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김청자의 이야기

잊혀저가는 연습하기

작성자ChungjaKim|작성시간11.09.14|조회수142 목록 댓글 14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에도 있듯, “안보면 멀어진다.” 또는 “눈앞에서 사라지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

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듯싶다. 내가 제자들에게 항상 하던 말이었는데, 요즘 내가

그 말의 의미를 절감하고 있다. 인간은 결국 시공을 초월할 수없는 존재인가보다.

 

제자들과 4년 동안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그렇게 가깝게 지내다가 졸업을 하고 내 곁을 떠나버리면,

아무리 큰 애제자였어도 그 관계는 끝이 난다. 일 년 정도는 스승의 날이나 생일을 기억해서 꽃을 들고

찾아와주는 제자들이 더러 있었다. 그러나 일 년이 지나면 메일로 인사를 하다가 그 후 부터는 아주 조용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도 알 수가 없어진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너무 마음 아프게 다가와 상처를 받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감정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유일한 방법은 기대를 안 하면 된다.

“내가 그렇게 큰 사랑으로 가르쳤는데 어떻게 그 감사함을 잊을 수가....”

이런 식으로 기대하면 이건 영락없는 상처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 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떠난 제자들에 대한 애착이 없어져 때로는 제자들로부터 냉정한 스승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도 제자들이 내 곁에 있을 때는 불같은 사랑으로 그들과 함께 한다.

그러나 그들이 더 성장하기 위해 내 곁을 떠나갔는데, 그들을 놓아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스스로 “잊혀저가는 연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는 그들이 쉽게 찾아오지 못하는 아프리카로

훌쩍 떠나왔다. 이런 내가 제자들은 많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 하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떠받들리는 것이 하느님께는 가증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루카 16,15 )

 

오늘은 이곳 말라위 카롱가에 도착한지 꼭 일 년이 되는 날이다.

일 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는 생각도 들지만, 내가 벌써 몇 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이곳에 정이 많이 들어있다. 내가 이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니 노래 가사처럼,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집, “sweet home”이 바로 이곳이 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머리 둘 곳”도 없이 공생활을 하셨지만,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든 자신이

머물 곳을 마련하여 쉼과 보호를 받으려는 욕구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2010년 9월9일 저녁에 이곳에 도착하여 내가 살집에 처음 들어오던 날, 5명의 미국 봉사자들이 살고 있던

큰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찢어진 커틴에, 낡은 침대와 소파가 있었는데, 정말 적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전기가 들어오는 이곳은 아프리카에서는 대단한 일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나 자신에게 퍼부으면서

첫 밤을 지내던 그 기분을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수사님들께서 나를 저녁식사에 환영파티로 불러주셔서

위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래서 나도 오늘 수사님들과 미국인 피터 선교사님을 초청하여 맛있고 풍성한

음식으로 대접을 하면서 일주년 기념을 자축했다. 오늘 나와 함께해주신 분들은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 수 있도록 기도와 도움으로 힘을 보태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 어느 곳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방황할 것이다.

내가 이곳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은, 나의 가족들과 나의 친구들, 또 나의 제자들에게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깝던 친구들로 부터 오가던 메일이 끊기고, 일 년 동안 보내주던 후원금이

더 이상 입금되지 않아도 섭섭해 하지 않으리라. 안 보면 멀어지는 것이 맞는 말이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잊혀져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것을 미리미리 연습해 둔다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그“ 자유함”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 만질 수 있는 것에 더 마음을 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반면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동지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시니 나는 결코 외롭지 않다.

그들은 “천상의 것”을 바라며 자신들의 것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선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9.15 그래 고마워 ,알았으니까 자주 소식 전해줘. 그래야 네 마음이 전달 된단다.
  • 작성자너울 하마 | 작성시간 11.09.16 좋은 말씀..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교수님의 마음을 헤아리시겠지요. ^^
  • 답댓글 작성자ChungjaKim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9.17 너울하마님, 저도 감사해요. 오직 그분 만이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지요. 오직 주님 만이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는분이기에 이곳까지 따라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작성자아기사슴 | 작성시간 11.09.24 늘 함께하는 기분입니다만, 자주 들리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주님께서 교수님을 지켜주시도록 기도합니다. 또한 저의 사랑도 함께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 작성자펠라 | 작성시간 11.09.26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함께 한곳을 바라보는 우리들..
    주님이라는 끈이 있기에 서로 놓을수 없을것 같습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