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창세기 28:10-22 】(새번역)
10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11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12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13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14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16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17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18 야곱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20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21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22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중심 구절】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창세기 28:15)
【핵심메시지】
하나님은 인생이 가장 불안하고 외로운 광야 같은 자리에서 야곱을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약속을 주시고, 그 만남이 야곱의 삶을 예배와 결단의 길로 바꾸셨다.
【한 줄 요약】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우리의 삶의 자리(하마콤)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시고 끝까지 함께하신다.
【말씀 나눔】
시인과 촌장이 부른 ‘풍경’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우리는 이 가사에 공감합니다. 물건도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편리하고 아름답습니다.
정리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집이 어지러운 이유는 물건이 많아서가 아니라, 물건에 주소가 없기 때문이다.” 주소가 없으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소를 모르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제자리는 어디일까요? 우리의 본향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 ‘안’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신앙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 되길 축복합니다.
야곱은 쌍둥이 형 에서의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속임수로 빼앗았습니다. 눈이 어두워진 아버지 이삭에게 형인 척 위장해 축복을 가로챈 것입니다. 형 에서는 분노해 야곱을 죽이려 했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급히 피신시킵니다. 야곱은 가진 것 하나 없이, 쫓기듯 밤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면,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이 걷다가 해가 졌습니다. 더 이상 갈 수 없었습니다. 돌 하나를 베개 삼아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기도하러 온 것도, 예배드리러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지쳐서 쓰러진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성경으로 원문을 보면, 이 구절에는 같은 단어가 세 번 반복됩니다. 그 단어는 ‘하마콤(הַמָּקוֹם)’이라는 단어로 ‘바로 그곳’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그냥 어떤 장소가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께서 미리 점찍어 두신 ‘바로 그 자리’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야곱에게는 그냥 아무 데나 눕는 잠 자리였습니다. 그저 돌 하나를 베고 누운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해 놓으신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소는 오늘 처음 등장하는 곳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바로 이 벧엘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곳입니다. 이방 신들의 땅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공개적으로 선포된 자리, 즉 예배가 시작된 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배했지만, 야곱은 도망치다 쓰러져 잤습니다. 그런데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준비된 이후에만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진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바로 그곳”입니다.
12~13절 앞부분에 보면,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운 야곱의 눈앞에 갑자기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땅에서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층계. 그 위를 천사들이 바쁘게 오르내립니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하나님이 서 계십니다. 위를 향해 올라가는 층계가 아니라, 하나님이 아래로 내려오시는 층계입니다." 여기서 이 층계의 방향이 중요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는 인간이 신을 만나러 위로 올라가기 위해 쌓은 탑이었습니다. 고대 바벨탑처럼 인간이 신에게 올라가려고 쌓은 탑입니다. 그래서 이 탑의 계단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향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본 층계는 다릅니다.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양방향의 통로이며, 그 위에 하나님이 서 계십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가오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야곱이 잠든 그 밤, 이렇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만한 자격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물도 없었고, 예배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와 형을 속인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그 자리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3~15절,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서는 실패자인 야곱,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그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함께 하심, 보호하심, 약속을 반드시 이루심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야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혼자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두려움에 정확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자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지키며, 끝까지 약속을 이루겠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셨던 약속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땅, 자손, 열방의 복에 대한 약속에 야곱에게 이어진 것입니다. 가족을 흩어 놓은 속임수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조상들에게 주셨던 약속을 다시 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순간입니까?
사람의 기준으로는 에서가 장자였지만, 하나님은 이미 야곱을 선택하셨고, 오늘 이 자리에, 이미 약속하신 대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언약의 계승자임을 분명히 확인해 주십니다.
이 하늘로 이어진 층계 이야기는 훗날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예수님의 선언으로 완성됩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1:51). 예수님은 나다나엘에게 야곱이 벧엘에서 본 그 층계가 바로 자신을 가리킨다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잇는 그 ‘층계’ 이십니다. 여러분, 예수님만이 하나님께로 갈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벧엘에서 시작된 은혜의 이야기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16~17절에 보면,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에서 깬 야곱은 한참 동안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내가 이 자리를 그냥 지나칠 뻔했구나.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 들판에, 하나님이 계셨구나.' 라고 생각하니 자신이 베고 잤던 그 돌베개가 갑자기 달라 보였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 자리가 하나님이 계신 자리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거기 계셨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베개로 삼았던 그 돌을 세워 기둥으로 삼고 기름을 붓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도망자가 잠을 자던 들판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실패의 자리가 예배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는 너무나 많이 실패했습니다, 나는 너무 오래 하나님을 떠나 살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오실 리 없습니다.'
여러분 야곱보다 더한 사람이 있을까요?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것을 빼앗고, 도망치다 쓰러진 그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이 벧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호세아서 12:4에 보면 야곱은 천사와 싸워서 이기자, 울면서 은총을 간구하였다. 하나님은 베델에서 그를 만나시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는 수백 년 후에도 벧엘을 기억합니다. 여기서 "우리에게"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야곱 개인의 경험이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신앙 고백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신 그 은혜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성된 사람과 함께하시는 분이 아니라 함께하시면서 완성해 가시는 분입니다.
