 될 때 질서가 유지되고 생명이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나를 망가뜨리는 길이 아니라,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드는 길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낸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혼돈스러운 이유는 말씀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대로 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대로 되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선언이자, 성도는 그 말씀에 삶으로 응답하도록 부름받은 존재들입니다.

 

 창세기 1장에 그대로 되니라’, 보시기에 좋았더라(כִּי־טוֹב)이 말씀과 더불어 매주 중요한 키워드가 있습니다. 12절을 보면,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고, 씨를 맺는 식물을 그 종류대로 나게 하고,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나무를 그 종류대로 돋아나게 하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가 생명 세계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 되는지를 보겠습니다. 식물 창조에서 반복되는 단어가 종류대로’(לְמִינֵהוּ / לְמִינָם (leminām / leminēhu))입니다. 종류대로라는 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구분·범주·경계를 의미합니다.

 

 경계의 측면으로 보면, 종류대로는 아무렇게나 섞여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안에서 존재하라는 뜻입니다. 물의 생물은 물의 영역에서, 새는 하늘의 영역에서, 땅의 짐승은 땅의 영역에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경계는 억압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는 틀입니다.

 

 다양성의 측면으로 보면, 종류대로는 획일화와 정반대에 위치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만 만들지 않으셨고 여러 종류를 의도적으로 만드셨습니다. 다양성은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창조의 의도입니다. 그래서 종류대로는 차이를 제거하라는 말이 아니라, 차이를 존중하라는 선언입니다.

 

 질서의 측면에서종류대로가 반복될수록 강조되는 것은 창조 세계는 혼돈이 아니라 질서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각 존재는 자기 자리를 알고, 자기 역할을 수행할 때,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말씀 하십니다. 결국 질서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자기 역할에 맞는 기능을 수행하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모두가 같아진 세상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님이 정하신 종류와 자리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여러분 등대는 배보다 더 크거나 더 화려하지 않습니다.

등대는 바다로 나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등대가 제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배라도 방향을 잃고 좌초합니다. 등대는 배를 대신하지도 않고, 배를 통제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자기 자리에 서서 빛을 비출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배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빛을 비추는 등대로 부르셨습니다. 문제는 더 멀리 가느냐가 아니라, 있어야 할 제자리에 서 있느냐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류대로세우신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창조의 질서가 오늘 교회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여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창조의 원리에 따르면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까?

교회는 질서를 독점하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를 삶의 현장으로 흘려보내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교회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상은 모두가 같아진 세상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님이 정하신 종류와 자리에서 질서 있게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를 똑같이 만들지 않으셨고,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와 삶의 자리, 다른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는 중앙에 모여 빛나는 교회가 아니라, 삶의 자리로 흩어져 빛을 비추는 교회를 추구합니다. 목장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질서가 가정과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입니다통로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는 먼저 말씀을 지식이 아니라 순종의 기준으로 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목장에서 나누는 말씀은 토론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난주에 말씀대로 살면서 경험한 은혜를 나누고 이번 주에도 말씀대로 살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서로 돕기 위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공동체보다, 말씀을 조금이라도 삶으로 살아내는 공동체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공동체입니다.

 

 또한 가정교회는 혼돈을 통제하려는 공동체가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질서를 삶으로 보여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목자와 목녀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이며, 사람을 움직이려 하기보다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질서는 강요로 세워지지 않고, 섬김과 인내, 기다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특별히 가정교회는 종류대로창조하신 하나님의 질서를 공동체 구조로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 조용한 사람, 아직 믿음이 연약한 사람, VIP 한 사람 한 사람까지도 각자의 속도와 자리에서 존중받아야 합니다. VIP는 사역의 성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정교회는 사람을 바꾸는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을 빚으시도록 기다리는 공동체입니다. 목장은 빛을 소유하는 자리가 아니라, 빛을 충전 받아 다시 삶의 현장으로 흩어지는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각기 자기 소견에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에 의해 정돈된 삶으로, 가정과 일터와 관계 속에서 묵묵히 빛을 비추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말씀대로 살아가며, 맡겨진 자리에서 충실히 섬기는 인생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대로 흩어져 세상을 비추는 교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씨앗은 그릇에 담아 창고에 가득 쌓아 두면 안전해 보입니다.

그러나 창고에 있는 씨앗은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씨앗은 흩어져 땅에 심길 때 비로소 생명이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여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건강해 보일 수 있지만, 흩어질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교회는 씨앗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곳이 아니라, 열매를 기대하며 세상으로 보내는 하나님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태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의 말씀은 오늘도 우리 교회를 향해 머무르지 말고 흩어져 빛을 비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셔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어떤 태도로 서 있는가에 있습니다. 말씀을 아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말씀대로 살아내는 삶으로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분명한 결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내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따르는 결단입니다.

결정의 순간마다 내가 옳은가?”를 묻기보다 하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먼저 묻는 삶, 이것이 창조 질서를 따르는 삶의 시작입니다.

 

또한, 혼돈을 키우는 말과 행동을 멈추는 결단입니다.

말 한마디, 선택 하나가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질서를 세울 수도 있습니다. 성도는 혼돈을 확산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으로 질서를 세우는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빛을 비추는 결단입니다. 비교하며 흔들리는 삶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와 목장, 하나님이 맡기신 바로 그 자리에서 묵묵히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인생은 더 많이 가진 인생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낸 인생입니다. 우리가 말씀 앞에 순종으로 설 때,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관계 속에서도 혼돈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질서는 다시 세워질 것입니다.

 

2026년 한 해도 말씀대로 흩어져 세상을 비추는 교회, 말씀으로 정돈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걸음 위에 창조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평가가

풍성히 임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적용】

① 말씀을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기준’으로 삼기

내 상황에 맞게 고르는 말씀이 아니라 나를 말씀에 맞추는 삶

② 혼돈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질서를 세우는 선택하기

감정적 반응보다 말씀에 근거한 질서 있는 결정

③ 나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종류대로’ 살아가기

비교와 흉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역할과 자리에서 충실하기

 

【결 단】

① 주님, 제 판단보다 주님의 말씀을 먼저 따르겠습니다.

결정 앞에서 말씀을 먼저 묻는 삶을 살기로 결단합니다.

② 주님, 혼돈을 키우는 말과 행동을 멈추겠습니다.

관계 속에서 질서를 세우는 선택을 하겠습니다.

③ 주님, 제 자리에서 빛을 비추는 성도로 살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고, 부르심에 충실한 삶을 결단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