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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나눔지 / Q&A

【6월 2주차 목장 나눔지】 우리가 함께 이루는 성전

작성자밀알(이선명)|작성시간26.06.13|조회수21 목록 댓글 0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6:12–20】

12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에도 제재를 받지 않겠습니다.

13 "음식은 배를 위한 것이고, 배는 음식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며, 주님은 몸을 위하여 계십니다.

14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런데,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떼어다가 창녀의 지체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6 창녀와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7 그러나 주님과 합하는 사람은 그와 한 영이 됩니다.

18 음행을 피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이지만, 음행을 하는 자는 자기 몸에다가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중심 구절】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 고린도전서 6:19

 

【핵심 메시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그 몸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몸 안에서 서로를 붙들어 함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 나눔】

 몸에서 분리된 손가락은 더 이상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는 자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유가 아니라, 자기 욕망을 정당화하는 자유로 변질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단호하게 묻습니다.

"너희가 무엇인지, 너희가 함께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 아느냐?"

 

 12절에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말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슬로건입니다. 그 자유의 언어 아래 공동체가 허물어집니다. 사도바울은 허용된다고 유익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이 아니라, 아무것에도 지배당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부활이 고린도 교회를 흔드는 이원론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몸을 살리셨고, 그 동일한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몸은 버려질 껍데기가 아닙니다.

 

 몸으로 행한 일은 영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 당시 수백 척의 민간 선박이 자발적으로 출항했습니다.

법적 의무는 없었습니다. 왜 나갔습니까? 그 답은 간단했습니다. "우리 병사들이었으니까요."

의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주님께 매인 사람만이 다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15절에 '떼어다가'로 번역된 헬라어 아라스(ἀράς)의 의미는 가볍게 가져가는 것이 아닙니다. 붙어 있는 것을 강제로 뜯어내는 폭력입니다.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내가 공동체를 떠나는 것만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다른 지체를 떠나게 만드는 것도 같은 구조입니다. 무관심, 말 한마디, 나의 자유가 약한 지체를 밀어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언제나 음행의 언어로 묘사됩니다. 창녀는 단순한 성적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깨고 다른 주인을 따라가는 것 전체의 상징입니다.

 

 16절과 17절에 동일하게 사용된 '합하는'(콜라오:κολλάω)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접착제로 붙이듯 밀착하는 연합을 의미합니다.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목장 자리가 교회입니다. 그 목장 안에서 지체를 떼어내는 것은 교회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18절, "음행을 피하십시오."는 현재 명령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도바 울은 싸우라고 하지 않고 피하라고 합니다. 한번만이 아니라 계속해서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9절에 성전으로 번역된 단어는 나오스(ναός)입니다. 이 단어는 성전 건물 전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를 뜻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너희 몸"은 복수인데 "성전"은 단수라는 점입니다. 우리 각자가 따로 성전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의 지성소를 이루는 것입니다.

 

 성막 시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제사장도 일 년에 단 한 번, 피를 가지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던 그 거룩한 자리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공동체 가운데 있습니다. 목장 식구들이 둘러앉은 그 자리,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는 바로 그 자리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성소입니다.

 

 20절에, 아고라조(ἀγοράζω)는 '값을 치르고 사다'라는 뜻으로, 노예 시장에서 쓰이던 말입니다. 그 값을 치르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 값은 주님의 보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값은 나 한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해 치러졌습니다. 그러므로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는 말씀은 단지 개인의 도덕 관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값 주고 사신 지체를 서로 귀하게 여기고, 함께 하나님이 거하시는 이 지성소를 세워 가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은 몸에 붙어 있을 때 살아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께 붙어 있고 서로에게 붙어 있을 때 살아 있습니다. 목장은 의무가 아니라 정체성의 자연스러운 응답입니다. 값은 이미 치러졌습니다. 그 사건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앉아 있는 이 자리가 지성소이며, 함께 이루는 이 공동체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적용】

① 내가 붙어 있는가를 먼저 물으십시오.

목장에 나가야 한다는 의무감보다 먼저, 내가 지금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뿌리가 살아 있으면 가지는 자연스럽게 자랍니다. 공동체에 나가는 것이 힘겹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연결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 이번 주 하루 10분, 말씀 앞에 조용히 앉아 보십시오.

 

② 내가 떼어내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한동안 목장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먼저 연락한 것이 언제입니까? 무관심은 악의가 없어도 ἀράς가 됩니다.

  이번 주 안에 그 사람에게 전화 한 통, 문자 한 줄을 먼저 보내십시오. 그것이 지성소를 세우는 일입니다.

 

③ 내 몸이 지성소라는 것을 하루에 한 번 고백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혹은 잠들기 전에 이 한 문장을 고백해 보십시오.

"나는 성령이 거하시는 지성소입니다. 오늘도 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습니다."

거창한 결단이 아닙니다. 정체성을 매일 붙드는 훈련입니다.

 

【결 단】

① 주님, 자유의 이름으로 공동체에서 조금씩 멀어졌던 모습을 내려놓겠습니다.

② 주님, 내가 다른 지체를 떼어내고 있지는 않은지 이번 주 돌아보겠습니다.

③ 주님, 우리가 함께 주님의 지성소임을 고백하며, 이 거룩한 공동체를 붙들어 가겠습니다.

 

【경건 묵상】

1. 나를 그리스도의 몸에서 조금씩 떼어내려는 것이 지금 무엇입니까?

   편안함입니까, 바쁨입니까, 오래된 상처입니까?

   그것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아 보십시오.

 

2.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이 지금 내게 어떻게 들립니까?

   부담으로 들립니까, 아니면 안도로 들립니까?

   그 차이가 무엇을 말해주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3. 성령이 지금 내 안에 거하신다면, 오늘 내가 달리 선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생각, 말, 행동 가운데 하나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십시오.

 

【생활 적용】

1. 이번 주 말씀을 통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2. 말씀을 통해 결단하게 된 생활의 적용 점은 무엇입니까?

 

3. 이번 주 내가 다른 지체를 붙들어 줄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 하나는 무엇입니까?

    연락, 방문, 격려의 말, 함께 식사….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를 정하고 언제 실행할지 날짜까지 정해 보십시오.

 

4. 내 일상의 어느 자리에서 "나는 값으로 사신 자"라는 정체성을 가장 잊어버리기 쉽습니까?

   직장입니까, 가정입니까, 혼자 있는 시간입니까?

   그 자리에서 이 정체성을 붙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추천 찬양】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예배자입니다, 나의 모습 나의 소유, 오직 예수뿐이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교회,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그 사랑,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내 삶은 주의 것, 주님은 산 같아서, 내 삶 드리리, 주 품에, 십자가 그 사랑 // 믿음으로 나아가네

찬송가 36장 성령이여 강림하사, 찬송가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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