이어지는 20절을 보면,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해 주시면 내가 어떻게 하겠다’라는 조건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조건도 없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 믿음이 생겼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상태입니다. 아직 계산적인 생각이 있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는 수준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야곱은 안전, 먹을 것, 돌아 옴이라는 현실적인 조건을 내걸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도 그것을 조건과 계산으로 다시 재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학창 시절, 시험 철이 되면 이런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빠, 이번에 100점 맞으면 새 핸드폰 사줄 거지?' 아버지는 황당합니다.
왜냐하면 아이의 말 속에는 '새 핸드폰을 안 사주면,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100점을 맞든 50점을 맞든 자식을 향한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자신이 내건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사랑을 믿겠다는 겁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조건을 다는 모습이 꼭 이 아이 같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 일이 잘 되면 더 헌신하겠습니다. 이 병이 나으면 더 충성하겠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에서 긍정적인 신호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면,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곳은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부분입니다.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신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신앙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22절을 보면,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것은 예배의 장소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십일조를 약속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의 삶의 방향이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성된 믿음이 아닙니다. 방향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야곱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야곱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수능을 마치고 원하던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입학식은 아직 멀었고, 등록금 걱정은 여전합니다. 합격증이 생겼다고 당장 생활이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약속은 받았지만, 현실은 아직 그대로인 겁니다.
야곱이 딱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주어졌지만, 눈앞의 현실은 여전히 도망자입니다. 그래서 흔들린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조건을 붙이며 믿을 때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향성입니다.
이 방향성을 잃으면 벧엘도 잃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벧엘의 이후 역사입니다
열왕기상 12:28~29을 합독하겠습니다.
28 왕은 궁리를 한 끝에, 금송아지 상 두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은, 너희에게는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해 주신 신이 여기에 계신다."
29 그리고 그는 금송아지 상 두 개를, 하나는 베델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솔로몬 이후 왕국이 분열되자 북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바로 이 벧엘에 금송아지 신전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자리,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자리, 그 벧엘에 금송아지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것을 조롱하며 벧엘을 벧아웬, 즉 '악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호 4:15; 10:5). 이름은 하나님의 집인데 내용은 우상의 집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SNS에서 유명한 맛집이라길래 한 시간을 줄 서서 들어갔는데, 막상 음식이 나오자 실망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시죠? 간판은 '맛집' 그대로인데, 양도 줄고 서비스도 달라졌습니다. 간판과 내용이 다른 겁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은 예배인데 하나님이 빠진 예배, 이름은 기도인데 나의 요구 목록을 읽는 시간, 이름은 벧엘인데 실제로는 벧아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벧엘의 경고를 흘려듣지 말고 나의 신앙이 이름은 벧엘인데, 내용은 벧아웬이 되어 있지는 않는지 냉정하게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첫째, 내가 지쳐 쓰러진 자리, 실패의 자리, 낙심의 자리도 하나님이 나를 만나 주시는 자리임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야곱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나를 만나시려는 '하마콤', 바로 그 자리임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 자리를 피하지 않고, 빈손으로 서 있는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둘째, 조건이 아니라 신뢰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야곱은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약속에 “만약 ~ 하면”이라는 조건으로 반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반응에 상관없이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조건으로 믿고 있습니까, 신뢰로 믿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만약 ~하면 믿겠습니다”가 아니라 결과에 상관없이 “제가 무조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내걸고 있는 모든 조건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셋째, 외형이 아니라 실제 하나님의 임재를 점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이름은 벧엘인데, 내용은 벧아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신앙은 벧엘입니까?
예배의 모양은 있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신앙이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과 실제로 동행하는 삶인지 정직하게 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벧엘의 역사는 경고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벧엘의 역사를 한 흐름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자리에서 시작되었고,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자리에서 확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우면서 변질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장21절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자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집은 건물이나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벧엘이 변질되지 않으려면 참 벧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신 궁극적 사건, 즉, 하나님이 직접 인간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사건이 바로 벧엘의 신학이 완성된 사건입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인간의 제자리는 어디일까요?
벧엘입니다.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참된 벧엘은 장소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제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도망자였습니다. 제자리를 잃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 들판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그 자리가 야곱의 제자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지금 야곱처럼 제자리를 잃고 도망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이름은 벧엘인데 내용은 벧아웬이 되어버린 신앙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준비되어야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지쳐 쓰러진 그 자리, 실패한 그 자리에 하나님이 먼저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너를 떠나지 않겠다.'
시인과 촌장의 노래처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다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적용】
① 지쳐 쓰러진 자리도 하나님이 만나시는 자리임을 믿으라.
② 조건이 아니라 신뢰로 하나님께 나아가라.
③ 외형이 아닌 실제 하나님 임재를 점검하라.
【결 단】
① 나는 하나님을 찾기 전에 나를 찾아오신 은혜를 인정하겠습니다.
② 나는 조건을 붙이는 신앙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③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경건 묵상】
1. 지금 나의 “하마콤(그 자리)”은 어디입니까?
2. 나는 하나님을 “조건으로” 믿고 있습니까, “신뢰로” 믿고 있습니까?
3. 나의 신앙은 “벧엘”입니까, “벧아웬”입니까?
【생활 적용】
1. 이번 주 말씀을 통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2. 말씀을 통해 결단하게 된 생활의 적용 점은 무엇입니까?
3. 나는 지금 하나님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상황에 떠밀려 살고 있는가?
4. 내 신앙은 벧엘인가, 아니면 이름만 남은 벧아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