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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는 믿음!(창세기 22:1-14)

작성자밀알(이선명)|작성시간26.06.22|조회수31 목록 댓글 0

【성경 말씀창세기 22:1-14   (새번역)

1 이런 일이 있은 지 얼마 뒤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그를 부르셨다.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니, 아브라함은 "예, 여기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3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나귀의 등에 안장을 얹었다. 그는 두 종과 아들 이삭에게도 길을 떠날 준비를 시켰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그 곳으로 길을 떠났다.

4 사흘 만에 아브라함은 고개를 들어서, 멀리 그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5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6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챙긴 다음에, 두 사람은 함께 걸었다.

7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8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9 그들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에 이르러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다. 그런 다음에 제 자식 이삭을 묶어서,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다.

10 그는 손에 칼을 들고서, 아들을 잡으려고 하였다.

11 그 때에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14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중심 구절】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세기 22:12b)

【핵심메시지】

믿음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는 선택으로 증명된다.

 

【한 줄 요약】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통해 믿음을 보십니다.

 

【말씀 나눔】 

 어느 날 한 남자가 아들이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장난감이 너무 낡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팔도 부러져 있고, 낡고 유행도 다 지난 로봇 장난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아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캐릭터 장난감을 구매하여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부서지고 낡은 장난감을 아빠에게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들을 망설입니다. 아마도 혹시라도 장난감을 다시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더 좋은 선물을 준비해 놓고 있지만 아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그래서 내 손에 들린 장난감 쥐고 놓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는 손이 아프도록 쥐고 있는 그 낡은 것을 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을 종종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합니다.

“나는 이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이 질문은 평안할 때보다 어떤 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 때 더 필요합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 비로소 우리의 믿음의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단순히 한 아버지의 순종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놓으라.”라고 하실 때,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믿음”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는가? 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말로만이 아닌 순종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귀한 아들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란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실 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가나안으로 왔지만,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도착 후 10년째 되는 해에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15년이 지난 시점, 즉 약속의 땅에 와서 25년이 흐른 뒤에야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 25년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시련을 통해 단련되는 중요한 기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고, 아비멜렉과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고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살게 된 이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그 시험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2절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원어로 보면, 너의 아들, 네 독자, 네가 사랑하는, 이삭 순으로 기록하여 점층적인 강조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너의 아들, 네 독자이면서 네가 사랑하는 아들, 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으로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당시 페니키아와 고대 근동지역에서 풍요와 전쟁의 승리, 위기 극복을 위해 아이를 바치는 극단적인 제의가 실행되고 있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 사람들에게 인신 제사는 낯선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다른 이교 종교처럼 인신 제사를 원하신 것일까요?

아브라함 시대에는 율법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 인신 제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이십니다(레18:21, 신12:31, 18:10).

 

 충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에도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갈 채비를 합니다. 번제에 쓸 장작을 다 쪼개어 가지고 가고, 두 사람의 종과 아들 이삭과 함께 하나님이 말씀하신 곳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이 가고 있는 모리아 산은 후대에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있었던 곳이며, 솔로몬 시대에 성전이 지어지는 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있던 브엘세바에서 이곳까지는 3일 정도의 거리로 네게브 사막 북쪽 구릉지대를 지나 예루살렘 산지로 올라가며 낮의 더위, 밤의 추위, 짐승과 도적 떼의 여러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3일 길을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리아로 가고 있지만, 분명 그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겠다는 그의 단호한 결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리아 산까지 이동하는 여정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짐을 가볍게 해서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쪼개어 미리 준비해 갑니다.

 

 예루살렘은 산지이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번제에 쓸 나무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적극적으로 순종하겠다는 그의 결단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속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요?

 

 5절 말씀에 보면,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라고 말합니다.

 

 분명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가고 있는데, 함께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장작을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칼과 불을 가지고 모리아 산으로 갑니다. 이때 이삭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7절)

이어지는 아브라함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8절을 보면,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이렇게 대답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때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고, 이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삭에게 “네가 번제물이 될 것이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어린 양을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이삭이 불안해하거나 반항하지 않도록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은 이유는 아브라함의 강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믿음은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오랜 세월 동안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늙어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라’가 아들을 낳았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다’(창21:12)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 11:19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반드시 해결하실 것이며,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든, 다른 제물을 주셔서 번제물을 마련해 주시든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단지 이삭이 반항하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번제를 드릴 곳에 도착하여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독자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장작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손에 칼을 들어 아들을 잡으려 했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다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라고 부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이렇게 말합니다.

12절,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여기서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은 ‘네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음을 증명했다.’라는 의미이며, ‘내가 이제 알았다’라는 말씀은 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임을 이제 확인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몰라서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을 이미 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이미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러한 시험을 하신 것은 행동으로 드러난 순종을 통해 그 믿음이 진짜임을 세상에 증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더 사랑하는지, 그 아들이 아브라함에게 우상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단순한 아들이 아니라, 100세에 얻은 기적의 아들이며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의 아들을 향한 사랑을 인정하실 정도로 소중한 아들이었습니다. 특히 이삭은 약속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큰 기쁨이자 동시에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다면, 그 순간 이삭이 아브라함의 우상이 된 셈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드러내시기 위해 시험하셨고, 아브라함이 목숨과 같이 아끼는 소중한 아들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지를 확인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행동이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만약에 제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명의로 소문만 의사의 말을 믿고 수술하기로 했는데, 수술하는 날 불안해서 수술대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거부한다면,

제가 의사를 신뢰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수술대에 올라가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진짜 믿음은 수술대에 올라가 내 몸을 맡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긴 순간,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천사의 말이 끝나고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펴봅니다.

