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사랑받은 사람
(누가복음 7:40-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많은 사람이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과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노래입니다.
사람들이 느끼는 위기 가운데 가장 심각한 위기는 경제적 위기도 아니고, 전쟁과 폭력 같은 위기도 아닙니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은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위기는 자신의 존재에 관한 위기입니다. 쉽게 말해 ‘내가 살아서 무엇하느냐’는 좌절, 상실감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통해 배우는 것은 ‘예수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은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은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4:8)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을 통해 받는 축복은 건강과 물질의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가 자녀를 사랑하고,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어떤 어려움도 참아낸다고 합니다. 곧 사랑하는 자녀의 편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도 많습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가장 든든한 ‘내 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실 때 ‘내가 내 백성의 고통을 보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알았다’(출3:7)고 하시며, 그들을 인도해 내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에 해방을 약속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 외에는 그들을 도울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편은 하나님밖에 없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도록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끄십니다. 광야에서는 자신을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밖에는 도울 자가 없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물론 광야 체험을 하더라도 조금 형편이 좋아지면 자기 생각을 앞세우기도 합니다. 자기 능력인 줄 착각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생각, 자기 힘으로 살아가려고 할 때는 늘 실패합니다. 물론 믿음과 다르게 어려움과 시련이 계속되면 의심하기도 합니다.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왜 안 도와주시느냐’고 불평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은혜를 주시며, 우리를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이 우리와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 방법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는 평안과 기쁨을 얻습니다.
내게 좋은 생각, 좋은 방법이 있는 것 같고, 내 주위에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영원한 내 편은 하나님뿐인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자격이 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십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세속적 의미로 의인과 죄인이 등장합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선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 제사장들입니다.그들의 신앙행위는 본받을 만합니다. 경건하고, 성실합니다. 기도생활, 십일조생활, 구제활동을 잘 한다고 스스로 자랑하기도 합니다.(눅18:11-12)
한편 죄인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 이방인, 비난받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런 의인과 죄인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주의자들이 세속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의인인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십니다. 그때 난처한 일이 벌어집니다. 동네에서 죄인으로 소문난 여인이 예수님에게 다가와 눈물을 흘립니다. 눈물이 예수님 발에 떨어지자 당황하여 머리카락으로 급히 눈물을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어드렸습니다. 존경과 경외하는 마음, 사랑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 광경을 본 바리새인이 생각합니다.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이 여인이 어떤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여인의 행동을 율법으로 판단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도 율법으로 판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여인의 행동은 율법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각각 오십 데나리온과 오백 데나리온을 빚진 사람이 있는데, 둘 다 갚을 능력이 없어 그 빚을 탕감하여 주면 누가 주인을 더 사랑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이 대답하기를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 더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생각을 인정하시며 말씀하십니다. 44절에서 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고 묻습니다. 이 여자가 행한 일을 보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 행동을 한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행동이 율법을 어긴 행동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에 대한 기쁨과 감사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기쁨과 감격에 율법을 무시하고,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비록 율법을 잘 지키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 자신이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사랑받고 있고, 많은 죄도 이미 용서받았다고 믿었기에 그는 기뻐하며 주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편 바리새인 시몬은 책망받을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올바르게만 행동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책망하시는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책망이 아니라, 여인의 행동과 비교를 한 것입니다. 책망받지 않을 만큼 존경을 표시하기는 했습니다. 그의 행동은 기쁨과 감사보다는 책망받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고 생각할까? 하나님 보시기에 책망받지 않을까?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는 듣지 못하고 밖의 시선만 의식한다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고 묻는 것은, 그가 어떤 마음인지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율법으로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사랑받고 기뻐하는 마음, 생명을 구언해 주신 은인에게 감사하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하는 그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 표시와 기쁨을 드러낸 것입니다. 주님은 그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 말은 ‘너는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 곧 의인’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가 향유를 부어 존경과 감사를 표했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기뻐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물론 의롭다는 표현은 없지만,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가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낙심하거나 불평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을 채우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며, 매 순간 가장 귀한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그 사랑을 보지 못할 때, 실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 사람마다 상황과 형편마다 다릅니다. 사도 바울은 몸에 질병이 있어 이 가시를 치워달라고 기도할 때, 주님의 음성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괴로울 때도 주님의 은혜가 충분하다는 것이 믿기 힘들지만, 필요한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고후 12:7-10)
내가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언제나 내 편이 되시고, 내게 필요한 은혜와 축복을 내려 주시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