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안식일, 성령 하나님을 묵상하는 날(요14:26, 롬8:26). 찬송195장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14: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주일은 성령 하나님을 묵상하며 내 영혼을 소생시키고, 성령의 빛 앞에 자신을 비추어 회개하며, 성령의 힘으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축복의 날이다.
첫째. 주일은 성령의 사역과 능력으로 내 영혼을 소생시키는 날이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하신다(요 14:26). 인간의 좁은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성경의 깊은 의미를 조명하시어, 우리가 주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도록 돕는다.
성령님은 지친 우리를 도와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킨다(요 14:16). 우리가 기도의 방향을 잃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 성령님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신다(롬 8:26).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권능을 주신다(행 1:8). 그 힘의 본질은 ‘사랑’이다. 주님의 위로가 영혼 깊은 곳에 닿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생명의 힘을 얻는다.
둘째. 주일은 성령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어 회개하는 날이다.
진정한 안식은 성령이라는 거울 앞에서 시작된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가 감추어둔 죄를 깨닫게 하신다(요16:8).
육체의 열매는 성령의 열매와 완전히 동떨어진 악행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때로 성령의 열매를 가장한 인간의 자기 의(Self-righteousness)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외적인 형태는 성령의 열매와 유사하나 내면의 뿌리가 다르다.
성령은 내 성품의 변화를 먼저 요구한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를 자아만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면 육체의 일이된다. 죄인들은 죄를 죄 속에 감추지 않는다. 성령의 열매 안에 감춘다. 그것을 육체의 열매라고 한다(갈5:19~21). 성령의 열매라면서 내가 중심이 되면 육체의 열매가 된다.
사랑, 희락, 화평을 내세우면서도 그 이면에 '나의 만족'과 '나의 평판'이 자리 잡고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자기 사랑이라는 육체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자비, 양선, 충성이 내가 중심이 되면 우상 숭배와 주술이 되어, 서로 원수를 맺고 분쟁하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면 시기하고 분노하고 당을 짓고 분열하게 한다. 이단(Hairesis)이란 본래 '분파'를 의미한다. 성경적 관점에서 이단은 하나님의 자리에 내가 앉아 나만의 질서를 결정하는 영적 교만이다.
내가 중심이 되면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의 경계를 칩범하는 것을 능력이라 한다. 이런 착각에 빠지면 이웃의 경계를 허물고, 당을 짓고 갈등하게 한다. 그러면 투기, 술 취함, 방탕, 시기, 무절제한 쾌락에 빠진다.
주일에는 성령의 열매라는 이름으로 지는 죄를 정직하게 회개하는 날이다. 회개는 정죄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안식으로 나아가는 은혜의 통로이다.
셋째. 주일은 성령의 힘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날이다(갈 5:22-23).
성령은 예수그리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이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질서가 중심이다.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만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희락, 하나님을 아는 기쁨을 알면 상황과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기뻐한다,
화평, 하나님은 평화의 왕이다. 그 왕을 모신 자는 이웃과도 화평하다.
오래 참음,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견디셨다. 십자가 때문에 참는 것이다.
자비, 십자가 위에서 베푸는 사랑이다. 우리의 친절함이 십자가 때문이어야 한다.
양선, 적극적 선한 행위다. 나의 선함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선함이 흘러가는 것이다. 곧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가장 큰 선이다.
충성,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예와 아니오가 선명한 순종이다. 나의 유익을 위한 충성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른 충성이 되어야 한다.
온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기에 세상 앞에서는 강하고 담대하나,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나를 굴복시키는 부드러움이다.
절제,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과의 경계 앞에서 나를 멈추는 능력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살기에 그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 우리가 오늘 주일, 성령의 조명 아래에서 나의 중심을 주님께로 옮기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