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한 달은 폐렴으로 쉬다시피 했다. 일주일을 입원하고도 계속하여 잔기침과 가래가 나오자 진해거담제 세 봉지에 진통소염제 두 봉지를 챙겨 부산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완주는 하겠지만 기록은 예전 같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부산 하단역에서 송암을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출발장소가 신포나루공원으로 변경이 되었다. 지자체든 그 동네 사람이든 울트라마라톤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나마 출발장소를 변경해서 대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했다.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 민원을 제기하니 대회를 개최하는 곳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연간 스무 개가 넘던 울트라대회는 이제 열개 정도로 줄어들었다. 시간이 흐르면 울트라 대회는 과연 몇 개나 남아 있을까?
21시 정각, 송암과 보조를 맞춰 함께 출발을 했다. 송암은 충치를 제거하고 임플란트 수술을 위한 기초공사를 하자마자 200km를 뛴다. 희종형님이 전화로 내게 100km만 뛰게 하라고 부탁했지만, 웬걸 내가 송암을 따라갈 수가 없다. 1km를 지나자 송암은 사라지고 없다. 호흡이 잘 되질 않았다. 폐활량이 심각하게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다. 거의 모든 대회에 6분 30초 주를 유지했지만 오늘은 7~8 분주로 후반 페이스다. 몸이 풀리기를 고대하며 1cp를 지났지만, 이번에는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도 않는 근육통이 발목을 잡았다.
8:2 주법으로 걷다 뛰기를 반복했다. 숱한 주자들이 추월을 했다. 불빛이 전혀 없는 갈대숲을 지날 때는 혼자 음악을 틀며 고통을 잊으려고 했다. 늘 달리다 아무것도 안 하고 한 달을 쉬면 이런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이다. 3CP를 한참 지나자 길게 이어진 고개를 만났다. 고갯마루가 무척지맥 여덟말고개였다. 언젠가는 지맥을 종주하면서 찾아오겠지만 무척산(702.5m)을 두고 마라톤코스는 빙 둘러 가게 되어 있었다. 풀코스 거리인 42km엔 5시간 47분을 통과했으니 당장에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5시간 완주도 어렵겠다. 45km 지점에 있는 식당(늘푸른추어탕)엔 6시 13분에 도착했다. 100km와 200km 주자 모두를 포함하여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주자들이 드믄드믄 하게 떨어져 있어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무척산 등산로 입구에서 국도와 나란히 진행하는 지방도를 따라가고 있을 때 앞뒤로 주자들은 아예 보이질 않았다. 주최 측에 전화를 하여 성포마을을 지났다고 하자 아마 맞을 것이라고 했다. 주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거의 꼴찌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순간 자존심이 상했다.
진통제를 삼키고 조금씩 속도를 올리자 주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콰이강의 다리(삼랑진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급하게 휘어져 들어간 다음 천태산 오름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허기가 지고 목도 말라 청미래순과 찔레순을 잘라먹기도 하고, 길가에 노랗게 익은 매실도 따먹었다. 천태산 CP에서는 수박과 방울토마토, 포도를 실컷 먹고 또 종이컵에도 담아 걸어가면서 먹었다. 허기가 지워지고 갈증도 해소되었다.
정상에서 원리 삼거리까지는 계속 내리막이지만, 생각처럼 속도가 나질 않았다. 5분대는 고사하고 6~7분대를 유지하기도 힘들다. 몇 명을 추월하기는 했지만 작년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원리삼거리 식당에서는 국수가 제공되었다.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커피를 마시며 배내골까지는 걸었다. 그 사이 한 무리의 젊은 주자들이 호흡을 맞춰 앞서서 달려 나갔다.
63토끼 주자 한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배내골에 이르렀다. 15시간 내 완주가 가능하겠냐고 묻자 나는 충분하다고 거들었다. 수박화채 두 그릇을 비워 그분께 서두르자고 했지만 달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진통소염제 덕인지 이번에는 속도를 낼 수 있었다. 5분주로 달려 밀양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오름길에 사전주를 마친 유*규님이 아이스크림 봉사를 하고 있었다. 송암과 워낙 친하기 때문에 한참을 앞서 달린 송암을 찾았다.
밀양댐의 마지막 CP에서 바나나와 오이 몇 조각을 바지에 넣고 달리다 화장실에서 속을 비웠다. 그런데 다시 달리려고 하자 이번에는 호흡이 잘 안 된다. 결국은 수시로 멈춰서 걸어야 했다. 기관지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올해 부산비치대회 때부터 여러 번 이런 증상이 나타났었다. 매번 대회 때마다 표충사 삼거리까지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 기록을 단축했지만 오늘은 그러질 못했다. 결국 초반에 했던 것처럼 8:2 주법으로 걷다 뛰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이삭 줍기 하듯 꽤 많은 주자를 추월할 수 있었다. 표충사 진입로에서 송암을 만났다. 이미 100km를 찍고 식사하고 환복 한 후 200km 완주를 위해 길을 나서고 있었다.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헤어졌다.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14시간 56분 32초로 골인했다. 71명이 참가하여 7명이 포기하고 23등이었다. 45km 지점부터 100km 주자만 26명을 추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으로 위안을 받을 것은 아니지만 다음 주 광주빛고을대회에는 조금 더 향상된 기록으로 골인하리란 기대를 하며 콩국수로 점심식사를 하고 샤워도 마쳤다.
가는 교통편이 몹시 불편하여 버스를 거의 두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밀양역에서 대전역을 거쳐 세종 집에 들어가자 저녁시간이었다. 식사를 하자마자 소화시킬 시간적 여유도 없이 바로 곯아떨어졌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송암이 33시간 만에 200km를 완주했다고 한다. 이틀을 밤새우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멋있게 완주한 친구에게 큰 축하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