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말씀: 마태복음 20:26-28]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나눔]
세상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서 질주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 앞 만 보고 달려갑니다.
그런데 각 사람의 성공의 기준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고위직에 도달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더 이상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인생을, 또 어떤 사람은 많은 재산이 아니라도 자신이 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을 때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누군가는 자신이 죽을 때 곁에 많은 사람이 남아 있는 삶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삶의 목적에 따라서 성공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 암 투병 중에 써 내려간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라는 책에서 그는 삶의 목적을‘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삶의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경영학적 이론에 기반 한 인생 경영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의 이론은 결국 내 자신이 세운 기준을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목표를 정해놓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도중요합니다.
성공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10% 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10번 시도하면 1번은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번의 실패에 초점을 두지 말고, 1번의 성공에 초점을맞추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9번의 실패는 1번의 성공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은결과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모두 성공을 지향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무엇이 성공인가? 하는 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매우 역설적인 성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성공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성경에서 제시하는 삶의 목적이 세상과는 다르기 때문에 성공한 삶에 대한 평가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구별된 성도로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성공한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베대의 두 아들에 야고보와 요한 대한 어머니의 청탁에서 시작됩니다.
세베대의 아내는 예수님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청탁합니다.
자식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제자로서 가지고 있는 메시야 상에 조금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공하고 싶다면 먼저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먼저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평행 본문인 마가복음 10:44에 보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마가복음에서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고 큰 자리를 차지하라 말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밟고 일어서야 합니다.
아주 초등학교부터 우리 사회에서 가르치는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좋은 대학, 남보다 더 좋은 직장을 추구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이 기득권층에 분노하는 것은 자신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회를 기득권의 자녀라는 이유로 누리고 있어 그 출발점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정당하지 않음에서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성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하려면 먼저 섬기고 높아지려면 먼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성공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세상과는 정 반대 개념으로 성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 그 방법을 제시합니다.
2장 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 알 수 있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쏟고 계십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들을 섬기고 보살피고 심지어는 예수님 자신의 목숨을 그들의 생명을 사는 값으로 치르십니다.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마음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공감하고 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이 아프면 대신 아프고 싶고, 자식이 죽어 가면 내가 대신 죽고 자식을 살리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을 이러한 사랑을 초월합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여러분!
만약에 하나님께서 바퀴벌레를 살리기 위해서 여러분의 목숨을 내 놓으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권좌에서 보시기에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들 섬기고 보살피셨습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 목숨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특징은 겸손과 순종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기 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낮추심 정도를 따라가려면 오물통의 구더기 차원으로 내려가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자존심, 체면 이런 것은 애초에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런 조건 없이 순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냐면 이처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사랑하심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벌레만도 못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들을 살리시기 위해, 우리들이 죽지 않고 영생을 받게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 놓으실 만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서두에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암 투병 중에 쓴 책에서 삶의 목적을‘내가 되고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다 이루셨기때문에 예수님은 육신으로도 성공한 삶을 살았다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여 주심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목적이 곧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우리들도 이 땅에 온 목적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하나님이 위임하여 주신 통치권으로 다르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즉 온 만물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통치권이 미치는 물리적인 공간을 영토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일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온 땅이 하나님의 영토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온 땅이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는 것은 너무 큰 개념이니 우리들의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행하는 것이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것이 될 까요?
빌립보서 2:1-4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어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아라!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우리가 성도로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말씀의 가장 중요한 단어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단어입니다. 모든 일을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통치권 아래에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서로 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 자신의 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이 잘 되도록 돌아보아야 합니다.
4절에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라는 말씀 중에 돌보다(σκοπέω:skopeo)는 단어의 원어의 뜻에는 주목하여 보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일을 관심 있게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무엇으로 섬겨야 할지 보인다는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시는 다른 사람의 범위는어디까지 일까요?
먼저는 교회의 지체들입니다.
우리 교회 실정에 맞게 조금 더 축소시켜 보면 목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장 안에서 목자․목녀의 섬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돌아보아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목장 안에서의 섬김은 서로 섬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원들끼리 서로를 섬기고, 목자․목녀가 목원을 섬기고, 또 목원들이 목자․목녀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시는 다른 사람의 범위 두 번째는
지역에 모인 신자들의 모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그 범위를 줄여보면, 목장의 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빛고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드릴 때 주일 예배를 연합예배라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 예배는 목장들이 연합하여 드리는 목장 연합예배입니다.
즉 연합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서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배후 함께 나눌 애찬을 준비해야 한다면, 먼저 나서서 섬기면 됩니다.
돌아보아서 아무도 섬기지 않는 분야가 내 눈에 들어온다면 내가 먼저 가서 그 부분을 섬기면 좋습니다.
시골 교회를 섬기는 어떤 집사님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교회에 오면 화장실 청소를 아무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더랍니다.
그래서 본인이 고무장갑을 끼고 매주 열심히 화장실을 청소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안 들어오고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섬김의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이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모습을 본 다른 성도들도 도전을 받고 교회 구석구석 청소하고 가꾸는 일에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억지로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서 기쁨으로 섬기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섬김이 교회 전체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빌립보서에서 말씀하시는 다른 사람의 범위는 잠정 신자들,즉 구원의 대상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 실정에 맞게 다시 표현한다면 VIP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아직 교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영혼에 상처가 많아서 치유가 필요한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연약한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 안에서 성장 할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으로 주목하여 본다면 그들의 필요를 알게 되고 그 필요를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섬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다는 것은 첫 번째, 겸손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 즉 일체의 거만함과 오만함이 없이 낮은 자세로 서로를 섬기는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을 우리는 ‘제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명을 예수님은 마태복음 28장에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지 않으면 이단이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이단과 교회와의 차이는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즉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살아가면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없이 행하는 신앙생활은 변질되기 십상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의 자녀들이 변질된 이유,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초심을 잃어버린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곧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이고, 예수님을 잃어버리면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을 잃어버린 것이 됩니다. 결국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됨으로서 실패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꿈을 이루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우리들의 이웃들에게 전해지는 은혜를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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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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