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제가 느낀 점은, 선생님이 원하는 것은 감성적인 작가노트도, 예술가의 자기소개도 아닙니다. 사진을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차원에서 정의하는 하나의 선언(Manifesto) 입니다.
저는 오히려 LOUNGE PHOTO ART 선언문(Manifesto) 형식이 선생님의 작업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LOUNGE PHOTO ART MANIFESTO YH. PARK
사진은 현실을 복제하지 않는다.
사진은 현실을 둘러싼 권력의 질서를 해체하는 가장 조용한 정치적 행위이다.
카메라는 단순히 빛을 기록하는 기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권력의 구조를 가시화하는 철학적 장치이다.
나는 풍경을 촬영하지 않는다.
나는 시대가 생산한 권력의 흔적을 촬영한다.
국가는 자신을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재현하지만,
사진은 그 재현의 균열 속에서 은폐된 진실을 발견한다.
미디어가 사건을 소비하는 동안,
사진은 사건 이후에도 남아 있는 인간의 시간을 기록한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언어로 기록되어 왔다.
그러나 사진은 패자의 침묵을 기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언어이다.
그래서 사진은 기록이 아니라,
기억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이다.
사진의 대상은 사물이 아니다.
권력에 의해 삭제된 존재이며,
이름을 잃은 인간이며,
애도조차 허락받지 못한 생명이다.
국가는 망각을 생산하고,
자본은 이미지를 소비하며,
미디어는 속도를 생산한다.
그러나 사진은 그 모든 속도를 거부한다.
사진은 멈춤의 예술이 아니라,
사유의 저항이다.
나는 사진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종종 현실을 중화시키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이며,
진실이 아니라 진실을 둘러싼 권력의 구조이다.
사진은 현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를 질문한다.
한 장의 사진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가능하게 만든 사회의 구조를 증언한다.
따라서 사진가는 목격자가 아니다.
사진가는 시대가 은폐한 구조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이며,
이미지 속에서 권력의 언어를 해독하는 철학자이다.
LOUNGE PHOTO ART는 장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대상이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 이해하려는 하나의 방법론이며,
사진을 미학이 아니라 인문학으로 복원하려는 실천이다.
사진은 예술이기 이전에 사회비평이며,
사회비평이기 이전에 윤리이고,
윤리이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기억이다.
나는 사진을 찍지 않는다.
나는 한 시대가 스스로를 어떻게 배반했는지를 기록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시대를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들을 기록한다.
Artist's Manifesto LOUNGE PHOTO ART YH. PARK
Photography does not reproduce reality.
It quietly dismantles the structures of power that shape reality.
A camera is not merely an optical device.
It is a philosophical instrument that renders visible what power seeks to keep invisible.
I do not photograph landscapes.
I photograph the traces of power embedded within history.
The state represents itself through the language of law and order.
Photography searches for the fractures within that representation.
While the media consumes events,
photography preserves the human time that remains after the event has disappeared.
History has long been written in the language of the victors.
Photography, however, possesses the rare capacity to preserve the silence of the defeated.
Photography is therefore not documentation.
It is a political struggle over memory.
Its subject is never an object.
It is the erased existence,
the nameless human being,
the life denied even the right to be mourned.
States manufacture forgetting.
Capital commodifies images.
Media accelerates time.
Photography resists all three.
It refuses speed in order to recover thought.
I do not pursue beauty.
Beauty often neutralizes reality.
What I pursue is not beauty but truth,
and beyond truth,
the structures of power that determine what may appear as truth.
A photograph does not explain reality.
It asks why reality has taken its present form.
Every photograph is not merely an event.
It is evidence of the social conditions that made the event possible.
The photographer is therefore not simply a witness.
The photographer is an archaeologist of hidden structures,
a philosopher decoding the language of power embedded within images.
LOUNGE PHOTO ART is not a photographic genre.
It is a methodology that restores photography to the humanities, treating human beings not as visual objects but as historical subjects.
Photography is, before art,
social criticism.
Before social criticism,
it is ethics.
Before ethics,
it is the memory of democracy.
I do not simply make photographs.
I document the ways an era betrays itself—
and the human beings who refuse to surrender to that betrayal.
저는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의 사진 세계를 보면, 단순한 작가노트를 넘어 'LOUNGE PHOTO ART 선언(Manifesto)'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사진철학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푸코의 권력론,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 버틀러의 애도 가능한 생명, 아감벤의 벌거벗은 생명, 그리고 보드리야르의 이미지 비판을 사진학의 언어로 통합하여, 'LOUNGE PHOTO ART Theory'라는 독자적인 사진철학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더 이상 작가를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선생님의 사진 세계를 규정하는 이론적 토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 방향이 지금까지의 작업 흐름과 가장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이번 대화를 통해 선생님께서 추구하시는 방향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선생님은 사진을 설명하는 글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가 하나의 철학이 되도록 하는 글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감상문이나 수필적인 표현은 최대한 배제하고,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작업하겠습니다.
- 이미지의 구조를 분석한다.
- 권력과 사회구조를 해부한다.
- 현상을 철학적으로 증명한다.
- 사진학의 새로운 개념을 제안한다.
- 결론은 사진의 미학이 아니라 사진의 존재론으로 마무리한다.
또 하나 느낀 점은, 선생님의 작업은 특정 철학자의 이론을 단순히 적용하는 단계를 조금씩 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푸코, 보드리야르, 버틀러, 아감벤, 아렌트, 랑시에르를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사유를 바탕으로 YH. PARK의 사진철학을 구축하는 방향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론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부터 새로운 이론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은 수준을 목표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선생님의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 장의 사진을 하나의 독립된 철학적 텍스트로 다루겠습니다. 각각의 평론이 모여 한 권의 책을 이루더라도, 모든 글이 서로를 반복하지 않고 저마다의 문제의식과 개념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이 작업이 단순한 사진집이 아니라, 한국의 인문사진학(Humanistic Photography)을 새롭게 제안하는 중요한 작업이 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함께 깊이 있는 작업을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앞으로는 모든 원고에서 다음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겠습니다.
- YH. PARK (작가명)
- LOUNGE PHOTO ART (프로젝트 및 예술 브랜드명)
- Artist Statement 또는 Manifesto (영문 제목)
- 작가노트 또는 선언문 (국문 제목)
또 하나 제안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은 일반적인 사진가의 "작가노트"보다 선언문(Manifesto) 형식이 훨씬 잘 어울립니다. 역사적으로도 강한 예술운동들은 모두 선언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미래주의 선언, 초현실주의 선언, 플럭서스 선언처럼, 선생님의 작업 역시 『LOUNGE PHOTO ART MANIFESTO』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면,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하나의 사진철학을 제시하는 문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이 선언문을 더욱 발전시켜 **『LOUNGE PHOTO ART MANIFESTO』**를 하나의 독립적인 사진철학 문서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함께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의 대화를 통해 볼 때, 그 방향이 선생님의 사진 세계를 가장 깊이 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