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한민국 군대는,폭력이 일상화 대 있던 시절.유격대 첫날 대략 3시간은 집단 폭행 당한 기억이 새롭다.일제 잔재,그리고 추운 겨울 3개월간 유격 훈련,지나고 보니 잘 견딘 세월이다.지금은 신경통으로 남아 .왼쪽 엉치 종아리 날씨가 흐리면 몹시 저림이 ,윗 사진을 국가와 군대 그리고 특수 부대의 폭력,평론글 부탁 합니다.영문 포함.감사 합니다.
선생님의 작업이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주제는 단순한 군 복무의 회상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의 신체를 어떻게 길들이고 기억을 새기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진은 그 관점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국가의 기억은 몸에 새겨지고, 폭력은 피패한 골병이 된다 ― 한국 군대와 특수부대의 폭력에 관한 사진 비평
이 사진은 군인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다.
국가가 한 인간의 몸을 어떻게 자신의 소유물처럼 사용했는지를 기록한 사진이다.
20세기 대한민국의 군대, 특히 유격훈련과 특수부대 문화는 단순한 전투기술 습득 과정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폭력은 예외가 아니라 규칙이었고, 구타는 훈련의 일부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였다.
첫날 몇 시간 동안 이어지는 집단폭행.
그 폭력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고,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강요받았다.
국가는 말한다.
그러나 몸은 다른 언어를 기억한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흐린 날이면 왼쪽 엉치와 종아리를 타고 내려오는 신경통은 국가가 남긴 하나의 문장이다.
몸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폭력은 지나가는 사건이 아니라 신경 속에 정착한 기억이다.
국가는 왜 폭력을 교육이라 불렀는가
국가는 시민을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는 몸으로 다시 제작한다.
명령에 즉각 반응하는 몸.
생각보다 반사가 먼저 움직이는 몸.
질문하지 않는 몸.
그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언어는 토론이 아니라 폭력이었다.
구타는 인간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만들기 위해 존재했다.
폭력을 견딘 사람만이 조직에 속할 수 있다는 논리는,
폭력이 다시 후배에게 반복되는 구조를 만든다.
폭력은 개인의 성격이 아니라 제도의 유산이다.
일제의 그림자는 끝났는가
대한민국 군대는 해방 이후 만들어졌지만,
그 문화의 상당 부분은 일본군과 식민지 군사문화의 흔적을 이어받았다.
절대복종.
상급자의 무조건적 권위.
체벌을 통한 통제.
인간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사고.
이것들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식민 권력이 남긴 통치기술이었다.
해방은 국기를 바꾸었지만,
몸을 지배하는 방식은 오래도록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진은 군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사진은 상처를 재현하지 않는다
사진 속 몸은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을 보여준다.
폭행은 사라졌지만,
통증은 현재형이다.
훈련은 끝났지만,
신경은 아직 제대하지 못했다.
국가는 전역증을 발급했지만,
몸은 아직 복무 중이다.
이 사진은 바로 그 모순을 기록한다.
사진은 국가에게 질문한다
국가가 요구한 희생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폭력을 견딘 청춘들은 무엇을 보상받았는가.
그리고 아직도 몸속에 남아 있는 고통은 개인의 책임인가,
아니면 국가가 끝내 책임지지 않은 역사인가.
이 사진은 과거를 추억하지 않는다.
국가폭력이 개인의 신체를 통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사진은 기억이 아니라,
고발이다.
The State Writes Its Memory on the Body, and Violence Becomes Nerve A Photographic Critique of Violence in the South Korean Military and Special Forces
This photograph is not a record of a soldier.
It is a record of how the state once treated a human body as its own property.
For much of twentieth-century South Korea, especially within special-forces and survival training, violence was not an exception but a norm. Beatings were not merely disciplinary acts; they functioned as the language of authority itself.
Hours of collective assault on the very first day.
Violence was justified as training.
Silence was demanded in the name of patriotism.
The state insisted:
"It was necessary to build stronger soldiers."
Yet the body remembers a different truth.
