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유아세례가 그렇게 목숨까지 걸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국가교회에 대한 저항과 탈주로 본다면 유아세례는 국가교회 시스템의 시작점이었다. 그래도 그럴수도 있지 하며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유아세례나 재세례에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아니 걸기로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결단과 삶 앞에서, 지금 우리가 목숨까지 걸만큼 소중하게 지키고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진리의 어느 한 부분을 너무 강조해서 다른 영역이 가볍게 되면 그 또한 진리를 가리는 일이 될 수 있다. 종교개혁의 이신칭의가 다른 것을 덮어버렸던 것 같다. 그런 흐름에서 경건주의 운동이 꿈틀거리고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당연하게 보였다.
어떤 개혁이나 저항도 일단 권력과 가까워지면 어느새 자기가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권력을 얻으면 그 뜻을 국가의 방식으로 관철시킨다. 그것이 계속 반복되어 온 것을 본다. 박해받던 기독교가 국교가 되자 박해하는 교회가 되었고, 권력과 가까웠던 일부 후스파들이 처음 뜻을 계속 지키던 후스파 동지들을 탄압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세력을 얻고 주류가 되자 한때 동지였던 이들을 장애물로 여기고 추방하고 죽였고, 핍박받던 메노파가 러시아에서 세력을 얻고 공식 교회가 되자 또다른 메노파 형제들을 핍박했다. 내용보다 그 내용을 펼쳐가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 역사에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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