13절에,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그 숫양이 아들을 대신할 제물인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브라함은 자신의 입으로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라고 했던 말처럼,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으리라는 것을 믿었고, 실제로 준비된 숫양을 보고 믿음으로 행동한 것입니다.

 

 특히 천사가 시험이 끝났다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었기 때문에, 이제는 아들을 대체할 제물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 숫양이 아들을 대신하는 번제물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가 미리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이레’라는 원어 어원은 라아(רָאָה)로 ‘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는 문자적으로는 “여호와께서 보시리라” 또는 “여호와께서 나타내시리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왜 한국어 성경은 ‘준비하시리라’로 번역되어 있을까요?

 

 히브리어에서 “보다”(ra’ah)는 단순한 시각적 행위가 아니라, “살피고 돌보고 책임지며 필요를 채워 주다”라는 포괄적 의미를 가집니다. 그래서 한국어 성경은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또는 “여호와께서 공급하시리라”로 번역합니다.

 

 따라서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라고 단순하게 이해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미리 보시고, 살피시고, 필요를 채워 주신다”라는 의미로, 또한 아브라함의 깊은 신앙 고백이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전지전능하셔서 미리 보시고, 인간의 중심까지도 다 보시는 하나님께서(삼상16:7),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는데, 아브라함을 이렇게까지 시험하셔야 했을까요?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이유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아브라함 자신을 위한 시험입니다.

사실 우리는 내 마음도 다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신의 믿음을 100% 확신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통해서 정말 자신이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는가? 질문하고 그 질문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여, 이전보다 믿음이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先進)들은 고난을 통해서 자기 신앙의 현주소를 확인하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려움이 있을 때 낙심하지 말고,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점검하고 신앙이 성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복기’라고 하죠? 조훈연 9단이 이런 말을 합니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길 준비를 하게 해준다.” 우리 삶도 복기가 중요합니다.

일과를 마치며, “오늘 나는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의지했는가?”를 돌아보고,

선택의 순간마다 “이 결정이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선택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러한 점검과 삶의 복기가 쌓일 때 우리의 믿음은 점점 자라게 됩니다.

 

② 세상과 후손들을 위한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단지 개인의 경험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역사 속에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기준이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 이레라는 이름처럼 하나님께서 친히 대속의 어린 양을 준비하신다는 사실을 통해 구원의 원형을 온 세상에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숫양이 이삭을 대신했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녀와 가족에게, 우리의 믿음을 말로만이 아니라 삶의 선택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결국 보고 배운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직장과 일상에서도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정직과 신앙의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세상에서는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 하나가 누군가의 믿음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정도의 손해는 기쁨으로 감수할 수 있습니다.

 

③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기 위한 사랑의 시험

하나님의 시험은 징계가 아니라 관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셨기 때문에(2절) 그 사랑을 가장 강렬한 형태로 시험하신 것입니다. 결국 시험 후에 하나님은 더 큰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창세기 22:17-18을 보면,

17 내가 반드시 너에게 큰 복을 주며, 너의 자손이 크게 불어나서,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지게 하겠다. 너의 자손은 원수의 성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복종하였으니, 세상 모든 민족이 네 자손의 덕을 입어서,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함으로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영원히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관계를 더 깊게 하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라고 묻고 따지기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더 깊은 관계로 이끄시는구나”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기보다, 먼저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배와 말씀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가장 중요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믿음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느냐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떤 특별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을 선택하는 삶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이제야 알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보다 우리의 선택을 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보십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각자의 ‘이삭’이 있습니다.

붙들고 싶은 것,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이삭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믿음은 그것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삶의 자리에서 형편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선택하고,

손해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결단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하나님을 위해 내려놓을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 내려놓음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향한 경외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적용】

① 내 삶의 ‘이삭’을 점검하자.

-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집착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기

② 순종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임을 기억하자.

-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을 기준으로 결정하는 훈련에 참여하자(삶 공부가 좋은 훈련입니다.)

③ 하나님을 신뢰하는 작은 결단을 반복하자.

- 일상의 작은 순종이 큰 믿음을 만듭니다.

 

【결 단】

① 나는 하나님보다 더 붙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겠습니다.

② 나는 상황이 아니라 말씀을 기준으로 선택하겠습니다.

③ 나는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믿음을 살겠습니다.

 

【경건 묵상】

1. 나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의지하는 ‘이삭’을 가지고 있는가?

 

2. 하나님께서 내 삶에 요구하신 순종을 미루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3. 나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무엇을 붙들고 있는가?

 

【생활 적용】

1. 이번 주 말씀을 통해서 느낀 점과 결단하게된 적용 점은 무엇입니까?

 

2. 이번 주에 “말씀이 기준이 되는 선택”을 실제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은 무엇인가?

 

3. 손해처럼 보이지만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결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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