Decades later, pain running through the left hip and calf whenever the weather turns damp becomes another sentence written by the state.
The body never lies.
Violence does not disappear with time.
It settles into nerves, muscles, and memory.
Why Was Violence Called Education?
Military institutions do not merely produce soldiers.
They manufacture obedient bodies.
Bodies that react before they think.
Bodies that execute orders without hesitation.
Bodies that learn submission before judgment.
Violence became the fastest educational language.
Its purpose was not simply to inflict pain but to transform identity.
Those who survived the violence often became the next generation of its enforcers.
Violence thus ceased to be an individual's cruelty and became the inheritance of an institution.
Has Colonial Militarism Truly Ended?
Although South Korea became politically independent, many military practices continued to reflect the legacy of Japanese colonial militarism.
Absolute obedience.
Unquestionable hierarchy.
Corporal punishment as discipline.
The supremacy of the organization over human dignity.
These were not traditions but technologies of colonial rule.
Political liberation did not automatically liberate the body.
This photograph therefore exposes not only military history but the unfinished legacy of colonial power embedded within institutional culture.
Photography Reveals Invisible Pain
The body in the photograph appears silent.
Yet silence itself becomes testimony.
The beating has ended.
The pain has not.
Military service ended.
The nerves never received their discharge.
The state issued a certificate of completion,
but the body remains on active duty.
Photography transforms invisible suffering into visible political evidence.
A Final Question
Who truly benefited from the sacrifices demanded by the state?
What compensation has been given to those whose youth was shaped by institutional violence?
And when pain survives for decades,
does responsibility still belong to the individual—
or to the state that never fully acknowledged what it imposed?
This photograph does not preserve nostalgia.
It indicts a history in which state violence continues to exist inside the living body.
It is not a memory.
It is testimony.
이번 책에서는 이 글을 한 걸음 더 밀어붙여 미셸 푸코의 규율권력, 조르조 아감벤의 예외상태, 프란츠 파농의 식민적 폭력, 그리고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의 『고통받는 몸(The Body in Pain)』을 함께 엮으면, 선생님의 사진집 전체를 관통하는 "국가폭력과 몸의 기억"이라는 철학적 축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날 것입니다. 저는 그 방향이 선생님의 작업 세계와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대략 핵심을 얘기 합니다.그럼에도 조금더 적나라한 적극적인 글 부탁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방향을 이해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글은 '폭력을 분석하는 글'에 가까웠다면, 선생님께서 책에 담고자 하는 것은 국가폭력을 직접 고발하는 사진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단정하거나 특정 집단 전체를 일반화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충분히 급진적이고 비판적인 글은 가능합니다.
다음은 그 방향으로 다시 쓴 원고입니다.
국가는 내 몸을 병사로 만들었지만, 폭력의 흔적은 끝내 시민에게 돌려주었다
이 사진은 군 생활의 추억이 아니다.
국가가 청년의 몸을 어떻게 하나의 군사 장비로 분해하고 다시 조립했는지에 대한 증거이다.
군복은 조국을 상징했지만, 그 군복 안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폭력이었다.
유격 첫날.
이유도 설명도 없이 이어지는 집단 구타.
인간을 단련한다는 이름으로 사람을 부수는 의식.
그 시간은 전투기술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해체하는 정치적 의례였다.
국가는 그것을 '훈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폭력은 이름을 바꾼다고 교육이 되지 않는다.
주먹은 언제나 주먹이며, 폭력은 언제나 폭력이다.
그 시절 수많은 청년들은 적과 싸우기 전에 먼저 같은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맞아야 했다.
국가는 적을 만드는 것보다 복종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다.
총을 다루기 전에 몸을 굴복시키고,
전술을 배우기 전에 침묵을 배우게 했다.
폭력은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조직문화의 일부였으며, 권위가 자신을 재생산하는 가장 값싼 기술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단지 개인의 성향으로 설명될 수 없다.
식민지 군사문화, 냉전의 반공주의, 권위주의 국가가 결합하면서 폭력은 효율적인 통치기술로 제도화되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이름으로 국민의 몸을 먼저 길들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청춘은 전역했지만, 몸은 끝내 전역하지 못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비가 오기 전이면 엉치와 종아리를 타고 내려오는 통증.
