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창조주를 묵상하는 날 (히 11:3, 찬송 478장)
“믿음으로 우리가 알거니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믿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지난 주일, 우리는 주일은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 영혼을 소생시키는 날이며,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회개하고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날임을 배웠다. 오늘은 이 진리를 토대로 '창조주 하나님'을 더욱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한다.
첫째, 주일은 기록된 말씀과 피조물에 새겨진 말씀으로 우리 영혼을 소생시키는 날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시 33:9). 빛과 어둠, 공중의 새와 땅의 생명체, 물속의 물고기까지 모두 말씀으로 지으셨다. 그러나 사람만큼은 다른 피조물과 구별하여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다. 흙으로 빚은 육체에 하나님의 영인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 숨 쉬는 생명체가 되게 하셨다.
사람은 만물을 대표해 말씀이신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피조 세계를 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온 만물을 이끌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예배하게 하는 데 있다.
이 복된 창조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인간은 단순히 자연법칙에만 순응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안에는 영적 생명이라는 '말씀의 DNA'가 심겨 있기에,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다시 듣고 새겨 영혼을 소생시켜야 한다.
엿새 동안 죄의 탐욕으로 우둔해진 우리 영혼은, 주일에 선포되는 말씀과 성령의 생기를 통해 지혜롭게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세상을 살아갈 영육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이러한 창조주의 말씀은 성령으로 충만한 자들이 기록한 성경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 세계에도 뚜렷이 새겨져 있다. 바울은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여 핑계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고(롬 1:20), 욥 역시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가르쳐 준다고 고백했다(욥 12:7-10).
둘째, 주일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 교만을 회개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이유는 결핍이나 외로움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자체로 영광스럽고 완벽하신 분이다. 창조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사 43:7, 21).
하나님의 창조에는 창조주 하나님이 정하신 인류 존속의 법칙이 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안식하심으로 창조를 완성하셨다. 하나님은 땀 흘려 일하는 시간이 아닌, 쉼이 있는 안식일에 ‘복’과 ‘거룩’을 부여하셨다.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는 것이야말로 창조 세계가 영원히 존속하는 거룩한 법칙이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명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창조주의 경계를 넘어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던 교만 탓에 이 안식을 상실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일에 창조와 구원의 말씀 앞에 서서 내 마음을 잠식한 탐욕의 어둠을 직시해야 한다. 탐욕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야 할 자리를 나의 영광으로 채우려는 교만이다.
주일은 지난 엿새 동안 하나님의 피조물을 내 유익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오직 나의 성공을 위해 ‘다스림’의 권세를 남용해 자연과 이웃의 영역을 침범했던 죄악을 깊이 회개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셋째, 주일은 엿새 동안 억압했던 자연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날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연을 억압하지 않고,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는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거나 억압하는 초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죄로 파괴된 자연을 창조 본연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힘이다.
그러나 죄로 부패한 인간은 받은 은혜로 창조의 섭리를 따르기보다 만물을 탐욕의 도구로 삼았다. 이웃의 경계를 침범하여 빼앗고 독점하는 것을 은혜라 포장하고, 마치 자신에게 초능력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한다.
더 큰 문제는 그 탐욕의 찌꺼기를 그대로 움켜쥔 채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패한 죄의 본성에 면죄부를 주는 값싼 위로에는 열광하면서도, 나의 탐욕에 제동을 거는 십자가의 말씀 앞에서는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주일에 진정 들어야 할 말씀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다. 그 찔림이 있는 말씀 앞에서 우리가 쌓아 올린 탐욕의 바벨탑을 허물어야 한다.
창조주를 바르게 깨닫는 자는 탐욕으로 무너뜨린 자연과 이웃의 경계를 다시 온전하게 세우는 일에 힘쓴다. 이것이 창조주의 사랑을 깨달은 자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참된 섬김이자 헌신이다.
따라서 주일에는 나의 유익을 위해 빼앗은 이웃의 몫이 있다면 돌려주고, 나의 탐욕으로 침범했던 자연과 이웃의 자리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거룩한 회복의 실천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만드신 세계를 보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기뻐하셨듯, 우리 역시 언약 안에서 자연과 이웃을 바라보며 참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거룩한 날이 되어야 한다.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나의 이익을 위해 바쁘게 달려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멈춤의 시간' 동안 다음 두 가지를 실천해 봅시다.
첫째, '자연을 향한 섬김'입니다. 나의 편리와 탐욕을 위해 무분별하게 낭비했던 일회용품 사용을 하루만이라도 멈추며,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아끼는 작은 실천을 시작합시다.
둘째, '이웃을 향한 섬김'입니다. 나의 탐욕을 위해 침범했던 이웃의 영역을 돌려주는 실천을 해 봅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깨닫는 자의 삶이고, 창조 질서의 회복이며, 참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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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원수미 작성시간 26.06.07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만 안심이 되는 소비 습관과 탐욕의 바벨탑을 점검합니다. 필요한 물건을 살 때 정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인가?를 자문하며, 소유의 크기로 행복을 재단하지 않고 현재 누리는 일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훈련을 하겠습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소유의 욕심을 덜어내고 자족하며, 우리 가정에 맡겨주신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정돈하고, 그 안에서 감사와 평안을 먼저 고백하는 태도를 배워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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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Hanna 작성시간 26.06.0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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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Hanna 작성시간 26.06.08 아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는 자연과 이웃을 억압하거나 이용하는 힘이 아니라,
죄로 깨어진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하게 하는 능력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일에 하나님,이웃, 자연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