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칭의. 의롭다 여김을 받는 건 세례 같은 의식이나 절차가 아닌 ‘믿음’이라고 했다.
이신칭의는 종교개혁 때 교회국가의 행위중심적인 모습을 비판하는 근거로 쓰였다.
하지만 ‘믿는다’고 말하는 건 누구나 쉽고 빠르게 할 수 있기에,
신자(국민)를 빠르고 간편하게 모으고 싶었던 국가교회에 의해 본 뜻을 잃고 이용되기도 했다.
믿음의 핵심은 말에 있지 않다.
진정한 믿음은 고백한대로 살고 행하고 있는지에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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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믿는다고 말하곤 하지만 막상 위기가 닥쳐오면 하늘을 잊는다.
내 연약함을 하늘 앞에 솔직하게 내어놓지 못하고, 혼자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고 우긴다.
처절하게 무너지고 나서야 하늘을 떠올린다.
기도하면서도 하늘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 하고 있었구나... 믿는다고 하고는 믿지 못했구나..
사람을 믿는다는 말도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기 쉬운 것 같다.
‘난 널 믿어’라는 말에 체념이 담겨있지는 않았는지, 사실 믿는다는 말로 모든 책임을 넘기고 있는 건 아니었을지...
믿음을 ‘행’하자.
하늘 아래서, 사람 앞에서 나를 내어맡겨야 할 때 내어맡길 줄 알고, 손 내밀어야 할 때 내밀 줄 알고 싶다.
시간이 흐른 뒤에 부끄럽지 않도록 믿음을 삶의 자취로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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