신경은 국가가 남긴 마지막 문서이다.
그 문서는 폐기되지 않는다.
국가는 훈련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몸은 아직도 당시의 명령을 기억한다.
근육은 잊지 않고,
신경은 용서하지 않는다.
이 사진은 군인을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국가폭력이 인간의 신체에 얼마나 오래 거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법의학적 기록이다.
전쟁은 끝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몸에 남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정 강한 국가는 시민에게 공포를 가르치는 국가가 아니다.
폭력을 훈련으로 미화하지 않는 국가,
희생을 애국이라는 말로 덮지 않는 국가,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국가이다.
이 사진은 과거를 회상하지 않는다.
국가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바친 청춘은, 왜 평생 자신의 몸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가.
The State Turned My Body into a Soldier, but Returned Its Violence to Me as a Civilian
Military service is not what this photograph remembers.
It remembers how the state dismantled a young human body and rebuilt it into an instrument of obedience.
The uniform symbolized the nation.
Yet the first lesson was not democracy or duty.
It was violence.
On the first day of special-force training came collective beatings.
No explanation.
No justification.
Only the ritual of breaking a person before rebuilding a soldier.
The state called it "training."
Violence, however, never becomes education simply because authority renames it.
A fist remains a fist.
Violence remains violence.
Before confronting any external enemy, countless young conscripts first confronted violence from within their own institution.
The state often invested more in manufacturing obedience than in cultivating independent judgment.
Before learning tactics, they learned silence.
Before mastering weapons, they learned submission.
This culture cannot be reduced to individual cruelty alone.
It reflected the intersection of colonial military legacies, Cold War authoritarianism, and institutional practices that normalized coercion as an efficient means of discipline.
Many soldiers eventually left the military.
Their bodies never truly did.
Decades later, pain still travels through nerves whenever the weather changes.
Those nerves have become the state's final archive.
Muscles remember.
Nerves refuse to forget.
This photograph is not about military service.
It is forensic evidence of how institutional violence can continue living inside the human body long after the uniforms are folded away.
The war may have ended.
The body's war has not.
A truly strong nation is not one that teaches fear.
It is one that refuses to disguise violence as education, refuses to romanticize suffering as patriotism, and possesses the courage to confront its own history.
This photograph is not nostalgia.
It is an unfinished question addressed to the state:
Why should those who devoted their youth to the nation continue fighting the nation's violence within their own bodies for the rest of their lives?
이 글은 선생님의 사진집 전체의 방향과도 잘 연결됩니다. 특히 '국가는 기억하지 않지만, 몸은 기억한다.'라는 문장을 중심축으로 삼으면,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개인의 회고가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의 신체 기록으로 읽히는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전 글이 차라리 속직 담백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선생님의 글은 수사를 많이 붙일수록 힘이 약해집니다. 선생님 사진의 힘은 '있는 그대로의 증언'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방금 쓴 글은 표현은 강하지만 문학적 장식이 많아져 오히려 사진보다 글이 앞서는 느낌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전 글의 이런 문장들이 더 강했습니다.
이런 문장은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남습니다.
선생님의 사진집을 계속 함께 보면서 느끼는 점은, 선생님의 글은 분노를 외치는 글보다 담담하게 고발하는 글이 더 큰 힘을 가집니다. 독자가 스스로 분노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제안드린다면, 이전 글을 바탕으로 딱 한 단락만 더 추가하는 정도가 가장 좋겠습니다.
이 정도의 밀도가 오히려 선생님의 사진과 잘 어울립니다.
선생님과 여러 날 작업하면서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선생님은 흔히 말하는 '선동적인 글'을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진 한 장이 철학이 되는 글, 한 문장이 독자의 가슴에 오래 남는 글입니다.
앞으로는 그 방향을 더 의식해서, 장식은 줄이고 문장의 밀도와 사유의 깊이를 높여 함께 작업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선생님의 사진 세계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