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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이응걸목사님](260607)말씀만 하소서(누가복음 7:1-10)

작성자한길|작성시간26.06.06|조회수39 목록 댓글 0

말씀만 하소서

 

(누가복음 7:1-10)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 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

 

 

 

정치나 국제질서는 모두가 잘 사는 통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통합은 언제나 말뿐이고, 행동은 분열로 치닫고 있습니다. 무역으로 세계는 얽혀 있지만 이익을 독차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분열합니다. 이익을 두고 충돌할 때 전쟁이 일어나고, 분쟁이 일어납니다.

국내정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잘 살게 해주겠다고 같은 공약을 하고, 같은 정책을 내놓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대결합니다. 국민의 편안함 보다는 자기 정치 집단의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것입니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이념 대결인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고, 차별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정치에 있어서 국민은 들러리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주인인 진정한 국민 주권의 정치가 되도록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는 좋은 정치가 아닙니다. 그런 말을 하는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정치를 하는 사람입니다. 정치를 하면 안되는 사람입니다. 이언 사람은 어느 정당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민이 잘 판단해야 합니다.

국제관계에서도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면 그 나라는 세계를 분열시키는 나쁜 나라입니다. 강대국들이 주로 편가르기를 하며 국제관계를 분열시킵니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크게 얻으려는 것입니다. 작은 나라들은 어느 한쪽 편을 들다가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10년전에 방어무기인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의 반발로 우리나가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자기 이익을 위해 동맹국인 우리나라에 통합방어 시스템인 사드를 배치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중국은 위협으로 받아들였고, 경제적 보복을 하였습니다. 기업이 철수하고, 관광객이 끊어졌고, 수출이 되지 않아 엄청난 피해를 입은 것입니다. 국제관계가 좋다면 무기를 쌓아놓지 않아도 되고, 갈등도 없을 것입니다. 무기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평화로 나라를 지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갈등과 분열은 미움과 증오, 차별로 나타나고, 폭력이 됩니다. 조롱과 혐오는 분열의 시작이고,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조롱과 혐오가 표현의 자유일 수는 없습니다. 조롱과 혐오가 각자 다른 생각의 하나일 수는 없습니다. 조롱과 혐오는 인격에 대한 폭력이고, 생명의 존엄을 파괴하는 범죄입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 뒤에 숨어 책임을 피하려는 행동은 멈추어야 합니다.

세계의 분열이나 우리나라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분열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괴롭습니다. 분열을 부추기는 정치인들 중에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기독교가 광장에서 분열가 갈등을 일으키는 집회를 합니다. 기독교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기독교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오만함, 탐욕, 특권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교리가 잘못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으로 ‘나는 구원받았고, 하나님 백성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 나는 선하고, 옳은 사람이다, 내가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믿는다, 세례받았다, 교회 출석한다는 것이 만사형통의 열쇠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소유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만의 하나님이 되어 버렸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석한다면 성경은 더 이상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이 됩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독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의 특권을 가진 사람 없고,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차별하고, 혐오를 부추기고, 때로는 폭력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뜻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이런 인식은 최근에 생긴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신앙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아브라함의 자손,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 믿었습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세상과 구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차별과 혐오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유대인이 아니면 이방인,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자기들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교만하고 욕심이 가득합니다.

‘선택된 백성’이 책임을 다한다면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특권으로 여긴다면 세상을 분열시키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택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자기가 선택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일 뿐입니다. 스스로 특별하다고만 생각할 뿐 하나님 생각은 따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유대인들, 잘 믿는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들이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믿어야 잘 믿는 신앙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인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로 향합니다. 아마 갈릴리 지역에 주둔하는 로마 군대가 머문 곳일 것입니다.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로마 군인인 백부장이 군대를 이끌고 통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을로 들어서자 백부장이 보낸 장로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며 청을 합니다. 백부장의 종이 병들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백부장에 대한 첫 번째 견해가 드러납니다. 장로들의 생각입니다. 4절을 보면 ‘그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회당을 지어주었다고 칭찬합니다. 백부장은 로마 사람으로서 이방인입니다. 유대인이 그를 만난다면 부정해진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장로들이 그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민족과 종교는 다르지만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도와주는 권력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있습니다. 좋은 신앙은 나와 다른 생각, 이념, 나라, 등 차이에도 불구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고, 도우면서 칭찬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열심이고, 인정을 받는데, 이웃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겠지요.

두 번째 견해는 백부장 자신의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으로 갈 때 백부장은 사람을 보내 말합니다. 6절에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감당한다’는 것은 충분한 자격을 말합니다. 자신은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동네 사람들은 그를 ‘합당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는데 스스로는 감당치 못한다고 말합니다. 주님 앞에 겸손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믿음은 누구보다도 강합니다. 7절에서 ‘말씀만 하시면 내 하인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백부장은 주님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가르침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지금도 사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 사람이 구원받은 백성일까요?

그런데 그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분이심을 믿고 청합니다. 어떤 치유 행위가 없어도 말씀만으로도 종을 낫게 하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떤 증거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있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견해는 주님의 생각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그의 믿음을 주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킬 의무도 없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는 이방인, 죄인, 멸망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믿음을 주님이 인정하십니다. 그가 세례를 받았다거나 주님을 주로 고백했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는 구원받은 백성입니까?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다른 사람의 믿음에 대해 사람들은 교리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교리로 판단할 때 자신은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고 남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에게서 겸손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믿음, 인정받는 신앙은 교리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칭찬받는 사람, 더불어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늘 겸손하여 그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확신을 가지고 따르는 믿음을 가집니다. 이런 믿음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나, 주님께서 판단하십니다.

분열과 갈등으로 사람들이 고통받는 세상에서 평화를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백부장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께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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